며칠 전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야, 며칠 전에 너 어디다가 글 썼다며?’

갑작스런 엄마의 전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고 되묻자,

‘삼성에서, 그 일하다가, 백혈병 걸렸다는 이야기’

아.. 그제야 생각이 났다. 며칠전 또 하나의 약속 후기를 모아 인터넷 언론에 기고를 한 걸 이야기 하는 모양이다. 헉. 근데 이걸 엄마가 어떻게 알았지?

‘아빠가 그러더라. 네가 쓴 거 실렸다고.’
‘아빠가 그걸 어떻게 알았대?’
‘아빠가 집에서 심심하니까 다 검색해보지. 너 대체 뭐하고 다니냐’

갑자기 등줄기가 오싹해지는 느낌. 어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기분이랄까? 이거 뭐 국정원이 검열을 한다면 언론에라도 날 일 이지만, 측근인 아빠가 나를 검열하고 있었다니. 부끄러움이 목까지 올라왔다. 대충 알았다고 얼버무리고 엄마와의 통화를 끊자마자, 그간의 일들이 빛의 속도로 머릿속을 지나간다.

▲ 해외 인터넷 유머 사이트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 각국의 문제해결 방법 (international problem solving guidelines). 우리나라의 문제 해결법으로는 '종북몰이'가 보인다.

외국에 나간 동생과의 화상통화 연결을 위해 부모님께 컴퓨터를 장만해드렸다. 인터넷의 인자도 모르고, 컴퓨터의 컴자도 몰랐던 엄마, 아빠였다. 컴퓨터를 장만하고부터 엄마는 인터넷 고스톱의 달인이 되어갔고, 아빠는 검색의 달인이 되어갔다. 특히 아빠는 인터넷 뉴스 검색부터 시작해 다음 아고라 정치토론방까지 섭렵하는 신공을 보여주셨다. 인터넷에 빠지셨음에도 자극적이라는 이유로 너무나 재밌어하시는 TV조선, 채널A, JTBC 등의 종편방송의 소리가 여전히 하루 종일 집에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해서 언젠가부터 집에 내려가면 몇 달간 모았던 정치적인 이슈들을 쏟아내며 나에게 답을 내놓으라며 이야기 하는 아빠가 살짝 부담스럽기도 했다.

내가 다산인권센터에서 일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며, 인권운동을 한다고 하자, 아빠는 나보다는 같이 살고 있는 짝꿍에게 ‘내가 딸을 잘 못 키워서, 자네가 고생이 많네’라며 나를 두둔하기는커녕, 잘 못 키운 자식에 대한 하소연을 했다. 딸이 인권운동을 한다는 것. 사회의 기준에 맞지 않는 삶을 산다는 생각에 아빠는 걱정이 더 많은 듯했다. 그 이후 아빠는 가끔 밀양의 문제에 대해, 불법 선거 개입의 문제에 대해,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해, 대기업 노동조합의 파업에 대해 나에게 물었다. 이런 문제에 일일이 항변하는 것도 귀찮고, 집에서까지 이런 대응을 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나의 주변부터 나를 지지하고, 함께 해주는 게 내가 하는 인권운동의 시작 일 것인데, 동의를 구하는 것, 이해를 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아빠가 살아온 세월과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서로가 바라보는 세계가 다르기 때문이겠다는 얼버무림 정도로 늘 넘겨왔던 것 같다.

▲ 정미홍 전 KBS 아나운서는 TV조선에 출연해 박원순 시장 등을 종북이라고 규정하고 지방선거에서 심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련 내용은 자신의 트위터에도 게시됐다.

어느날 아빠는 나에게 ‘종북좌빨이냐’ 고 물었다. 물론 나는 ‘아니야’라고 웃으며 넘겼다. 사실 누군가를 생각의 잣대로 긋는 질문이 말도 안 되게 느껴졌다. 분단국가에서 적으로 규정한 상대를 지지 한다는 말, 삼대 세습의 말도 안 됨과, 그 인권에 대해 넌 어떻게 생각하냐는 말을 했을 때는 이것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답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분단국가라는 것이 사상의 자유와 생각의 물꼬를 틀어막는 구멍막이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나에게 더 크게 든 것은, 아빠가 말한 종북이고, 좌빨이기 때문일까? 생각의 물꼬를 틀어막고, 사상의 자유를 억누르는 것은 아빠가 말한 삼대세습의 국가와 다름없다고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기업의 삼대세습은 경제를 위한 이바지라고 이야기 하면서, 북한의 삼대세습은 문제라고 여기는 모습들. 끝도 없는 의문들 속에서 기준점을 벗어나면 종북, 좌빨이라 칭하는 시대가 먼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 사상과 신념의 자유를 정치적 잣대로 긋는다면 나는 그들이 말하는 종북이든 좌빨이든 되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종북이라는 잣대는 그 키 재기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장벽을 쌓아가고 있다. 장대높이뛰기로도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은 종북이냐 아니냐로 사람들을 편 가르기하고 있다. 왜 내 생각들이 종북이냐 아니냐의 잣대로 판단 받아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의문들만이 가득한 시대다.

닭이 낳은 알은 계란인데, 내란은 대체 누가 낳은 알인지, 내란음모는 더욱 골치 아픈 문제이다. 최근 내란음모 판결을 보면 앞으로의 미래가 더욱 걱정될 뿐이다. 수사과정에서의 문제점, 터져버릴 것처럼 부풀어 버린 언론의 보도들. 이미 처음부터 내란으로 만들고 시작한 모든 퍼즐 맞추기의 마지막 완결점 법원 판결까지. 다시 유신으로 돌아갈 타임머신 계기판을 작동하고 있다.

대기업 노조가 나라를 망친다는 요즘, 종북 좌빨이 판친다는 요즘, 국가 공권력이 우스워 진다는 요즘. 이 요즘이 나는 너무나 무겁고 힘들다. 다름이 낙인이 되고, 차이가 배제의 잣대가 되는 요즘이 무섭다. 거대한 무언가를 위해서 힘없는 누군가의 삶을 짓밟아버리는 것이 무섭고, 생각이 다르다는 것이 사회에서 배제되어야 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 두렵다. 말할 수 있는 자유와 다름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자유가 정치와 체제 속에 흡수 되어버리는 시대가 무섭다. 아직도 색깔 논리로 모든 것을 평정해버리는 그 총천연색 색감이 참으로 놀랍다. 빨강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시대, 나는 초록이고, 파랑이고, 노랑이 될란다. 그럼 나는 노랭이일까? 파랭이일까? 이것도 단속의 대상이 될까?

언젠가 아빠의 젊었을 적 사진을 본 적이 있다. 긴 장발의 아빠는 너무나 멋졌다. 그 시대의 장발은 시대가 요하는 자격 기준이 아니기에 단속이 대상이 되었었다. 물론 아빠의 장발이라고 예외는 아니었겠지. 아빠의 그 사진을 보면서 시대가 만든 룰을 어겨가며 머리를 길렀던 젊은 시절 아빠가 그려진다. 아빠가 장발단속을 하던 이들을 피해 머리를 길렀던 것처럼, 나 역시도 같음을 강요하는 시대의 룰에 예외가 되려고 한다. 그 시절 짧은 머리들과 같지 않으려 장발을 길렀던 것처럼, 나도 이 시대의 장발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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