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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비준되면 경제질서 통째로 무너져[신학림] 촛불들이여, 헌법 119조 2항을 사수하자 (3)
신학림 기자 | 승인 2008.07.03 11:48

 

큰일 났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와 촛불시위에 온 국민의 시선이 쏠린 틈을 타 한나라당을 비롯한 수구·보수세력의 개헌 총공세가 시작됐다. 개헌 주장이나 논의가 어제 오늘 시작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특정 정파가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거론하는 수준이었으나, 이제는 여야 정치권 모두가 이에 매달린 양상이다. 이런 분위기에 자신감을 가져서인지 원내 과반수를 장악한 한나라당 국회의장 내정자인 김형오 의원은 ‘연구’의 수준을 넘어 구체적인 개헌안 제출과 처리 시한까지 못 박으며 단단히 밀어붙일 태세다. 2010년 6월 전까지 개헌을 끝내겠단다. 여야 모든 정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모임에 가입해 본격적으로 개헌 논의를 시작했다. ‘촛불혁명의 87년 판’이라 할 수 있는 ‘6·10민중항쟁’을 통해 쟁취한 1987년 헌법을 개악하려는 것이다. 만에 하나, 이를 저지하지 못하면, 피해자는 결국 촛불시위에 나왔거나 촛불시위를 안방에서 지지했던 서민, 대중들이 될 것이다. 그래서 큰 일 났다는 것이다. 개헌 논의에 도사린 함정과 위험성을 몇차례 나누어 파헤친다. 촛불들이여, 헌법 119조 2항을 사수하자! <편집자 주>

1987년 여야 합의로 구성된 국회 개헌특별위원회에서 김종인, 현경대 전 의원 등과 함께 개헌작업에 참여했던 남재희 전 노동부장관은 최근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에서 현 시점에서의 개헌은 '신자유주의 홍수 속에 둑에 구멍을 내는 격'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한미 FTA는 대한민국 헌법 위에 군림한다

그런데 만약 한미 FTA가 비준, 발효되면 개헌을 하지 않아도 우리 헌법의 핵심인 119조 1항을 비롯한 경제관련 조항 전반 뿐만 아니라 관련 모든 헌법 규정이 저절로 무력화된다는데 한미 FTA의 문제점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단순히 헌법 제119조 2항 한 조항의 무력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제 가정교사' 역할을 하며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일하다가 노무현 정부가 한미 FTA를 무리하게 추진하는 등 신자유주의 정책기조를 강화하는 것을 비판하며 청와대를 떠났던 이정우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미 FTA의 문제점을 이렇게 요약했다.
 
"이 협정(한미 FTA)의 가장 큰 문제점은 우리 경제의 미래 행로를 영·미형으로 제한해 버린다는 점입니다. 다른 모델을 택하고 싶어도 투자자-국가 제소라는 무서운 장치가 들어와 있어 우리 경제의 운신의 폭은 극도로 제한될 것입니다."
(최장집, 이정우, 장하준 교수 등이 함께 펴낸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프레시안북에서 인용)
 
경제부총리를 지낸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난달 13일 서울대에서 한국국제경제학회 주최로 열린 'MB정부의 대외경제정책' 세미나에서 기조강연을 통해 "한국이 염두에 둬야 할 점은 미국에서도 신자유주의는 이미 정책으로서의 타당성을 잃었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하며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수용하는 식의 경제모델은 바람직한 대안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 조선일보 5월 23일자 1면  
 

조 교수는 우리 정부가 다른 나라와 추진하고 있는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모두 타결되면 우리나라는 엄청난 부자유에 묶이게 되거나 심지어 '대외경제정책이 없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 교수는 또 "한국이 새삼 신자유주의, 금융 자본주의 모델을 그대로 들여올 경우 한국 경제는 그 하중에 눌려 견디지 못할 것이고 사회는 끊임없는 내부 파열에 시달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인 의원은 2006년 레디앙(www.redian.org)과의 인터뷰에서 '양극화 해소를 위해 한미 FTA를 추진한다'는 노무현 정부의 주장을 "웃기는 얘기"라고 일축한 바 있다. 

'한미 FTA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김종인 당시 의원은 "우리 경제에서 무역이 GDP의 70~80%를 차지한다. 한미FTA에 대해 무조건 반대하는 건 잘못된 태도다. 반대로 한미FTA 하지 않으면 난리가 날 것처럼 구는 것도 역시 잘못된 것"이라고 답변했다.

한미 FTA가 우리 헌법 전반에 미칠 구체적인 영향과 문제점에 대해서는 최재천 당시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변호사)이 2007년 한 토론회에서 발제를 통해 조목조목 지적한 바 있다.

