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는 자유, 기타는 저항!”

에릭 클랩튼과 지미 헨드릭스를 연주하면서 신대철은 이렇게 외쳤다. 15일 ‘기타 레전드, 기타 노동자를 만나다’란 이름의 공연에서 벌어진 일이다. 지난 11월 콜텍문화재단이 주최하는 공연에 참가했다가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들의 해고 투쟁을 알게 돼 마음의 빚을 지게 된 기타리스트의 외침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뜨거워졌다.

▲ "기타는 자유, 기타는 저항!"이라고 외치며 블루스를 연주하고 있는 신대철. 이 날 공연에는 취재와 촬영을 위한 자리가 따로 마련되어 있었지만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기 위해 객석에서 사진을 찍었다. ⓒ미디어스
신대철은 천상 블루스 플레이어다. 그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헤비메탈을 대중화 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시나위’의 핵심이다. 시나위는 음반을 낼 때마다 뭔가 새로운 음악적 실험을 덧붙인다. 지난 7월에 발매된 <Mirroview>의 경우 건반의 전자음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시도가 돋보인다. 그렇기에 신대철의 음악은 어쨌든 늘 미래를 바라본다. 하지만 한 사람의 기타리스트로서 그는 계속 ‘뿌리’에 집착한다. 그의 인간적, 음악적 뿌리가 한국 블루스의 아버지 신중현이라는 점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가 계속해서 찾아가고자 하는 음악의 뿌리는 블루스다. 사실 이 날 공연에서 ‘기타 레전드’로 등장한 이들도 모두 블루스에 일가견이 있는 연주자들이다.

블루스는 미국 남부의 흑인 노예들이 발전시킨 음악이다. 노예의 비애와 한을 음악으로 푼 셈이다. 블루스는 ‘기타’와 불가분의 관계다. 혼자서 떠돌아다니면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간주에는 하모니카를 넣는다. 때문에 블루스 연주자들은 보통 이러 저러한 신묘한 기타 주법을 선보이길 좋아한다. 블루스는 여러 음악과 화학적 결합을 반복해 로큰롤이 됐고, 이 로큰롤에서 뻗어나간 음악적 줄기는 오늘날에 이르는 전자기타 중심의 여러 음악 장르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것이 기타가 자유이며 저항인 역사적 이유다.

기타가 자유이며 저항일 수밖에 없는 이유에는 형식의 측면에서도 비롯된다. 클래식 음악의 경우 노트 하나를 정확히 연주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악단과 지휘자의 차원에서 곡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가미하기도 하지만 결국 연주자가 악보에 맞춰 최대한 정확하게 연주해야 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클래식의 묘미는 이 정확함 속에서 얼마나 듣는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감성을 전달하느냐에 달렸다.

하지만 현대적인 형태의 기타가 중심이 되는 음악의 경우 정해진 큰 틀만 지키면 자유롭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뽐낼 수 있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블루스의 후예를 자처하는 장르의 곡들에서는 거의 반드시 기타 독주 부분이 등장한다. 기타의 대가들은 이 부분을 매번 다르게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 형식으로부터의 자유이며 형식에 대한 저항이다.

이 공연에서 잠시 무대에 선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기타가 착취의 도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게 돼 너무나 고맙다”라고 말했다. 무대에 서있는 연주자들에게 기타는 자유와 저항의 도구였지만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들에게는 너무나 오랫동안 착취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이 폭로된 것이다. 기타를 중심으로 자유와 저항의 연대를 만든 이 날의 공연은 그래서 뜻 깊었다. 자유와 저항이라는 기치 안에서 기타를 만드는 사람, 만들어진 기타를 연주하는 사람, 기타 연주를 듣는 사람이 모두 하나가 됐다.

▲ 이 날 공연에 오프닝으로 나선 게이트플라워즈. ⓒ미디어스

오프닝을 장식한 ‘게이트플라워즈’는 기타 하나로 편성된 4인조 하드록 밴드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을 모두 보여줬다. 와와 페달과 하모닉스를 동원한 인상적인 기타리프가 펼쳐지는 가운데 표효하듯 소리를 지르는 보컬과 빈틈을 적절히 치고 들어오는 베이스의 연주는 그야말로 찰떡궁합이었다. 노래를 맡은 박근홍씨는 콜트콜텍 노동자들을 지지한다는 의미의 티셔츠를 입고 연신 그것을 가리키기도 해 연대의 의미를 분명했다.

