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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책과 나 사이의 관계는 그다지 좋지 못하다. 로베르토 볼라뇨의 표현을 빌자면 “그리스 선박왕과 그 아내의 관계, 다시 말해 아내를 사랑하는 유부남이지만 아내를 최대한 안 보려는 관계” 같다고나 할까. 누구나 그렇듯 내게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도 읽지 않은 채 말과 글의 침묵 속에서 보내는, 텅 비었지만 그 자체로 충만한 시간…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책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보낼 수 있는 그런 잠깐의 시간, 시간, 시간들이 필요할 뿐이다. 모든 유부남들이 꿈꾸는 것처럼.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밥벌이 탓이다. 어디서 무얼 하건 마음 속 한 구석에 있는, 읽고 써야하는 책들의 존재가 나를 심란하게 한다. 결국 억지로 책을 집어 들지만, 점점 소원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누군가 내게 “4주 후에 뵙겠습니다”라고 한다면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일 것 같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잠 못 드는 새벽, 책들에 둘러싸인 채 스스로에게 묻는다. 어느덧 공간의 대부분을 차지한 책들의 부피가 나를 숨 막히게 한다. 책과 나 사이의 ‘아름다운 거리(한 마디로 “나는 침대, 너는 책장”)’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그렇다고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루가 멀다고 인터넷 서점을 클릭한 건 나였고, 숨어 있는 헌책방들을 찾아 발품을 판 것도 나였으니까(타임머신이 있다면 그때의 나는 오늘의 나에게 영문도 모른 채 두드려 맞을 것이다). 잠도 잊은 채 울고 웃으며 하얗게 지새던 밤들이 기억난다. 행여나 삐뚤어질까 정성스레 밑줄을 긋고, 조금씩 줄어드는 페이지가 아쉬워 이미 읽은 페이지를 읽고 또 읽던 날도 많았다. 더는 아니다. 생활이 우리를 집어삼켰고, 어느덧 우리는 같은 통장을 두고 고민하는(돈을 벌기 위해서는 책이 필요하고 책을 사려면 돈이 필요하지만 돈은 언제나 부족하다) 비즈니스 파트너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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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쓰고 보니 이 무슨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는 한심한 유부남의 일기인가 싶다. 나는 중년도 아니고 유부남도 아니다. 한심하긴 하지만 새로운 뉴스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비유라는 게 이렇게 무섭다는 사실이다. 고삐를 똑바로 쥐지 않으면 순식간에 우리를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데려가고 마는 것이다 - 캉디드를 자꾸만 사형장으로 데려가던 그의 말(馬)처럼. 운명을 암시하는 듯한 말의 행동에 캉디드는 불안에 떨었고, 그 말이 원래 장의사의 것이었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밝혀진다. 그러니까 내 말은,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쓰는 비유 또한 장의사의 비유인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때때로 어떤 비유는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하지만 모든 비유는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는 법이다. 오늘의 진실은 이렇다 : 나와 책은 지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중이고, 그 책임은 전적으로 내게 있다. 내게는 그리스의 선박왕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처럼 거창한 이름도, 어마어마한 재산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나의 처지를, 조건을, 혹은 입장을 찬찬히 들여다보기를 거부한 채 끊임없이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쯤에서 그만두도록 하자. 더는 책이라는 존재에 대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반적인 서평을 기대하며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그것이 오늘 나의 입장이다. 그러니 오늘은 이쯤에서 장사를 접겠습니다, 그만 돌아가 주시길, 4주 후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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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아직도 안 가셨네. 곤란한데…. 그럼 이렇게 합시다. 손님들의 요구를 들어드린답시고 억지웃음을 지으며 엉터리 글을 짓느니, 물론 손님도 그런 걸 바라진 않으시겠죠, 대신 제 것보다 훨씬 훌륭한 서평들을 소개해드리는 걸로요. 글 팔아서 장사하는 입장에서야 썩 달갑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하는 게 마음이 편할 거 같네요. 네, 뭐, 다 사람 사는 일이니까요. 지금 당장 인터넷 서점에 접속해서 <이모부의 서재>를 쳐보세요. 저자 이름은 임호부입니다. 네, 임 호 부. 아니, 책 제목은 이모부고요. 원하신다면 가까운 서점으로 달려가셔도 좋겠지만, 큰 서점에 가야 할 거예요. 작은 출판사에서 낸 책이고, 그리 많은 부수를 찍지도 않았다고 하니까요. 네? 큰 출판사에서 많이 찍어야 좋은 책 아니냐고요? 세상에, 손님에게는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네요. 그만 돌아가 주시겠어요? 지금 당장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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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호부는 ‘입장들’이라는 꼭지를 이렇게 시작한다.
