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6월 18일 ‘방송, 우려먹기로 일관할 셈인가?’라는 제목의 <미디어스> 기고를 통해 방송 프로그램 제작자들의 아이템 개발의 중요성과 동일한 내용의 중복방송에서 오는 여러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하늘 아래 새로울 것이 없다고는 하지만 이미 시청자들에게 소개됐던 동일한 내용을 1년도 지나지 않아 또 다시 방송하는 것은 제작자들의 프로그램 아이템 개발에 대한 안이한 직업의식이며, 결국 소중한 전파낭비라고 주장했다.

현재 국내에는 KBS, MBC, SBS, EBS 등의 지상파와 100여개 이상의 케이블과 위성방송 PP(Program Provider)사가 한시도 쉼없이 방송프로그램을 쏟아내고 있다. 사실상 그 모든 내용을 모니터링하고 그 중에서 동일한 내용이 무엇인가를 일부러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또한 일반 시청자 입장에서는 방송내용을 굳이 비교하면서까지 시청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프로그램에서 동일한 내용과 아이템을 중복 소개하는 사례가 발견되는 것은 아마도 프로그램 개발 과정에서의 자료조사 부족이 가장 큰 이유일 듯싶다. 더불어 연출자와 작가 그리고 제작편성 담당자들의 깊이 있는 고민 또한 부족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많은 프로그램 기획자들은 언제나 프로그램 아이템 개발에 고민하고 있다. 신문과 잡지를 살피고 책을 읽으며 새로운 사실을 찾아내려 온갖 정보망을 활용한다. 나아가 인터넷과 고문서는 물론 사회적 이슈를 찾아내기 위한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그런데도 제작기간이 늦어지거나 편성일이 어긋나게 되면서 이미 시청자들에게 일반화된 내용을 뒤늦게 소개하는 한발 늦은 프로그램이 되기도 하며, 너무 앞선 이야기를 함으로써 시청자가 이해할 수 없는 다른 세상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2007년 MBC 추석특집 <자연산> VS KBS 수요기획 <돗돔>

MBC에서는 지난 2007년 9월 24일 추석특집으로 <자연산>이라는 타이틀의 2부작 다큐멘터리를 방송하면서 ‘다금바리’와 ‘돗돔’에 대한 이야기를 시청자에게 소개했다. 다금바리는 일반시청자들에게 어느 정도 알려진 물고기 어종이지만 ‘돗돔’이란 생소하기 그지없다. 따라서 많은 시청자에게 어린아이 몸집만한 돗돔 이야기는 추석을 맞아 모인 가족들 사이에서 이야깃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 2007년 9월 24일 MBC 추석특집 <자연산> 1부 전설이 된 물고기들 중 <돗돔>
방송은 돗돔이 생태연구도 체계적으로 진행되지 못한 상태에서 멸종 위기를 맞고 있다며, ‘통영해양수산사무소’의 인공종묘 생산 사업을 소개했다. 멸종 위기의 돗돔을 인공생산하려는 연구원들과 그것에 관한 추억을 간직한 바닷가 사람들과 어부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연산에 대한 소중함을 시청자에게 전했다.

그런데 지난 7월 23일 KBS 수요기획에서는 독립제작사 리스프로에서 제작한 <전설의 대물 돗돔을 찾아서>가 방송됐다. 불과 10개월 전 MBC의 추석특집을 통해 시청자에게 그 존재(?) 사실과 멸종위기에 관한 내용이 방영되었던 것을 이번에는 KBS수요기획에서 방영한 것이다.

타이틀만 보면 마치 낚시꾼들과 어민들의 돗돔 포획에 대한 기대와 포부를 한껏 녹여 낸 듯한 의미를 담고 있다. 실제 프로그램도 대한 어민들의 이야기와 함께 돗돔 포획 경험이 있는 낚시전문가와 함께 배를 타고 돗돔을 잡으러 바다로 나가는 것으로 기획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돗돔 포획에는 실패하고 각종 자료화면을 이용해 구성함으로써 결국 “전설의 물고기 돗돔”에 대한 낚시꾼들과 어민들의 동경만을 이야기하는 수준에 그치고 말았다.

이는 지난해 MBC 추석특집 <자연산> 중 제1부로 방영된 ‘전설이 된 물고기들’와는 사뭇 다른 단순한 ‘돗돔’의 신기함과 어민들의 동경 그리고 그것의 특별함을 보여주는 흥미성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았다고 평가 할 수 있다.

