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원티드 Wanted
DIRECTOR : 티무르 베크맘베토브
ADDITION : 2008 | 110분 | 미국 | color
출연 : 제임스 맥어보이, 안젤리나 졸리, 모건 프리먼, 콘스탄틴 카벤스키

영화퀴즈 하나, 범위도 쉽게 좁혀서 '헐리웃 액션영화 영퀴'. 힌트를 주려니 스포일러 만발이다. 주의하시길.

1. 아버지 없이 자란 소심남, 직장의 먹이사슬에서 최약자인데다 연인과의 관계마저 동료에게 휘둘린다. (스파이더맨?)
2. 소심남의 고만고만한 일상에 틈입하는 킬러. 저자거리에서의 총격전에 이어 대형 트럭에 쫓기는 주인공을 보위한다. 이게 다 그가 품은 가능성 때문이라나. (터미네이터 시리즈?)
3. 그렇게 조우한 돌연변이 집단. 이 초인들은 언제부턴가 두 세력으로 나뉘어 헤게모니 쟁탈전 중. 그간 주인공을 괴롭혔던 증상들은 실은 그에게도 잠재되어 있던 초능력의 징후. (엑스맨?)
4. 커뮤니티의 중심에는 목소리 중후한 꼰대가 있고 일반인들은 모르던 신탁 oracle 의 세계가 있으며 결정적으로 섹시한 여전사가 멘토로 붙는다. (매트릭스?)
5. 이 대리전에 참여하기가 아직은 뜨악스러운지라 어둠의 세계에서 반 보 정도 물러설까 하는 주인공의 발목을 잡는 근거 - 아버지를 죽인 악한이 활보한다! (배트맨?)
6. 마침내 대면한 원수와의 혈투. 천신만고 끝에 적의 목숨을 끊으려는 순간 상대방의 비감어린 목소리 "you are my son." 같은 구문으로는 "I’m your father." 가 있겠다. (스타워즈?!)

▲ 영화 <원티드>
여기에 오우삼의 영화들에서 <이퀄리브리엄>까지 이어지는 총잡이 안무의 기운을 덧대면 영화 <원티드> 의 얼개가 나온다.

캐릭터 및 플롯에서의 이런 숭고할 정도의 인용 뿐만 아니라, 총알의 궤도가 커브를 트는 비주얼이라든지 발사에서 피격까지를 그 역순으로 되짚으며 상황을 디미는 편집의 트릭이라든지, 감읍하며 볼 거리가 난무하는 흡족스런 액션대작.

물론, 이 서사의 배후에는, 영화의 원작인 마크 밀러 만화의 설정 + 러시아의 봉준호쯤 되는 연출자가 본국에서 만든 연작 <나이트 워치>, <데이 워치>의 감각 (빛과 어둠을 대표하는 초인 세력들의 혈전) 이 포진하고 있겠지만 필자에게 과문한 분야는 은근히 생략하고, 대신 움베르트 에코의 명언 하나 인용해본다.

"한 두개의 클리셰는 웃음만 나오게 하지만 수백개의 클리셰는 우리를 감동시킨다." 옳거니.

에코 얘기가 나온 김에, 그의 소설인 <푸코의 진자>를 연상케하는 <원티드>의 또 다른 설정 하나 - 세계를 남몰래 움직이는 비밀결사 Fraternity 의 존재 (이 설정은 원작만화에 없던 걸 가미했다고 한다). 베틀이 찍어내는 무늬에서 신의 뜻을 읽어 낸 중세의 방직공들이 인류에 피해를 줄 위험이 있는 위인들을 미리 처단하는 암살조직을 결성했으니, 일종의 '글로벌 치안 시스템' 쯤 되겠다. 사상의 검열 이전에 가능성 자체를 검열하는, 필립 K 딕의 소설로 낯익은 세계관.

직공들의 수장은 모건 프리만이 연기한다. 급성장하는 후예 제임스 맥어보이에게 오래된 베틀이 부단히 돌아가는 은밀한 공간을 견학시켜주며 이르기를 "이 운명의 방 Fate of room 에 들어와서는 안돼." 그러니까, 사회과학적으로 말하면 노동과 기계의 은폐.

▲ 영화 <원티드>

이어 방직기가 암살대상을 지명하는 초자연적인 공정을 보여주며 이 신탁에 대해 의문을 품거나 해석을 덧대지 말고 그냥 그 질서를 따르는 게 자신들의 고귀한 의무라는 첨언을 한다. 다시 말하면 기계에 인간을 종속시키기 위한 노동의 분화.

