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 상주하며 취재하는 기자들은 대부분 기존 부처별 기사송고실로 출근하는 '출근투쟁'을 벌였다. 인터넷 연결이 끊긴 상태였지만 기자들은 속도가 현저히 느린 전화선을 연결해 기사를 작성하는 등 정부의 취재통제 조치에 반대하는 뜻으로 불편을 감수했다." (조선일보 12일자 <쫓겨난 기자들 출근투쟁…"통합 브리핑 보이콧">)

기자들이 '투쟁'을 벌이고 있다. 취재 선진화 방안을 둘러싼 정부와 언론의 갈등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경향신문 12일자 <기자단 "일방적 브리핑 거부">에 따르면 과천청사 출입기자단은 11일 예정됐던 모든 브리핑을 거부했다. 조선일보 12일자 <끝내 '기자실 대못질' 인터넷 끊어>를 보면 재정경제부 담당 기자들이 정부의 취재선진화 방안 강행에 대한 항의 표시로 이날 권오규 경제부총리의 정례 브리핑을 거부했다.

▲ 조선일보 10월 12일자
재정경제부, 공정거래위원회, 건설교통부 등 과천청사를 출입하는 9개 부처 기자단은 성명을 내고 "정부는 언론과 시민단체 학계 정치권 등의 반대에도 불구, 기사송고실의 인터넷과 전화선을 끊는 조치를 강행했다"며 "이는 국민의 알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언론의 감시기능을 말살하는 반민주적 폭거"라고 말했다.

그런데 '국민의 알권리' 부분에서 짚고 넘어갈 대목이 있다. 자신들의 정당성을 전달하는데 급급하다보니 정작 중요한 사안을 한가지 빼놓았다.

과천청사 9개 부처 기자단은 11일 성명에서 정부의 조치가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폭거라고 주장하면서 이날 예정된 브리핑을 거부했다.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투쟁'을 하는데, 정례 브리핑을 거부하고 기사를 쓰지 않는다면 이것은 국민의 알권리 침해와 무엇이 다를까?

언론이 주특기처럼 사용해왔던 파업보도 논리와 비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마침 서울대병원이 파업을 벌이고 있고, 이를 보도하는 언론들은 파업 때문에 환자들의 피해가 가중되고 있다는 점을 빼놓지 않았다.

▲ 10월 11일 SBS <8뉴스>
11일 SBS <8뉴스>를 보자. "서울대병원 노조파업 이틀째인 오늘(11일) 단체교섭이 열렸지만 노사가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다. 환자와 보호자들의 불편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일부 의사들이 환자들의 배식에 나서는 상황까지 벌어졌다.(중략) 파업이 계속되면서 환자들이 겪는 불편도 조금씩 가중되고 있다."

세계일보 12일자 '현장메모'에서도 서울대병원 파업과 관련해 환자를 볼모로 한 행태를 비판하고 나섰다. "환자를 볼모로 한 파업은 어떤 결론이 나든지 노사 양측 모두 '패배자'가 될 뿐이다. 노사가 한발씩 양보해 하루빨리 진료를 정상화하길 바란다."

노조원들이 회사 방침에 항의하고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며 일하기를 거부하면 파업이다. 당연히 그로 인해 당장 불편과 피해를 겪는 사람들이 생긴다. 이때 언론의 보도 태도는 어땠는가? 대부분 노동자들의 이기주의를 비판하면서 시민 불편과 피해 상황을 더 부각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늘 등장하는 논리는 '시민을 볼모로 한 파업'은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기자들이 정부 방침에 항의하고 자신들의 권리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브리핑을 거부했다. 그런데 국민들에게 피해가 온다. 정부 브리핑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국민들은 그 정보를 접할 기회를 일방적으로 빼앗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언론 보도는 어땠는가? 자신들은 투사일 뿐 스스로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한 현실에 대해선 눈을 감아버렸다.

▲ 세계일보 10월 12일자
노동자들이 왜 파업을 하고 어떤 내용을 요구하는지를 보도하기 보다 국민들의 불편과 피해 사항을 더 비중있게 다루는 파업 보도의 공식은 늘 논란이 돼 왔었다. 그런데 언론은 정작 기자단의 브리핑 거부라는 직무유기, 일종의 '파업'을 통해 국민들에게 유무형의 피해를 입히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파업과 브리핑 거부가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잣대의 옳고 그름을 떠나, 사안마다 적용하는 잣대가 다르다면 그 언론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느냐는 아주 기본적인 문제제기다. 파업 노동자들을 향해 할 일은 하면서 권리를 주장하라고 호통치던 언론이 왜 정작 자신들의 브리핑 거부 사태에는 문제의식이 없느냔 말이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자신들의 입맛과 유불리에 따라 비판과 분석의 기준이 흔들린다면 그것은 '비평자'로서의 기본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언론에 대한 신뢰도 그만큼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