그간 방영되었던 KBS 수요기획 프로그램들과 소재의 참신성, 내용의 구성 등을 비교했을 때 이번 방송은 여러모로 부족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 통영해양수산사무소 박정희 연구원의 인터뷰 : 상 MBC추석특집(2007) 하 KBS수요기획(2008)
통영해양수산연구사무소의 박정희 박사의 인터뷰 또한 지난 MBC 추석특집에서와 별반 다르지 않았고, 어린이가 돗돔을 안고 있는 사진 이미지 역시 동일했다. 이러한 전체 정황을 분석할 때 필자는 이번 KBS 수요기획의 <전설의 대물 돗돔을 찾아서>는 결국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반복되고 있는 방송업계의 ‘아이템 우리기’의 전형이라고 판단한다.

이전 방송과 별반 다르지 않은 정보, 오히려 후퇴한 구성과 진부한 이야기 구조는 공공재인 지상파의 소중한 전파를 낭비하는 불필요한 작업이다. 방송 제작 스태프는 불가피하게 동일한 소재와 주제를 다루게 될 경우 반드시 이전에 방송되었던 프로그램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내용 파악을 한 뒤 자신만의 이야기를 시청자에게 전하려는 고민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인터넷 검색 한 두 번이면 이전에 방송되었던 내용을 쉽게 검색하고 자료를 찾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프로그램 연출자는 취재 전 충분한 사전정보의 취득과 정리 그리고 구성과 방향성에 대한 명확한 원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똑같은 프로그램 타이틀, 그러나 다른 이야기 <자연산>

앞서 언급했던 2007년 추석특집 MBC다큐멘터리의 프로그램 타이틀은 <자연산> 이었다. 그리고 각 부제로 1부 ‘전설이 된 물고기들’과 2부 ‘황금어장을 찾아서’로 방영되었다. 언젠부턴가 자연산보다 인공 양식으로 생산된 바닷물고기가 우리 식탁에 오르면서 자연산에 대한 그리움과 동경이 이 프로그램으로 탄생한 것이다.

<자연산>이라고 하는 조금은 광범위할 수 있는 영역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중 추석특집으로는 ‘다금바리’ 와 ‘돗돔’ 그리고 ‘민어’와 ‘조기’에 대해 초점을 맞춰 그것들의 소중함을 소개했다. 점차 사라지는 자연산을 인공종묘를 통해 양식화함으로써 멸종위기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열정과 그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2008년 7월 MBC스페셜에서는 <자연산> 이라고 하는 동일한 프로그램 타이틀로 두 편의 또 다른 자연산에 관한 이야기를 전했다. ‘장어와 인간’ 그리고 ‘해삼과 인간’ 편이 그것으로, 지난 추석특집과는 다른 이야기를 통해 시청자에게 새로운 정보를 제공했다.

이처럼 같은 타이틀이지만 서로 다른 이야기를 통해 제작자가 시청자에게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명확하게 무엇인지를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일한 타이틀뿐 아니라 중복되는 아이템 소재일지라도 이야기하고자 하는 방향과 방식 그리고 내용이 다르다면 누구도 문제 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봐도 지난번 사례를 또 다시 활용하고 그 내용과 형식까지 유사하다면 결국 전파낭비일 뿐이라는 사실은 명백해진다.

시청자의 날카로운 비판적 시청이 필요할 때

인터넷과 함께 각종 미디어의 발달로 우리는 수없이 많은 정보를 일방적으로 제공받게 된다. 너무 일방적인 정보로 인해 그것의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것조차 혼란을 겪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특히 지상파 방송을 통한 정보의 전달은 그 어떤 매체보다 큰 파급효과를 갖는다.

따라서 방송 프로그램 제작자는 반드시 정확한 정보를 올바르게 시청자에게 전달하려는 의식이 필요하다. 또한 정보와 소식을 전함에 있어서 그것이 과거에 어떠한 내용으로 어떻게 구성되어 시청자에게 전달되었는지 등에 대한 사전 정보를 파악하고 그것과 상충되는지 혹은 중복되는지를 면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것과의 차별을 위한 연출자의 능동적인 연출력도 함께 동반되어야 한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TV를 통해 전달되는 정보에 대해 그 내용을 100%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자세에서 벗어나 그 진위 여부에 대한 판단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비판적인 시청형태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동일한 정보에 대한 비교분석과 잘못된 내용에 대한 시청자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시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 해당 프로그램의 홈페이지는 물론 각종 미디어 비평매체를 이용한 기고 등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충분히 전달할 때 공급자와 수용자의 관계는 더욱 밀접해질 수 있다. 이 같은 시청자 활동은 나아가 대한민국 방송영상 시장에서의 콘텐츠 경쟁력을 높이는 밑거름으로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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