▲ '펑키'와 '그루브'가 무엇인지를 온 몸으로 보여준 한상원. ⓒ미디어스

다음으로 등장한 한상원은 마치 “형님 오셨다”라는 듯 자신감 있는 태도로 연주를 시작했다. 한 번 불이 붙은 한상원의 기타는 펑키 그 자체였다. 그에게서 조금은 기이한 포즈의 독특한 스텝이 나올 때마다 그야말로 그루브 넘치는 기타 솔로가 쏟아져 나왔다. 보컬이 4번이 바뀔동안에도 그의 그런 ‘신기’는 멈추지 않았다. 그가 이 분야의 대가 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 신대철이 이끄는 시나위가 등장하자 관객들이 환호하고 있다. ⓒ미디어스

시나위가 나오자 관객들 사이에서는 함성이 터졌다. “신대철 귀요미”라는 다소 동의하기 힘든 찬사도 쏟아졌다. 기타를 칠 때는 애수에 젖는 신대철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수줍은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시나위의 무대는 그야말로 ‘욕심’의 집합체였다. 건반에 기타 2대, 하늘을 나는 보컬의 뒤로 파워풀한 코러스까지 가미돼 그야말로 엄청난 사운드가 나왔다. 인상 깊었던 것은 블루스 하모니카 연주다. 드럼까지 합치면 8명이 무대에 서있는 만큼 엄청난 존재감이 뿜어져 나왔다. 시나위의 연주가 끝나고 이어진 신대철의 단독 블루스 연주 타임도 볼거리였다. 서두의 “기타는 자유, 기타는 저항”이라는 외침도 이 대목에서 나왔다.

▲ 오랜만에 무대에 섰다고 말하면서도 유감없는 실력을 보여준 최이철. ⓒ미디어스

마지막으로 최이철이 등장했다. 최이철은 1953년생으로 과거 ‘사랑과 평화’에 몸을 담았던 기타리스트다. 최근 사랑과 평화를 둘러싼 멤버들의 갈등과 이에 대한 신대철의 입장 표명 때문에 다시 관심의 대상이 된 바 있다. 오랜만에 무대에 선 듯한 이 노(老)가객은 관객들의 열기에 조금은 얼떨떨해 진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깁슨 레스폴을 멘 그는 그야말로 음표 하나하나에서 내공이 느껴지는 연주를 선보였다. <날개> 연주가 끝나고 관객들이 환호성을 지르자 최이철은 다소 수줍은 표정으로 “히트곡도 아닌데…….”라고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 발언에 나선 콜트콜텍 노동자들과 이들이 선물한 그림을 번쩍 들어보이는 신대철. ⓒ미디어스

그리고 잠시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발언과 기타리스트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선물 증정이 이어지고 나서 한상원, 최이철, 신대철의 즉흥 연주가 시작됐다. 세 사람은 그야말로 신이 난 듯 신이 들린 연주를 선보여줬다. 신대철은 대선배들 앞에서 조심스러운 태도였으나 자신의 차례에서 연주를 할 때 만큼은 그야말로 정통이라고 할 수 있는 플레이를 보여줬다. 최이철은 레스폴의 두꺼운 소리를 바탕으로 절제된 연주를 해 차별화를 시도했다. 전체 즉흥연주 순서 등을 조율하며 한참 흥이 난 한상원은 마치 미친사람 같았다. 직접 노래를 맡은 <Suzie Q>로 즉흥연주를 할 때는 그야말로 무아지경에 빠진 듯 했다. 한상원의 오랜 팬을 자처하던 한 관람객은 “오늘처럼 한상원이 신나 보이는 건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 한상원, 최이철, 신대철의 즉흥연주. ⓒ미디어스

‘기타 레전드’들의 즉흥연주는 생각보다 훨씬 오랫동안 이어졌다. 전체 공연 시간이 4시간이 육박하는 시점에서 세 사람 다 신이 나지 않았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에 대한 마음의 빚을 털어버리는 무대였다는 점도 분명 그들의 흥을 돋구었겠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의 연주를 길게 이어지게 한 힘은 기타는 자유와 저항의 도구라는 사실을 관객부터 연주자까지 모두가 공유하는 뜻 깊은 시간의 한가운데였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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