입장(立場)은 입장(入場)을 부른다. 말장난이다. 설 입(立)자와 들 입(入)자가 공통적으로 거느린 마당 장(場)을 떠올리다가 문득 입장에 가장 어울리는 장면은 결혼식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입장(立場)은 결혼식장에서 하객을 앞에 두고 신랑 혹은 신부로서 혼인서약이 이루어질 연단을 바라보며 ‘서는 것’이고, 입장(入場)은 신랑 신부로서의 입장이 분명해진 뒤 연단을 향해 ‘들어서는 것’이다. 입장이 정해지지 않으면 입장이 허락되지 않는다. (183쪽)
그는 이어 자신의 우유부단함을 이렇게 설명한다. “하지만 우유부단하다는 것은 분명한 입장을 갖지 못하는 것, 즉 어느 쪽도 제대로 바라보고 서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쪽으로든 입장해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주저하는 것일 뿐이다.”(184쪽) 그는 입장(立場)이 분명한 사람이고, 그것은 어디에도 입장(入場)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것은 단순히 ‘우유부단’이라는 말로 치부할 수 없는 입장이기도 하다. “소설의 입장(立場)은 어느 쪽으로도 입장(入場)하지 않을 때 가장 분명해진다”(186쪽)는 그의 말처럼, 그것은 문학의 입장이며 동시에 독자의 입장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독자(讀者)로서의 독자(獨子)의 입장이라고 할까. 또는 독자(獨子)로서의 독자(讀者)의 입장이라고 해도 좋다. 어차피 말장난이다.
하지만 모든 말장난에는 일말의 진실이 담겨 있는 법이다. 그는 책을 읽겠다는 입장을 취하자마자 책 속으로 곧장 입장하는 행복한 독자는 아니지만, 그런 의미에서는 차라리 불행한 독자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그의 입장이 그의 글을 특별하게 만든다. 정치한 분석을 한다거나 방대한 정보를 준다거나 투명한 감수성을 엿볼 수 있다는 게 아니다. 그런 말이 아니다. 다만 그는, 책이 제공하는 이야기의 흐름에 자신을 의탁하기를 끈질기게 거부하는 그는, 더 많은 것을 본다. 김훈의 소설을 읽으며 병상 옆자리에서 “나이 아흔이나 돼서 병원에 누워 남의 손에 의탁하고 있으려니까 사는 게 참 치사하다, 그치, 엄마?”라고 말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카프카의 소설을 읽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도 여전히 만연한 합의와 치욕을 보고, 정성일의 평론을 읽으며 곳곳에 숨겨진 (열광하는 자의) 숨 가쁜 헐떡임과 감탄사를 읽는다. 마치 외주교정자로서 그가 책과 거리를 둔 채 각종 오탈자와 비문을 읽어내는 것처럼.
이렇게 말하는 건 어떨까. 그의 글은 사랑에 빠진 열정적인 연인보다는, 특별할 것도 없고 때론 지루한 결혼생활을 담담하게 이어가는 노부부를 닮았다고. 이때 중요한 것은 거리다. 너무 가까워서도 안 되고, 너무 멀어서도 안 된다. 그것을 위해서는 거리를 가늠하는 감각이 필요하고 끊임없이 자신과 상대를 돌아봐는 세심함이 필요하며, 세상 속에 자신들의 입장을 매일 새롭게 세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다, 용기. 치사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니 <이모부의 서재>를 가리켜 용기의 기록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어울리지 않는 단어인지도 모르겠지만, 오늘 나는 그렇게 말해야겠다. 책 바깥에 ‘현실’이라는 것이 ‘따로’ 존재한다고 말하는 멍청이들은 엿이나 처먹으라지.
서평집은 대개 세 종류로 나뉜다. 독자를 향해 쓴 것, 다른 저자들을 향해 쓴 것 그리고 저자 자신을 향해 쓴 것, 첫 번째 경우는 대개 독자를 통쾌하게 해주거나 최소한 독자에게 유용하다. 반면 거론된 저자들은 얼굴이 붉어질 수밖에 없다(장정일의 <독서일기>와 로쟈의 번역비평이 여기에 해당된다). 두 번째 경우는 독자는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거론된 책의 저자는 손발이 오그라들게 만든다(이른바 주례비평으로 채워진 비평집들이 이 경우다). 세 번째 경우는 저자의 만족으로 그친다(서평 형식으로 쓰인 에세이집들이 대개 그렇다). 책은 소통의 장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저자와 독자와 평자가 서로 다른 길을 가는 셈이다. (67쪽)
임호부의 서평은 어느 부류에도 들지 않는다. 굳이 말하자면 책을 향해 쓴 것이라고 할까. 한 권의 책이 아니다. 책이라는 ‘장(場)’을 향한 것이다. 그곳에는 그가 읽은 모든 책들이 있고, 나와 당신이 읽었고 또 읽을 모든 책들이 있다. 책들을 향해 세워진 그의 입장이 있고, 그 입장에 선 채 그가 살아가는 세상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들 각자의 입장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러니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내가 무척이나 부끄러웠다는 사실을 고백해야겠다.
부끄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지만, 아무려나, 마침내 ‘저자’라는 입장에 자신을 세운 그의 입장을 환영한다. 그가 본격적으로 서평을 쓰기 시작한다면 나는 아마 새로운 밥벌이를 고민해야 할 것 같다.
* 덧붙임 : ‘어느 외주 교정자의 독서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모부의 서재>는 인터넷 서점의 서재에서 ‘후와’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가 그간 썼던 글을 추려 모은 책이다. 임호부라는 이름은 필명인데,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외주 교정 일을 시작하며 출판사 직원들이(“식당에 가면 주인아주머니에게 무람없이 이모라고 부르는 것”처럼) 이모부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을 어느 신입 편집자가 이름으로 착각하고 교정지가 담긴 봉투 겉면에 ‘임호부께’라고 써서 내밀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임호부가 되었고, 그의 첫 책은 <이모부의 서재>가 되었다.

금정연

이런저런 매체에 책에 관한 글(90%)과 책에 관한 글이 아닌 글(10%)을 납품하는 소규모 자영업자이자 LG 트윈스팬. 지은 책으로 <서서비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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