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미디어스

Updated 2021.9.19 일 13:09
상단여백
HOME 뉴스 비평
청와대 언론 전략의 변화. 매수에서 무시로?이봉수 원장의 ‘청와대 기자 사망 선언’에 대한 부연
한윤형 기자 | 승인 2013.11.12 15:43

8일자 <경향신문> 28면에 실린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장의 칼럼이 화제다. 이봉수 원장은 <청와대 기자들은 죽었다, 민주주의와 함께>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청와대 취재가 되지 않는 청와대 기자들의 처지 속에서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꽤 긴 칼럼의 내용 중 주요한 부분을 추려본다면 다음과 같다. 
 
청와대 기자들은 죽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래 국내 언론과 한 번도 기자회견을 하지 않은 진기록을 갖고 있다. 대선 후보 시절 의혹을 해명하기 위해 긴급 기자회견을 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집권 후에도 외국 언론과 꽤 여러 번 인터뷰한 것에 견주면 국내 언론 홀대가 아주 심하다. 9월26일 복지공약 후퇴를 해명할 때도 기자들을 대기시켰다가 국무회의장에 입장하게 해 5분 정도 발표문을 읽은 게 고작이었다. 물론 질문은 받지 않았다. (...)

대통령 ‘책임제’가 대통령 ‘무책임제’처럼 운용되고 있는 현실은 대통령 탓이 크지만 언론에도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청와대 홍보담당관처럼 처신하는 상당수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책임은 더욱 엄중하다. 

몇몇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취재했더니 오전 7시30분과 오후 5시30분에 이정현 홍보수석이 ‘브리핑’이라는 것을 하지만 보도되길 원하는 것만 얘기할 뿐 건질 게 별로 없다는 반응이었다. 조금만 ‘까칠한’ 질문을 하면 이 수석은 10초쯤 입을 꾹 다물어 버려 기자들이 알아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간다고 한다. 대통령은 아예 만날 수도 없고 홍보수석에게도 잘못 보일까 전전긍긍하니 대통령 미화와 성과 위주로 보도가 된다. (...)
 
권력자에 대해 경외심이 생기면 기자는 끝장이다. 150명이 넘는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각 언론사에서 파견한 엘리트들이다. 그들이 자부심을 가지려면, 아니, 최소한 ‘군주제’를 원하지 않는다면, 청와대 기자실의 ‘침묵하는 전통’을 깨야 한다. 영국과 미국 언론은 민주주의를 누리기만 하는 게 아니다.“   
 
   
▲ 8일자 경향신문 28면 이봉수 칼럼
이 칼럼은 박근혜 정부 치하 청와대 기자실의 풍경을 전달해준다. 현장의 기자들은 칼럼이 묘사하는 세태가 사실이라고 전한다. 이는 같은 보수정권이었던 전임 이명박 정부에 비해서도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발 단독'이 사라졌다
 
한 일간지 기자는 “요즘은 조선일보조차도 청와대 취재가 전혀 안 된다. 잘 안 되는 정도가 아니라 전혀 안 된다고 보면 된다”라고 설명한다. 다른 기자 역시 “정권이 바뀌고 나서는 ‘조중동’조차 청와대발 단독 기사를 만든 적이 없다. 청와대발 단독보도라고 기사를 내는 매체가 있었지만 두시간 만에 대변인이 뛰어와서 ‘사실무근’이라 하는 정도다. 그 매체는 이명박 정부 때도 ‘뻥 단독’을 종종 냈던 곳인데, 그런 단독이 아니면 뭐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명박 정부의 경우 주류 보수언론에만 정보를 흘려서 그들을 활용하는 언론전략을 구사했다. 그렇기에 진보언론들의 경우 소외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비교적 정보격차가 줄어들었던 ‘민주정부 10년’ 이후 출범한 보수정권이기에 체감낙차가 더 심했다고 한다. 
 
한 진보언론 기자는 “나라 전체로 보면 지금의 통제주의나 비밀주의적 태도가 더 심각한 것이긴 한데, 소위 진보매체 입장에선 지금이 더 편한 면도 있다”고 설명한다. 다른 진보언론 기자 역시 “소위 말하는 ‘물먹을’ 일이 없는 거다. 예전엔 이명박 정부가 신뢰하는 보수언론 몇 개만 알고 있었다면 이제는 다 같이 모른다. 차별은 안 당해서 지금이 처음이 낫다는 자조 섞인 푸념도 있다”고 전했다.    
 
이런 태도가 진보언론의 이기주의 내지는 패배주의의 발로로 보일 수도 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처럼 언론을 관리하는 것도 그리 바람직한 통제전략으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한 기자는 “어딘가에 ‘술자리 단독’을 주지 않는다는 점에선 긍정적인 면모도 있다. 이를테면 공식적인 소통 창구를 통해서만 정보를 준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평가할 소지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 기자는 “하지만 지금의 홍보수석이나 대변인실은 적극적인 정보제공이나 소통을 하려는 생각이 없고 정보통제에만 몰두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거다”라고 덧붙였다. 칼럼에도 나오는 이정현 홍보수석의 태도를 생각해 봤을 때 현 청와대의 언론관리 전략의 문제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유추해볼 수 있는 증언이다. 만약에 공식적인 소통 창구의 정보 제공량이 많아지고 그 외 사적인 접촉을 줄인다면 이는 참여정부의 언론정책에 근접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현 청와대의 의중은 그것도 아니다. 
 
