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일 넘게 지치지도 않고 계속돼온 촛불항쟁에 경이로움을 느끼면서도, 마음 한 편에 씁쓸한 게 있다. 서울 사람들이 '지방'이라 일컫는, 정확히 말해 '서울 외 지역'의 역할이 거의 사라져버린 데 대한 안타까움이다.

무시당하고 있는 지역의 촛불집회

사실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항쟁은 대개 서울보다는 '지역'이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동학농민혁명은 전라도 고부에서 시작됐고, 전봉준도 거기서 배출됐다. 3·1운동이라 부르는 기미독립항쟁도 서울에서 33인이 싱겁게 투항해버렸지만, 전국 방방곡곡에서 들불처럼 일어나 일제의 총칼에 맞섰다. 유관순 열사의 거사가 있었던 곳도 충남 천안 아우내장터였다.

해방 후에도 제주4·3, 여순사건, 마산3·15에서 이어진 4·19혁명, 부마민주항쟁, 광주민중항쟁 등이 모두 지역에서 일어났다. 87년 6월항쟁도 서울이 중심이긴 했으나, 6월 16일 명동성당 농성 해제로 소강국면에 들어간 시위에 다시 불을 지른 것은 진주와 마산, 부산의 격렬한 시위였다.

▲ 경남지역의 격렬한 시위를 전한 87년 6월 18일자 조선일보 1면.
그러나 이번 2008 촛불항쟁은 이상할 정도도 '서울 중심성'이 확고히 유지되고 있다. 조중동은 물론 한겨레·경향신문에서도 지역의 촛불집회는 거의 취급받지 못한다. 방송도 마찬가지고 인터넷신문도 그렇다. 몇 몇 블로거와 시민기자들이 간혹 지역소식을 전해주고 있는 게 고작이다. 경찰도 다 서울로 차출돼서 그런지 지역에는 신경도 안쓴다. 지역 촛불집회는 교통경찰관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행진한다. 이런 모습을 보고 '진정한 경찰의 역할'이라며 칭찬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속내를 알고 보면 사실은 경찰로부터도 무시당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내가 지역에 살다 보니 그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봤다. 그 결과 '촛불집회가 서울로 집중되는 6가지 이유'라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거기서 나는 △애초 '거리'와 '공간'의 개념이 없는 인터넷에서 촉발됐고, △서울시청 광장과 청계천, 청와대가 바라보이는 세종로라는 장소의 상징성 △도로와 교통 수단의 발달로 두세 시간만으로 서울 집회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 등을 이유로 생각해본 바 있다.

그러면서 "지역의 촛불집회가 서울을 앞서는, 또는 서울과 차별화되는 새로운 시위문화라든지 흐름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이유의 하나로 들었다. '서울과 차별화되는 새로운 시위문화와 흐름'이라면 어떻게 있을까. 그게 오늘 이 글의 관심사다.

과격시위가 아니라 '지역콘텐츠'를 찾자

21년 전 6월항쟁 때 경남의 역할은 '서울과 차별되는 과격시위'였다. 6월 17일 진주의 대학생 3000여 명은 철로를 점거하거나 고속도로를 막고 LPG가스 수송트럭 2대를 탈취했다. 학생들은 트럭 위에 올라 런닝셔츠를 벗어 횃불을 만들었다. LPG차량이 폭발하면 반경 4km 이내가 쑥대밭이 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들은 "죽자, 죽자"를 외치며 트럭을 몰아 시내로 행진했다. 이들의 시위는 큰 충격을 줬고, 다음날인 18일 전국 언론은 이 시위를 1면과 사회면에 대서특필했다.

지금도 그 때처럼 이런 충격적인 시위방식을 찾자는 말이 아니다. 이미 이번 촛불집회에선 '비폭력'이 큰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방식이 문제가 아니다. 이젠 시위도 '콘텐츠'의 문제다. 지역 촛불집회에는 지역의 내용을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김태호 경남도지사가 '작은 이명박'이라는 것을.

