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 융합 시대를 맞아 매체별로 진행되고 있는 내용규제 시스템을 합리적으로 재구성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매체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다양한 플랫폼이 출연하는 상황에서 같은 내용의 콘텐츠를 다른 심의 기준과 절차에 따라 심의하는 현재의 일관성 없는 내용규제는 사업자와 수용자 모두에게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는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방송위원회,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영상물등급위원회, 게임물등급위원회, 국가청소년위원회 등이 매체별 내용 규제를 분산해 담당하고 있다. 또한 법률에 근거한 기구는 아니지만 사업자들의 필요에 의해 운영되는 자율심의기구도 매체 산업의 규모 확대와 장르 생성에 따라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 언론개혁시민연대는 10월 10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 18층 외신기자클럽에서 '미디어 구조변동과 합리적인 규제정책'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서정은
이 같이 매체별 내용규제를 담당하는 기구가 분산돼 있는 상황에서는 다매체 다채널 시대의 콘텐츠 심의를 합리적으로 진행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한 내용규제의 문제는 현재 방통융합 기구개편 논의 속에서 함께 유기적으로 이뤄져야 하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어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난 10일 언론개혁시민연대 주최로 열린 '미디어 구조변동과 합리적인 규제정책' 토론회에서는 방송·통신·영화·게임 관련 내용규제 기구의 일원화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한국여성민우회 강혜란 미디어운동본부 소장은 콘텐츠 내용규제 기능을 통합해야 하는 이유를 세가지 관점에서 설명했다. 우선 국가 입장에서는 중복 또는 누락 심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된다. 사업자 입장에서는 중복심의 부담 해소와 예측가능한 심의 환경의 조성이 필요하고, 수용자 입장에서는 어린이·청소년 보호와 이용자 편의성이 증대된다.

'동일 콘텐츠 동일 규제' 원칙 따라 내용규제 기구 일원화돼야

강 소장은 "현재 지상파방송에 대한 심의규제와 케이블TV에 대한 심의규제, 게임·영화에 대한 심의규제가 개별적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급변하는 매체환경은 수용자들이 언제 어디서나 다양한 매체에서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지금처럼 동일한 콘텐츠를 매체별로 다르게 심의하는 것은 혼란을 야기할 수 밖에 없고 심의의 사회적 정당성도 확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방송위, 정보통신윤리위, 영상물등급위, 게임물등급위를 통합해 순수한 민간심의기구로 일원화하고 국가가 재원을 부담함으로써 수용자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됐다.

강 소장은 "심의기능의 거대 권력화, 매체 차별성에 대한 부적절한 고려 등의 위험성은 지적될 수 있지만 현재의 심의기능 가운데 전반적인 내용을 규제의 일관성 유지라는 측면에서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날 토론회에서는 방송의 공공성 확보를 위한 무료·유료방송 시장의 획정, 그에 따른 규제정책의 분리도 쟁점으로 떠올랐다.

전국언론노조 채수현 정책국장은 "방송통신 융합시대에 과거의 규제기준으로는 공공서비스로서의 무료방송이 그 역할을 다할 수 없고, 유료방송 또한 산업 기능과 시청자의 요구에 답할 수 없다"며 "방송시장을 유료와 무료로 획정하는 것은 무료방송을 확대 강화함으로써 유료방송을 향유하지 못하는 계층을 고려할 수 있고, 유료방송 시장의 경쟁적 활성을 도모해 시청자 후생에 기여할 수 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줄어드는 방송 공적영역…유료·무료 시장 획정으로 분리규제 필요

토론자들은 내용규제 기능의 일원화와 무료·유료방송 시장 획정의 취지에 대해서는 큰 틀에서 동의했으나 각론에서는 다양한 의견을 개진했다.

문화관광부 박병우 뉴미디어산업팀장은 "심의의 일관성과 중복규제를 해소하는 것에 동의하고 기관과 자본의 영향력을 없애기 위한 심의기관의 독립성 담보 역시 중요하다"면서도 "내용 규제에 뒤따르는 표현의 자유 문제, 소수자 보호까지 고려하는 다원적 시스템, 게임의 기술심의 등 장르의 특수성을 반영한 규제기관의 설계 등도 면밀하게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보통신부 박노익 방통융합전략팀장은 "방송의 유료·무료시장 분류의 큰 틀에는 찬성하지만 여기에 콘텐츠 시장 문제가 빠져있어 추가 논의가 더 필요하다"며 "방송계가 안고 있는 전반적인 현안들을 신중하게 논의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팀장은 이어 "내용규제의 경우 기구 전체를 다 합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방송위의 방송심의 기능과 정통부의 정보통신윤리위 기능부터 일단 통합한 뒤 나머지 기능을 중장기적으로 통합하는 것도 방안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방송위원회 오용수 정책1부장은 "방송시장을 유료·무료로 분리할 때 미디어 이용자의 수용행태와 공급자들의 시장 모델 등이 같이 살펴져야 한다"며 "광고를 재원으로 하는 미디어에서 가입자의 비용 지불 여부가 어떤 기준이 될 것인지, 내용규제에서도 광고를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의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송시장 규제 분리'를 유료시장 규제 완화로 해석해선 안돼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은 내용규제의 시스템을 합리적으로 통합하고 방송의 무료시장을 따로 획정해 수용자 복지 등 공공성의 영역을 철저히 보호하는 원칙에 대해서는 대부분 찬성했다. 그러나 이 같은 취지로 방송의 사회문화적 기능이 담보되면 유료방송 시장 등 타 영역의 규제는 그만큼 완화해도 될 것이라는 인식과 오해에 대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언론노조 채수현 정책국장은 "무료·유료 시장의 획정과 규제체계 분리는 공익적 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지 유료방송 시장의 규제를 무분별하고 무원칙하게 완화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라며 "건강한 시민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방송시장의 규제가 일정 부분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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