'설득'에서 '매수'로, 다시 '매수'에서 '무시'로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출입 경험이 있었던 다른 한 기자는 “사실 이명박 정부 때도 청와대 출입하는 후배기자들을 이해하지 못해 질책하곤 했다. 이명박 정부 때도 칼럼에 나오는 것처럼 기자회견은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 기자는 “참여정부 초기엔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해 기자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고 대변인 브리핑은 아예 전국민을 상대로 나가기도 했다”고 부연했다. 
 
사실 참여정부의 언론대응도 정국운영의 측면에서나 언론개혁의 측면에서나 성공적이라곤 볼 수 없었다. ‘조중동’으로 불리는 보수언론은 무엇을 하든 우호적으로 쓰지 않았고, 언론대응을 하는 이들은 진보언론으로 분류되는 <한겨레>와 <경향신문> 등의 나름의 잣대로 비판을 하는 것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조중동’과 ‘한경’ 사이에서 길을 잃은 참여정부는 <연합뉴스>에 대한 지원금을 늘리고 <연합뉴스>의 기사를 <네이버>와 같은 포털에서 유통하도록 유도했다. 이는 당시로서는 ‘조중동’ 여론독점에 맞서 새로운 플랫폼인 포털을 활용한 나름의 대응책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장기적으로 볼 때 한국 언론의 포털 종속성이 심화되고 정권교체 이후 인터넷 여론이 급격하게 보수화되는 한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비판을 달가워하지 않았을지언정 참여정부 청와대는 기자들을 설득의 대상으로 여기긴 했다는 게 당시 경험자들의 후문이다. 반면 이명박 정부 청와대의 경우 일부 매체의 일부 기자들을 자기편으로 만들면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는 것이 경험자들의 설명이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양쪽 모두 갈등을 관리하려는 의사를 가지고 있다면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에는 그런 의지 자체가 없다. 야당을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언론의 존재 자체를 무시하고 정보가 새어나가는 것만 엄격히 통제하는 상황이다. 
 
<동아일보>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연재하고 있는 <비밀해제 MB5년> 시리즈에서 박근혜에 대한 김무성의 다음과 같은 발언을 전한 바 있다(2013년 5월 25일자 5면). 
 
'영애 의식'이 발현된 청와대의 풍경 
“너거, 박근혜가 제일 잘 쓰는 말이 뭔지 아나? (...) 하극상이다, 하극상! 박근혜가 초선으로 당 부총재를 했는데 선수(選數)도 많고 나이도 많은 의원들이 자기를 비판하니까 ‘하극상 아니냐’고 화를 내더라. 그만큼 서열에 대한 의식이 강하다. 그 다음으로 잘 쓰는 말이 ‘색출하세요!’다, 색출…. 언론에 자기 얘기가 나가면 누가 발설했는지 색출하라는 말이다. 그 다음이 근절이고…. 하여간 영애(令愛) 의식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는 이러한 박근혜의 성격을 명확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칼럼에서도 지적되었듯 국내언론과는 기자회견도 하지 않는 현실은 흔히 해외순방과 비교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벌써 다섯 번째 해외순방을 다녀왔다. 
 
이는 역대 대통령들의 해외순방 횟수를 생각해 보건대 아직까지 과도한 외유는 아닐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14회(연평균 2.8회) 28개국, 김대중 전 대통령의 23회(연평균 4.6회) 37개국, 노무현 전 대통령의 27회(연평균 5.4회) 55개국,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임기 5년간 49회(9.8회) 84개국에서 보이듯 민주화 이후 대통령들의 해외순방은 점점 더 늘어나는 추세이고 박근혜 대통령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압도적인 ‘기록’을 깨는 것도 쉽지는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일방적인 소통이라는 비판을 듣기는 했지만 정기적인 라디오 연설이라도 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에 비해서도, 박근혜 대통령이 ‘목소리를 너무 듣기 힘든 대통령’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대통령도 말하기 싫어하고 기자들도 ‘정보 유출이 있어선 안 되는 대상’ 취급을 당하는 상황에서, ‘대통령 책임제’가 ‘대통령 무책임제’처럼 운용되고 있다는 비판은 적실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한윤형 기자  a_hriman@hotmail.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윤형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72길 22 가든빌딩 608호 (우) 07238  |  대표전화 : 02-734-9500  |  팩스 : 02-734-2299
등록번호 : 서울 아 00441  |  등록일 : 2007년 10월 1일  |  발행인 : 안현우  |  개인정보책임자 : 안현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수현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 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안현우 02-734-9500 webmaster@mediaus.co.kr

미디어스 후원 계좌 안내 : 하나은행 777-910027-50604 안현우(미디어스)
Copyright © 2011-2021 미디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mediaus.co.kr

ND소프트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