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K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인물인 김경준씨 귀국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다. 김씨가 한국 귀환을 위한 절차를 밟고 있는 가운데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쪽이 김씨의 본국 송환을 연기해달라는 신청을 미국 법원에 내면서 논란이 가열되는 양상이다.

핵심이 뭘까. 이명박 후보 진영의 이중플레이다. 이명박 후보는 김경준씨의 조기귀국설이 나오던 지난 11일 “김경준씨는 빨리 한국에 들어와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 후보만 밝힌 게 아니다. 한나라당도 박형준 대변인도 “당초 김씨가 들어와 진실을 제대로 규명하는 게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 한겨레 10월13일자 1면.
‘그랬던’ 이 후보 진영이 김경준씨의 본국 송환을 연기해달라는 신청을 미국 법원에 냈다? 한편에서는 귀국해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귀국 연기를 요청하는 ‘이중 처신’의 배경이 무엇인지를 당연히 짚어야 한다.

이중플레이라는 단어는 찾아보기 힘든 방송사 리포트

13일자 방송사들도 이 문제를 주요하게 처리했다. 하지만 짚어야 할 부분은 제대로 짚지 않은 채 논란으로 처리했다. 이명박 후보 쪽 ‘이중플레이’의 문제점을 짚지 않고, 김경준씨 귀국을 두고 벌어지는 정치권 공방 쪽에 초점을 맞췄다.

방송사들의 이 같은 태도는 “김경준씨는 빨리 한국에 들어와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이명박 후보의 지난 11일 발언과 이번 연기신청을 묶어서 처리한 게 아니라 별개로 바라봤기 때문이다. 정치부 기자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둘의 연관성을 파악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알고도 모른 척’ 했다는 말이 좀더 정확할 것이다.

이날 방송사 메인뉴스에서 이 후보 쪽의 처신 문제를 짚은 곳은 MBC가 대통합민주신당 반응을 전한 것 말고는 없었다. ‘이중플레이’ 혹은 ‘이중처신’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방송사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은, 방송사들이 이명박 후보와 관련한 문제에 얼마나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지를 잘 보여준다.

한나라당 입장만 전한 KBS … 이명박 눈치보기?

▲ KBS 10월13일자 <뉴스9>.
특히 KBS는 방송3사 가운데 가장 소극적인 보도태도를 보였다. 문제가 가장 많았다는 말이다. 이날 KBS가 <뉴스9>에서 전한 리포트의 제목은 ‘귀국 vs 미에 남아야’다. 전형적인 공방 위주의 전달 방식이다. 때문에 핵심은 고스란히 비껴갔다. 게다가 이번 사건과 관련해 KBS가 전한 정치권 반응은 한나라당이 전부였다.

KBS 리포트의 문제점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MBC와 SBS가 김경준씨 측 변호사인 게일 이벤스의 입장을 반영한 것과는 달리 KBS는 이마저도 전하지 않았다. 이벤스 변호사는 “직접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연기 신청을 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는데 이 같은 발언은 이 후보 쪽이 무슨 권한으로 연기 신청을 냈는지 자체가 쟁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SBS도 KBS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았지만 문제점이 발견된다. SBS는 게일 이벤스 변호사를 인터뷰하면서 “김백준 씨가 연방 법원에 (김경준 인신보호청원항소 각하) 결정을 유예해 달라고 신청했다”는 부분을 내보냈는데, 이걸 굳이 직접 인용 방식을 통해 내보낼 필요가 있었을까. 이미 앵커 멘트나 도입 부문에 연기신청을 내 논란이 되고 있다고 해놓고 굳이 이 부분을 다시 강조(?)한 이유는 뭘까. 오히려 “직접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연기 신청을 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게 이번 사건의 쟁점이 아닐까.

▲ MBC 10월13일자 <뉴스데스크>(왼쪽)와 같은 날짜 SBS <8뉴스>(오른쪽).
MBC의 경우 △이명박 후보가 겉으로는 김경준 씨가 빨리 한국으로 와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하면서 뒤로는 측근을 시켜 김 씨의 송환을 막고 있다는 대통합민주신당의 반응과 △“김(경준)씨의 송환여부는 김 씨와 미국 정부가 결정할 일인데 제 3자가 무슨 자격으로 그런 요청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게일 이벤스 변호사의 입장을 전하는 등 가장 ‘적극적인’ 보도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이명박 후보의 처신과 관련한 문제 즉 ‘이중플레이’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다. 특히 제목이 '송환연기 공방'이다. 처신을 직접적으로 문제 삼기엔 상대가 너무 버거웠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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