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쓰고 있는 일반전화 번호를 인터넷전화에 쓰게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두고 통신시장이 달아오르고 있다.

인터넷전화사업을 하고 있는 삼성네트워크, LG텔레콤, 케이블텔레콤에서는 인터넷전화가 070-xxx-xxxx 번호를 쓰다 보니 전화를 걸어도 상대방이 받지 않는 경우가 있고, 기존에 쓰던 집전화를 없애기도 어려워 소비자들이 불편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기존에 쓰던 집전화번호를 인터넷전화에 쓰게 해주면, 즉 인터넷전화 번호이동제를 허용해주면 사업이 훨씬 잘될 테니 허용해달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를 허가해주는 방송통신위원회는 생각이 좀 다른 것 같다.

아직 인터넷전화가 119나 112같은 긴급통신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고, 정전시 전화를 사용할 수 없다는 점, 보안이 취약해 통화내용 도청, 보이스피싱(Voice Phishing)의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VoIP 번호이동제 시행시기를 재검토하기로 한 것이다.

얼마 전 캐나다의 한 가정에서 화재가 발생, 인터넷전화로 911에 전화를 했지만, 구급차가 전에 살던 주소로 출동하는 바람에 18개월 된 아이가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한 것만 봐도 방통위의 고민이 괜한 걱정이 아님을 보여준다. 인터넷전화는 집전화와 달리 전화가 설치된 장소의 위치정보가 소방서나 경찰서와 같은 긴급구호기관에 제공되지 않는다. 처음 인터넷전화를 개통할 당시의 주소를 데이터베이스화해서 이들 기관에 제공한다 하더라도 이사를 가게 돼 전화의 설치장소가 바뀌면 무용지물이 된다.

인터넷전화 사업자들도 긴급통신의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가입자가 이동할 때마다 주소를 정확히 입력하지 않으면 캐나다에서 일어난 사고가 벌어지고 만다.

또 다른 문제는 여러 개의 망을 함께 쓰는 인터넷 특성상 보안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불특정회선에 대해 통화내용 도청이 가능하고, ID나 Password 같은 인증정보 유출시 타인이 내 전화를 무단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특히 발신추적이 어려워 금융사기와 같은 보이스피싱에 악용되기도 한다.

또한 통화권 혼란도 예상된다. 예를 들어 당신이 서울에서 집전화를 번호이동해 인터넷전화를 사용하다가 부산으로 이사 갔다고 생각해보자.

서울에 있는 친구가 전화를 걸면 서울에서 부산으로 연결되지만 시내전화요금만 내면 된다. 반대로 부산에 있는 사람이 전화를 걸면 바로 옆 동네라도 시외전화요금을 내야한다. 같은 동네에 지역번호 051과 02가 뒤섞이니 지역번호의 의미도 사라진다.

연간 15% 이상의 이사율을 고려하면 1~2년 내에 시내전화와 시외전화 통화권이 붕괴될 가능성이 높다.

이밖에도 국내에서 인터넷전화를 개통해 해외에서 사용하는 국제무역협정위반의 문제까지 다양한 문제점이 예상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인터넷전화 번호이동제도를 도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어떤 문제는 번호이동 시행 이전에 해결하고, 어떤 문제는 이후에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는 명확한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미국산 쇠고기는 한우에 비해 저렴하다. 하지만 혹시 있을지 모를 광우병 위험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안전조치를 요구했고 결국 정부는 추가협상을 했다. 인터넷전화는 값싸고 편리한 서비스이다. 하지만 긴급통신이 안돼서 소비자의 안전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고, 이는 광우병 걸릴 가능성보다 훨씬 높아 보인다. 방통위가 국민을 위해 적극적 안전조치를 취하겠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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