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넉 달이 지났다. 이명박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에 합의하고 파안대소한 지도, 미국산 쇠고기가 절대 안전하다는 정부 주장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지도.

▲ 김보슬 PD ⓒ 미디어스
“벌써 그렇게 됐어요?”

MBC <PD수첩> 김보슬 PD는 “넉 달이 지났다”는 얘기에 화들짝 놀랐다. 넉 달 새 세상은 완전히 변해 있었다. 넉 달 전과 넉 달 뒤는 완전한 단절이었고, 시간관념은 증발해버렸다. 어제 해임된 KBS 사장은 오늘 검찰에 체포되고, KBS 사장이 체포된 날 MBC 경영진은 PD수첩 사과방송을 내보내기로 결정했다.

8월12일 저녁, 김 PD는 5년째 다닌 회사 1층 로비 위에 어느덧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낯설었다. ‘PD는 프로그램으로 말한다’는 평범한 진리는 흔들리고 있었다. 아니, 처음부터 그런 진리는 없었던 것만 같았다.

“PD로서, 언론인으로서 보고 취재한 내용을 정확하게 옮기려고 했을 뿐인데, 여기까지 올 거라고 어디 생각이라도 했겠어요? 이제 와 돌이켜보면 아무 흠결도 없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해도 여기까지 올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작은 흠결(실수)은 시간을 조금 앞당겼을 뿐이지요.”

YTN이, 그리고 KBS가, 그럼 이번엔 MBC마저…. 김 PD는 방송을 손아귀에 넣으려는 정치권력과 그 동조세력의 ‘무법’ 앞에 이성과 상식의 방송 저널리즘이 휘청거리고 있는 현실이 “마치 시한부 환자 같다”고 했다. 그래도 처음보다 모든 것이 선명해졌다.

“한동안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예측불허의 정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호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예측할 수 있습니다. ‘모든 예상과 상식을 으깨버리는 비정상’ 정권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아직도 상식으로 묻고 싶은 마음까지는 떨치지 못했습니다.”

덕분에 많은 것들이 확연해졌다. PD수첩이 18년 동안 한국사회에서 얼마나 필요한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는지, 지금의 MBC가 언론자유와 방송독립을 지키기 위한 선배들의 얼마나 많은 피눈물로 세워진 것인지, 지금 방송을 하고 있는 스스로가 이들 가치가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뿐만이 아니다.

“그동안 경영진에게 많은 기회를 주며 오래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경영진은 정권과 타협했습니다. 그들의 판단이 분명해졌으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도 확연해졌습니다. 우리가 버텨야 하는 이유와 끝내 양보할 수 없는 선이 있다는 사실, 우리 스스로 언론자유와 방송독립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김 PD는 지난 5년 동안 키워온 PD로서의 자부심과 사명감을 지키기 위해 뭐든 다 할 것이라고 했다. “한 달을 굶어서 막을 수 있다면 굶겠고, 검찰에 붙들려 가서 막을 수 있다면 붙들려 가겠다”고 했다. 역설적이게도, 그토록 사랑하는 PD 일을 지키기 위해 “설령 그 일을 못하는 경우가 오더라도” 이길 때까지 버티고 싸우겠다고 했다.

“정권과 경영진이 아무리 교묘하더라도, MBC 동료들이 끝까지 함께할 것이고, 시민들이 끝까지 촛불을 밝혀줄 것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승산은 있습니다.”

김 PD에겐 앞으로 넉 달도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지나갈 것 같았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