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이 '국정원 선거 개입 사태'를 소극적 보도로 일관하는 것에 대해 KBS, MBC의 일선 기자들은 "여·야 정쟁으로 사안을 축소, 왜곡하고 있다"는 비판을 했다. 이들은 정보기관의 국기문란 사건을 양당의 공방으로 치부해버리는 보도 행태는 권력에 의해 장악된 결과물이라고 입을 모았다. <미디어스>는 7일 KBS, MBC 기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공영방송 보도의 현 상태를 진단했다.

기계적 중립과 사안의 축소

KBS의 A 기자는 "(국정원 관련) 보도의 양적 측면에서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국정원 대선개입의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대신 '여야의 정쟁'으로 몰고 가는 등 질적인 문제도 있다"고 평가했다.

KBS의 B 기자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불리한 사안이 벌어졌을 때 KBS의 스탠스는 계속 일관됐다. 모든 것을 '정쟁'으로 바라본다"며 "국정원 문제 터지니까 민주당의 여직원 감금 문제를 들이밀고, 선거개입 나오니까 NLL 끄집어내고… 이건 모두 새누리당의 프레임이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 가치에 대한 판단에 따르자면 등가를 내릴 수 없는 부분인데 묶어서 보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MBC 기자들의 진단도 비슷했다. MBC의 C 기자는 "MBC는 지난 대선 때 터진 사건을 8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축소하고 있다"며 "많은 분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국정원 사건은 정보기관의 국기문란 사건인데, MBC 뉴스는 양당의 정치공방으로만 치부하고 있다. 이는 언론이 역사를 왜곡하고 더 나아가 죄악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 KBS는 지난달 27일 촛불집회를 단신으로 전했지만 이마저도 제목이 <'국정원'·'대화록 실종' 관련 집회 잇따라>이다.

정치 권력에 포섭된 공영방송

이러한 현상에 대해 두 공영방송사의 일선 기자들은 공영방송이 정치 권력에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고, 정치 권력에 포섭된 간부들이 스스로 굴종하는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KBS의 D 기자는 "소극적이고 여당에 유리하게 보도한다는 문제제기가 끊임없이 제기돼 왔는데, 이는 (KBS가) 정치권력에 포섭됐다는 뜻"이라며 "얼마 전 '저도의 추억'(박근혜 대통령 휴가 보도)도 마찬가지다. 사진 한 장 가지고 사건을 만들고 마치 대단한 것처럼 보도했다. 언론이 권력에 장악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질타했다.

KBS의 B 기자는 "뉴스를 편집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공정하게 보도하고 있다'고 여긴다. 정치적인 문제에 어떻게 일방의 편을 드냐 하는 것, 그게 정론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아마 시청자들이 뉴스를 볼 때 KBS 기자들은 이른바 상식적인 판단도 못하는 뻔뻔한 사람들로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MBC의 경우 경영진들이 파업에 참여한 기자들을 배제하고 시용, 경력 기자를 주요 부서에 배치한 것이 보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지적이 나왔다. MBC의 C 기자는 "정권에 순응하는 MBC 경영진들이 정치부, 법조 등 보도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파업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들과 시용기자로 채웠다"며 "파업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보도전략부' 같은 곳으로 배제된 상태"라고 말했다.

C 기자는 "기자들이 시용, 경력직 기자들에 비해 수적으로도 열세이다 보니 내부에서 문제를 제기하면 쫓겨나게 될 위험이 있다"며 "그 빈 자리를 다시 시용 기자들이 채울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보도의 질은 또다시 떨어지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MBC의 E 기자도 "국정원 보도를 비롯한 현 MBC 보도의 문제는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전반적인 시스템 문제"라며 "연성적 뉴스가 앞에 배치되고 중요한 뉴스가 후반부에 배치되는 등 편성에서도 합리성을 찾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여당에 불리한 뉴스들은 아이템 발제도 힘들다"고 설명했다.

▲ MBC <뉴스데스크>와 KBS <뉴스9>의 7월 30일자 보도. (화면 캡처)

치열하게 싸운다, 하지만 자사 보도 '안 본다'

몇몇 기자들은 "뉴스를 보지 않고 있다" "소속된 뉴스만 보고 있다"고 밝혔다. 또 자사 보도 행태에 대한 자조적인 평가도 있었다.

KBS의 A 기자는 "전반적으로 기자들 스스로 자사 뉴스에 대해 많은 불만을 갖고 있고, 우리 뉴스가 제대로 못한다는 분위기가 있다. 우리 기자들마저도 잘 안 보는 뉴스를 스스로 만들고 있다는 평가"라며 KBS 보도에 대해 불만을 드러냈다.

MBC의 E 기자는 "기자들이 자신의 기사가 방송에 나갈지 말지를 먼저 신경쓰다 보니 국정원 관련한 보도는 꿈도 못 꾼다"며 "자신감이 떨어지고 자괴감이 큰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안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는 기자들도 나왔다. KBS의 F 기자는 "사실 저희 뉴스가 공영방송 뉴스의 자격을 잃어버린 지는 오래된 것 같다"면서도 "기자들은 최대 인원이 모였다, 서울광장에서 해 충돌이 우려된다 등 다양한 이유를 대면서 촛불집회 관련해 계속 발제를 하지만 거의 거부당한다. 촛불집회 뉴스를 단신으로 내느냐 마느냐 하는 싸움도 일상적"이라고 밝혔다.

MBC의 G 기자는 "많은 분들이 MBC 기자들은 침묵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계시지만 내부에서 기자들은 어떻게든 보도를 내보내기 위해 정말 열심히 싸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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