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한 자치구에선 공무원노조와 출입기자간 '한판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양측의 갈등과정에서 구청 브리핑룸이 폐쇄됐고, 기자들은 청사에서 수백미터 떨어진 다른 공공기관으로 방을 옮겼다. 단순화시키면 노조와 기자들 사이의 갈등이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주재기자'라는 제도의 문제가 깔려 있다.

노조 브리핑룸 폐쇄, 기자들 청사 밖으로

발단은 광산구를 출입하는 이 지역 한 신문사 기자로부터 시작됐다. 올 봄부터 이 곳을 출입한 A기자는 "구청 민원인 주차장의 70%를 공무원 차량이 차지하고 있다"거나 "관내 농촌지역 한 마을에 30년째 하수도 없이 불편을 겪고 있지만 구는 예산타령이다" 등의 기사로 공무원들을 괴롭힌 '전과'가 있었다.

이 가운데 "광산구가 6억원을 들여 4년간 전 직원들 해외연수를 보낸다"는 기사는 결정타였다. "경제상황도 어려운데 공무원들이 굳이 세금으로 해외연수를 가야하느냐"는 시각에 대해, 공무원들은 "체력단련비까지 아껴서 가는 것도 생트집 잡는다"고 반발했다.

▲ 광산구 공무원노조가 지난 7일 브리핑룸을 폐쇄하자 구청은 청사에서 400미터 가량 떨어진 광산구문화예술회관 2층의 접견실을 임시 기자실로 내줬다. ⓒ 광주드림

이에 노조가 나섰다. 청사 6층에 있던 브리핑룸이 타깃이 됐다. 노조는 지난 7일 이곳 출입문을 폐쇄한 데 이어, 지난 21일에는 아예 같은 층에 있던 노조사무실을 이곳으로 옮겨와 버렸다.

노조쪽은 브리핑룸 출입문 봉쇄 당시 "한 출입기자가 공무원 복지문제와 관련해 평향된 기사를 수 차례에 걸쳐 작성하고 이에 따른 정정보도가 게재되지 않아 브리핑룸을 폐쇄한다"고 밝힌 바 있다.

또 브리핑룸이 원래 목적대로 열린공간으로 사용되지 않고, 기자들만의 공간이 되고 있다는 이유도 들었다.

머물 공간이 사라진 기자들을 위해, 구청쪽은 청사에서 수백미터 떨어진 광산문화예술회관 내 '접견실'을 내줬다. 이렇게 두세 평 되는 좁은 공간에서 기자들의 여름나기는 시작됐다. 더불어 구 홍보관련 부서 직원들도 청사와 '외부 기자실' 사이에서 오락가락을 반복하고 있다.

5년 만에 반복된 노-언 갈등

이번 노조의 조치와 관련해선 구청 공무원들 내부에서도 다양한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문제가 된 당사자에 대해서만 대응하면 되지 브리핑룸 폐쇄까지는 과한 것 아니냐"는 의견부터, "끄떡하면 브리핑룸으로 불러내 취조하듯 하던 기자들 안보게 되니 후련하다"는 반응까지.

하지만 취재자유에 대한 노조의 탄압인지, 기자의 횡포에 대한 반발인지 콕 집어 단정하긴 쉽지 않다. 이번 사건은 단순화시켜보면 노조와 언론간의 갈등이지만, 그 이면엔 광산구만의 특수한 구조적 문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거슬러가보면 광산구 노조와 출입기자들간의 갈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3년 전국적으로 '기자실 폐쇄 운동' 내지는 '브리핑룸 전환 운동'이 한창일 때, 광산구는 광주광역시 5개 자치구 가운데 유일하게 기자실 폐쇄에 '성공'한 바 있다. 이번에 폐쇄된 브리핑룸은 당시 기자실을 없애고 난 뒤 대체공간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 2003년 이전에 있던 광주시 광산구청의 기자실. 주재기자들이 '상주'했는데, 당시 전국적으로 기자실 폐쇄운동이 벌어지면서 공무원노조에 의해 2003년 폐쇄됐다. '관계자외 출입금지'라고 쓰인 입구 팻말이 당시 기자실이 폐쇄적 공간이었음을 대변해준다. 이후 개방형 브리핑룸으로 바뀌었다. ⓒ 광주드림

물론 그때도 노조가 총대를 맸다. 그런데 당시 노조의 '성공' 배경에는 '주재기자 제도'가 있었다.

광주의 각 신문사들은 시내 자치구 가운데 유일하게 광산구에만 본사 기자가 아닌 '주재기자제'를 운영해온 것이다.

광산구는 당초 '광산군'에서 뒤늦게 광주시에 편입됐는데, 시에 편입된 이후에도 지역 신문들의 '주재기자 관행'은 계속됐다.

광산구 공무원들이 "왜 우리만 시골 취급 하느냐"고 토로하는 것은, 자존심 문제보다는 '주재기자들'의 모습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읽힌다.

실제 이번 광산구 노조쪽은 A기자 소속 신문사에 우편으로 보낸 성명에서 "일부 주재기자들이 구청에 상주하면서 홍보기사를 미끼로 이권에 개입하고 지적보도를 통해 공무원을 압박하고 있다"는 내용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재기자 제도'라는 불씨

청사에서 밀려난 기자들이 당장 청사로 돌아가긴 쉽지 않을 전망이다. 노조가 브리핑룸을 '접수'하고 있는 상태인데다, 기자들 사이에선 노조의 배후에 구청장의 의중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불편한 심기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광산구 관계자는 "노조가 밀어붙이는 일일뿐, 구청장은 당시 상황을 제대로 알지도 못했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오는 9월쯤 청사 사무실 재배치를 하면서 별도의 기사송고실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때문에 브리핑룸 폐쇄로 폭발한 노조와 기자들의 갈등은, 그즈음이면 일단 수면 아래로 잠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광산구에 '주재기자 제도'가 계속되는 한, 양쪽의 갈등은 언제든 수면 위로 부상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실정이다.

광주지역 일간신문 광주드림 행정팀 기자입니다. 기자생활 초기엔 지역 언론에 대한 감시자 역할을 주로 했는데, 당시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을 많이 절감했구요. 몇 년 전부턴 김광석의 노래가사 중 "인정함이 많을수록 새로움은 점점 더 멀어진다"는 말을 새기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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