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5일 부실경영과 인사권 남용 등을 이유로 KBS 정연주 사장에 대한 해임을 요구한 가운데, 정 사장이 그동안의 침묵을 깨고 현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 시도를 강도높게 비판하고 나섰다.

정 사장은 6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KBS 본관 3층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감사원 특감을 비롯한 일련의 KBS 장악 시도를 지적하면서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흔들림없이 지켜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 정연주 KBS 사장이 6일 오후 KBS 본관 회의실에서, 전날 감사원 특감 결과 발표을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KBS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통해 "이 정권은 공영방송 독립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인 사장의 임기 보장은 폐지하고 자신들의 정권적 안위와 정치적 목적을 위해 공영방송 사장 해임이라는 초법적 조치로 치닫고 있다"며 감사원 해임 요구의 정치적 의도를 비판했다.

"KBS를 정권의 전리품, 관영방송, 정권 홍보기관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정 사장은 감사원 특감 결과가 나온 8월 5일을 '감사원 치욕의 날'이라고 규정하면서 "지난 몇달 동안 감사원 특감, 검찰의 '배임' 수사, 국세청의 외주사 세무조사, 방통위의 신태섭 KBS 이사 자격 박탈 등 마치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지휘에 따르는 것처럼 권력기관들이 일사분란하게 압박을 가해왔고, 결국 그 칼날은 저의 거취 문제로 모아졌다"고 말했다.

정 사장은 감사원 특감의 출발과 석연치 않은 전개, 그리고 거짓과 왜곡, 자의적 자료 선택과 해석을 토대로 KBS 사장 해임을 요구한 것은 '정치감사' '표적감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는 2003년 실시된 KBS 특감의 경우 감사 시작부터 처분까지 177일이 걸린데 비해 이번 특감은 감사 시작 72일만에, 최종 답변서가 도착한 바로 다음날 아침 감사위원회를 열어 처분이 내려졌다며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반영됐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5일 감사위 개최와 함께 곧바로 KBS 이사회가 8일 임시이사회를 급박하게 소집한 것도 "어디선가 오는 신호에 따라 척척 움직이고 있는 듯한 모습"이라며 현 정권의 정치적 의도를 겨냥했다.

"'1172억 손실'은 허위와 자의적 해석…KBS 투명성 역설적으로 확인"

특히 '1172억원 누적사업 손실'이라는 감사원 지적에 대해 '허위와 자의적 해석'이라고 반박하면서, 취임 첫해인 2003년의 사업이익 434억원을 뺀채 2004~2007년까지만 계산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따져물었다.

'인사전횡' 사례로 지적된 '특별승격' 문제도 "어처구니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전형적인 관료주의 연공제 서열제라는 경직된 제도 대신 소속 본부장의 추천을 받고 특별인사위 심의를 거쳐 능력있는 직원들을 특별승격시킨 것은 인사전횡도 해임사유도 아니라는 것이다.

정 사장은 "감사원은 저와 관련된 '비리'가 없는지 집중적으로 조사했고, 전 직원의 주민등록번호까지 가져갔지만 아무리 털어도 '개인 비리'가 나오지 않았다"며 "KBS가 이제 그만큼 투명해졌다는 사실이 역설적이게도 이번 감사원 특감 결과 만천하에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정 사장은 아울러 공영방송의 '경영' 목적이 사기업처럼 사적 이윤을 극대화해 돈을 많이 버는 것이냐고도 반문했다. 그는 "KBS 사장을 해임시키기 위해 부실경영, 적자경영 등 경영책임론이 대두됐다"며 "공영방송의 경영이 수지상의 흑자를 많이 늘이는 것이냐, 아니면 고품격의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시청자에게 봉사하고 언론기관으로서 신뢰도와 영향력을 높이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KBS만의 문제가 아니라 언론자유와 민주주의의 문제"

▲ 정연주 KBS 사장이 6일 오후 KBS 본관 회의실에서, 전날 감사원 특감 결과 발표을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KBS
정 사장은 "KBS 시스템의 총체적 붕괴, 부실경영이라는 비난은 과학적 근거도 합리적 통계도 모르는 무지의 소치이거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일방적인 비난일 뿐"이라며 "개인에 대한 비난이나 인신공격은 감수할 수 있으나 KBS 조직과 구성원의 명예를 손상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KBS가 이뤄낸 모든 성과는 엄연한 사실이자 역사"라고 강조했다.

정 사장은 특히 우리사회가 온갖 희생과 고난 끝에 얻어낸 민주적 절차와 제도를 쉽게 허물어선 안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위해 사장의 임기를 보장하는 것도 숱한 시행착오 끝에 마련된 현행 방송법의 바탕에 도도하게 흐르는 정신이자 구체적 규정"이라며 "(민주주의라는 사회적 진보와 자산이 허물어지는 것은) 단순히 공영방송 KBS의 문제가 아닌,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심대한 훼손이자 역사의 퇴보"라고 우려했다.

정 사장은 "KBS 사장의 거취 문제는 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개인적으로 이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러나 온갖 근거없는 음해와 비난을 당하면서까지 이 자리를 지켜온 이유는 공영방송의 독립성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밝혔다.

"KBS 구성원 신뢰…무효처분 확인 소송 등 진행할 터"

이어 "눈 먼 권력이 일시적으로 공영방송 KBS를 장악할 수 있겠지만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며 "KBS 구성원들의 자존심, 방송독립을 향한 뜨거운 열정과 신념, 정의감을 믿는다. 그들은 방송독립을 위한 선한 싸움에서 반드시 이기고 공영방송인으로서 당당하고 의연하게 중요한 몫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 사장은 KBS 이사회에 대해서도 "KBS 독립성을 지켜야하는 엄중한 의무가 있는 만큼 KBS 독립을 파손시키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정 사장은 변호인단을 통해 7일 감사원 해임 요구에 대한 무효 처분 확인소송과 효력 집행정지 신청을 서울행정법원에 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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