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기관보고를 시작으로 24일부터 본격적인 국정원 국정조사가 시작된 가운데, 방송3사는 진실규명을 위해 힘쓰기 보다는 '여·야 공방'으로만 몰아가는 보도 행태를 보이고 있다.

전어보다 못한 국정원 국정조사

방송3사는 24일 국정조사 관련 보도를 후반부에 배치했다. KBS와 MBC, SBS는 각각 14번째 <국정원 국정조사 가동>, 20번째 <'댓글' 국정조사 본격 가동> 그리고 21번째 <시작하자마자 폭로·고성 공방전> 꼭지에서 보도했다.

KBS는 이날 날씨와 관련한 보도를 7꼭지나 했다. 이 보도들 역시 국정원 국정조사보다 앞서 배치됐다. MBC는 국정원 국정조사 보도에 앞서 <'가을 전어' 앞서 '여름 전어'>와 같은 연성 뉴스를 배치해 사안의 경중을 제대로 따지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SBS 역시 영국 왕실의 얘기를 다룬 <'로열패밀리' 대중 앞에 '활짝'>과 같은 보도를 국정원 국정조사 보도보다 앞에 배치했다.

경찰청 기관보고가 실시된 25일, SBS는 <야 "댓글 은폐 동영상" 폭로전>을 2번째 꼭지에 배치했다. 반면 KBS, MBC는 각각 12번째 <감금·대선 개입 등 공방> 와 22번째 <국정조사 여야 격전> 꼭지에 관련보도를 배치했다.

▲ 24일자 보도. MBC <'가을 전어' 앞서 '여름 전어'> SBS <'로열패밀리' 대중 앞에 '활짝'> (MBC, SBS 화면)

지상파 3사의 '공방신기(攻防神技)'

더 큰 문제는 보도의 내용이 여·야 공방으로만 메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진실을 규명해야 할 방송사들이 본질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KBS는 24일 관련 보도에서 "오늘 첫 기관보고부터 여야는 난타전을 벌였다" "공방이 거세지면서 말다툼으로 치달았다" "신경전을 벌였다"와 같은 멘트로 국정원 국정조사를 여·야 공방의 프레임으로만 바라봤다.

25일에도 KBS는 "여야는 여직원 감금과 이른바 매관매직 논란, 서울청장의 대선개입 논란 등을 둘러싸고 공방을 벌였다" "여기에 새누리당은 오피스텔 불법 감금, 민주당은 경찰의 부실 축소 수사 의혹을 각각 앞세워 충돌했다"며 공방, 충돌에만 촉각을 곤두세웠다.

MBC는 24일 "여야의 지리한 공방에다 '폭로전'까지 더해지면서 또 하나의 '정쟁의 장'이 됐다"고 보도했고, 25일에는 "여야는 또 공방을 벌였다"며 "날선 신경전과 고성도 이어졌다"고 밝혔다. SBS도 24일 "댓글 사건을 둘러싸고 여야가 또 한바탕 설전을 주고받다"고 했고, 25일에는 "오늘도 고성과 파행으로 얼룩졌다. 여야가 서로 동영상 폭로전을 벌였다"고 보도했다.

민주당 최민희 의원실은 26일 관련 보도를 분석한 보도자료를 내어 "(방송뉴스는) 국정원의 대선개입과 경찰의 은폐를 두고 '정당한 활동'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감싸는 새누리당과 새로운 증거자료를 내놓으며 진실을 규명하려는 야당의 정당한 활동을 '여야 공방'과 '정쟁'이라는 동급으로 묶었다"며 "국정조사가 파행으로 치닫고, 국민들이 냉소로 눈 돌리게 만드는 데 방송들이 크게 일조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실체 밝힐 증거들이 공개돼도 방송사 "… …"

국정원 국정조사에서 새로운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방송사들은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

25일 경찰청 기관보고에서 통합진보당 이상규 의원은 경찰이 국정원의 증거 인멸 사실까지 확인하고도 수뇌부가 이를 은폐하고 "댓글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한 증거 동영상을 공개했다. 또 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경찰청 수사관들이 수사결과를 왜곡한 정황이 담긴 동영상을 공개했다.

KBS는 이러한 증거들에 대해 함구했다. 새로운 증거와 증거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은 것. MBC는 "민주당은 국정원 댓글 수사과정의 경찰 수사관들이 주고받은 말들을 공개하면서 축소, 은폐 의혹을 집중제기했다" "새누리당은 국정원 여직원 감금 의혹을 문제 삼았다"고만 밝힐 뿐이었다.

그나마 SBS는 "민주당은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경찰이 국정원 댓글사건을 은폐하려 한 증거라며 경찰 내부 CCTV 영상을 공개했다"며 "민주당은 경찰이 증거를 찾아내고도 이를 숨긴 채 수사결과를 서둘러 발표했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SBS도 민주당 당원의 TV조선 기자 폭행사건 동영상을 국정조사에서 다시 튼 것과 묶어서 "여야가 서로 동영상 폭로전을 벌였다"고 보도해, 사안의 우선순위를 따지기보다 단순 여·야 공방 프레임과 기계적 중립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 국정원 국정조사 관련 지상파 3사의 보도 (각 방송사 화면)

"방송, 반드시 심판 받을 것"

최민희 의원실은 "(방송뉴스는)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국기를 문란케 한 국정원 대선개입과 경찰의 은폐수사의 실체를 국민들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국민의 알 권리'를 봉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민희 의원실은 "공영방송을 비롯한 지상파 방송들이 국정조사를 '여름전어'나 '영국 로열베이비'보다 못한 뉴스로 취급하며, 결정적인 증거를 외면하고 그저 여야 공방과 정쟁으로 몰아가는 것은 결코 용서받지 못할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최민희 의원실은 "방송들은 6월말부터 지금까지 한 달 넘게 계속되고 있는 각종 시국선언과 국민들이 든 촛불을 외면해 거센 지탄을 받고 있다"며 "방송들이 계속 진실을 외면한다면, 이 촛불은 국정원과 새누리당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은 물론, 방송을 향해서도 타올라 반드시 심판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 박영선 의원 역시 26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어제(25일) 신문을 보면 영국의 차차차기 왕세자가 태어났다는 사진이 신문의 1면을 크게 차지하고 있다. 특히 보수언론이 더하다"며 "국민들은 살기 힘든데 이 소식이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그렇게도 중요한 뉴스일까? 진실을 가리기 위한 가식의 한 단면을 보는 듯하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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