그는 2006년 지방선거에서 재선한 직후 엄연히 임기가 남아 있는 경남FC와 경남발전연구원 등 경남도 출자·출연기관장들의 사표를 종용했다. 그리곤 이사회의 선출권을 무시하고 자신의 측근을 임명하는 등 인사권 전횡을 일삼았다. 대통령선거가 끝나자 김태호 지사는 또 경남FC 대표이사를 자르고 이명박 당선자의 언론특보를 지낸 김영만 전 스포츠서울 발행인을 대표이사에 앉혔다. 최근에는 이강두 의원의 보좌관 출신이자 고향 후배인 안상근씨를 정무부지사로 임명했다. 그것도 기존 부지사가 전격 사의를 표명하자마자 호주로 해외출장을 가는 공항에서 전화로 내정사실을 공표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가 각종 정부투자기관이나 국영기업에 대표, KBS 사장과 이사들의 사퇴압력을 넣었거나 넣고 있는 것과 어쩜 이리도 똑같을까.

김태호 지사는 또 이명박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경부운하의 전도사가 되겠다" "경남에서 먼저 대운하를 시범건설하고 싶다" "경남 단독으로라도 운하사업을 추진하겠다"고 외치고 다녔다. 3·15의거 48주년을 맞아 희생자를 추모하는 자리에서는 뜬금없이 "이명박 정부의 선진화에 동참하자"고 외쳤다.

대운하가 국민의 반대에 부딪혀 정부에서도 포기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워터웨이'로 고쳐부르며 계속 추진의지를 밝혔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이 반대하면 대운하를 포기하겠다"고 밝힌 지금도 '대운하 TF팀'을 해체하지 않은 채 버티고 있다. 그야말로 '이명박 대통령의 돌쇠'다.

이명박 정부의 '예산 10% 절감'을 따라하면서 노인과 장애인·여성 결혼이민자·여성농업인 등에 대한 사회복지분야 국고보조금 68억 원을 깍아버렸다.

▲ KBS창원총국 앞에서 "공영방송 지켜내자"를 외치고 있는 경남의 촛불집회 참가자들.
그가 '작은 이명박'이라는 근거는 이 외에도 수없이 많다. 그럼에도 경남의 촛불집회에선 단 한 번도 김태호 지사의 이런 문제가 나오지 않았고, 행진도 경남도청으로 향한 적이 없다. 서울에서 KBS 앞 촛불집회가 열린다니까 창원에서도 KBS로 행진하는 정도다.

'지역콘텐츠'가 없는 것이다. 서울과 동떨어진 요구를 만들어내자는 게 아니다. 전국적 요구와 궤를 같이하면서 지역의 문제를 결합시켜보자는 것이다.

도민의 성금과 세금으로 설립된 경남FC를 자기 개인회사처럼 사장을 맘대로 갈아치우고, 홍수 위험을 초래할 낙동강운하를 밀어부치며, 사회복지 예산을 싹둑 잘라버린 '작은 이명박'에게 경남의 촛불이 향하면 어떨까? 그에게 측근·정실인사 철회를 촉구하고, 낙동강 운하 포기와 TF팀 해체를 요구하며, 복지예산 부활을 요구할 순 없을까? 또 김해시민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갑자기 해양경찰청 이전이 무산된 이유를 따지고, 진주시민은 혁신도시가 무산위기로 몰고 있는 이명박 정권의 책임을 묻는 촛불을 들 순 없을까?

이처럼 각 지역의 촛불이 해당 지역의 '작은 이명박'으로 향할 때 전국의 촛불이 진정한 승리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1991년 진주에서 일어난 한 시국사건이 전국 언론에 의해 완벽하게 왜곡되는 과정을 직접 목격한 것을 계기로 지역신문 기자로 살기로 마음먹었다. <진주신문>과 <경남매일>을 거쳐 6200명의 시민주주가 만든 <경남도민일보>에서 자치행정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역현대사와 언론개혁에 관심이 많아 <토호세력의 뿌리>(2005, 도서출판 불휘)와 <대한민국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가기>(2007, 커뮤니케이션북스)라는 책을 썼다. 지금의 꿈은 당장 데스크 자리를 벗고 현장기자로 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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