이 괴이한 도그마가 주인공의 합의를 끌어내는 동인은 크게 세 가지 – △인류에 대한 사명감 (또는 윤리적으로 자기가 정통 세력이라는 데 대한 자긍심), △아버지의 원수에 대한 복수심 (고아로 자랐기에 아버지의 얼굴을 모르지만, 그렇기에 더욱 아들이라는 위치에 대한 인정욕구), △뭣보다 최초의 강력한 유인동기는 조직이 그의 통장에 입금한 거액. 소시민이었던 그가 자신의 초능력을 확인하기도 전에 그간 그를 멸시해왔던 거구의 직장상사와 동료에게 본때를 보여줄 수 있었던 건 하루새 불어난 은행 잔고가 주는 어떤 든든함 아니었을까.

문제는, 애초 베틀이 직조하는 무늬가 악의 본질을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의 적을 기표로서만 까발린다는 점. 만약 베틀의 씨줄과 낱줄 조합이 ‘공화국’ 3음절을 찍어내면 그들은 무엇을 타격해야하나?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세상의 모든 민주공화국? 그것도 아니면 성은 공이요 이름은 화국인 남자? - 기호를 맥락 속에서 해석하지 않고 특정 세력 몇몇에게 유리한 경로로 삼을 때의 넌센스.

▲ 영화 <원티드>

게다가 이 미심쩍은 신탁을 자객들에게 매개하는 리더 역시 불완전한 인간. 사람에겐 사심이 끼어들기 마련. 더구나 언로'言路'를 쥐고 있는 (기계와 권력을 독점한) 관료들이 그들의 이기적인 생존 번영을 위해 일부러 오류를 생산하고 전파한다면? 상상의 배후세력을 지목하며 문제범주를 흩뜨리고, 존중해야할 시민은 되려 폭도로 정의한다면? 정작 예언의 무늬를 제대로 담은 직물은 다른 사각지대에 마이너리티 리포트 (소수의견) 로 방치된다면?

그럴 경우 조직의 인간병기들, 그러니까 국가로 치면 검찰, 경찰, 국세청 등등은 무엇을 위해 봉사하는 꼴이 되는가? – 1. 인류가 아닌 특정 기득권의 위계질서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면서 국민의 의사표현을 억압하는) 2. 자신 고유의 것이 아닌 상상적으로 훈육된 정체성 (자신을 낳은 역사와 대중 앞에서가 아닌 강대국과 시장논리만을 위해서 벌이는 인정투쟁) 3. 뭣보다 이 목적 전도된 상황을 보고도 모른 척 하게 하는 그들 각자의 먹고사니즘. 그 순간 Fate of room 은 운명을 대의하는 것이 아닌 방향 잃은 증오와 파멸의 산실이 된다. 리더의 손발 노릇을 한 전사들도 이 파국에서 예외일 수 없을 터.

이렇듯 영화퀴즈는 시사퀴즈로 마감된다. 갑갑한 시국을 잠시나마 잊으러 마실 간 멀티플렉스에서 오히려 연동되는 작금의 한국 풍경. 잠시 잠깐 지나갈 정권의 악덕을 보호하느라 저신들의 진짜 존재 이유를 모른 척 하는 대한민국 검찰들과 경찰들. 국민이 아닌 기득권에 봉사하느라 배움과 이력을 파는 스스로가 면구스럽긴 한데 그 치졸함을 인정하기에는, 어렸을 때부터 '공부 잘한다', '동네에 인물 났다' , 종종 '정의감이 남다르다' 소리 들으며 같잖게 누적시킨 한 줌짜리 자부심이 있으니 그 안에서 자신들도 인지부조화를 일으키겠지.

부디들 주말을 이용해 시원한 극장에서 <원티드> 를 감상하시고 자신들이 맹신하는 (정확히 말하면 맹신하고 싶어 스스로 인지적 오류를 일으키는) 윗선의 지시, 즉 합리적 사고가 배제된 '이현령 비현령 식'의 법 적용 등등에 대해서 재고·숙고·반성들 하시길. 에코의 문장을 조금 변용하자면,

"한두 번의 오류는 우리를 코웃음치게 하지만 수백번의 오류는 우리의 등을 돌리게 한다."

2001년에 스물다섯이었던 성호. 그 해부터,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아예 모르는 『산만한 제국』『나는 내가 의천검을 쥔 것처럼』『우익청년 윤성호』『이렇게는 계속 할 수 없어요』등등 극영화 같기도 하고 다큐 같기도 한, 실은 UCC에 가까운 - 중단편을 만들어왔다. 2007년『은하해방전선』이라는 장편영화를 만들며 나름 촉망 받는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별로 안 풀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존재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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