그의 결론은 한마디로 "한미 FTA는 (대한민국) 헌법 위에 군림한다"는 것이다. 물론 헌법 119조는 당연히 무너진다는 분석이다. 입법정치전문 주간지인 여의도통신(www.ytongsin.com)에 실린 그의 분석을 요약한다.  

최근 촛불집회를 통해 그 중요성이 새삼 부각된 대한민국 헌법 제1조가 무너진다는 것이다.

헌법 제1조
①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최재천 변호사는 한미 FTA 협정이 '위헌'과 '위헌 요소'를 곳곳에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미FTA 협정이 발효되기 위해서는 헌법개정에 준하는 동의 절차인 주권자의 자기결정, 즉 국민투표가 필요하고 만약 이를 거치고 싶지 않다면 협정에 대한 비준은 거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1. 대한민국은 미국의 지적재산권 보호를 위해 존재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23조
①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
②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
③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

한미 FTA 협정을 따르자면 헌법 제23조를 개정해야 한다. 현재의 헌법 제23조 1항은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고 되어 있는데 한미 FTA가 비준, 발효되어 새로운 헌법이 만들어진다면 헌법 제23조는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 특히 지적재산권은 완벽하게 보장된다"로 바뀔 수밖에 없다.

또한, 헌법 제22조 2항은 "저작자·발명가·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고 돼 있는데, 한미 FTA 협정에 따라 "미국산 지적재산권을 보장하기 위해 온 나라가 나설 수 밖에 없다."

정부는 당장 대학가의 '불법복제' '단속'에 나서야 하고, 1)'전파의 목적'이 아닌 일시적 호기심에 의해 영화의 한 '부분'을 복제하더라도 당장 처벌해야 하고, 2) 협정문 제18조 제 10조 27항을 준수하려면 사법부는 강력한 형벌을 선고해야 하고, 3) 사법부의 양형에 대한 재량(헌법§103)이 제약된다. 입법부는 보다 강력한 처벌을 담은 법안을 만들 의무가 발생하고 헌법 40조에 따른 국회의 입법권한도 협정문의 제약을 받게 되는 하위권한으로 전락한다.

또한 지적재산권의 보호를 위해, 지적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는 행위에 대해서는 27조가 정하고 있는 형사상 '무죄추정의 원칙'도 살짝 뒤집힌다고 말한다.

지적재산 권리자는 개인의 신상정보에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지적재산권 침해사범은 헌법 12조 3항에 따라 영장(令狀)주의를 통해서만 접근이 가능하던 개인정보는 더 이상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적재산권 보호를 위해 대한민국의 국가권력이 존재하고, 모든 헌법적 가치들이 지적재산권 보호를 위해 복무해야 하는 것이 아닐진대, 협정은 그렇다고 말한다. 이로써 한미FTA 지적재산권 관련 조항들은 대한민국의 헌법상의 기본권 질서를 일거에 흐트러뜨려 놓는 '폭탄'이 되고 말았다."

2. 직접수용이 아닌 간접수용도 보상하게 돼 
 
우리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23조가 정한 보상규정은 직접수용에 따른 것만을 의미한다고 일관되게 판결해왔다. 이는 FTA 협상과정에서 건설교통부나 법무부 담당자도 동의한 바 있다. 그래서 위헌논쟁이 불거졌었다.

미국은 개인의 재산권을 어떤 방식으로라도 침해하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 헌법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간접수용도 당연히 보상대상이 된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좁은 땅, 많은 인구'가 상징하듯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살 수밖에 없고, 이런 행동들을 일정 부분 견디며 살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우리 헌법질서가 바로 이런 현실을 담고 있다.

공익과 사익의 조화가 헌법 구석구석에 묻어난다. 헌법 제23조 2항에 "재산권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라고 정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공공필요에 따라 재산상의 수용은 할 수 있되 그 보상은 법률로 하며,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라는 것이 제3항의 내용이다. 그런 차원에서 재산상의 수용을 직접수용으로 한정하고 간접수용에 대해서는 보상하지 않았던 것이 우리의 헌법이다.

이제는 바뀌었다. 사실상 미국헌법의 규정과 해석론이 도입된다. 우리도 간접수용도 보상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는 간접수용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우리 법률과 판례가 없다는 점이다. 법률가들도 간접수용 개념은 이해하기 어렵다. 굳이 예를 들자면 지하철 공사로 인해 장사가 안 되는 피해를 입은 인근 상가의 피해도 이제 보상이 될 것이라는 정도다. 하지만 보상의 범위가 어디까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 법체계 자체가 간접수용을 전혀 예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기대이익의 침해만으로도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협정문 전체도 너무나 낯설다. 기대이익 자체를 권리로 인정했다. 기대라는 주관적 개념을 법률적 권리로 승화시켰다. 이 또한 우리 법에 낯설다.

이 불똥이 어디로 튈지는 아무도 모른다. 물론 사적 권리를 충분히 가지고 있는 자산가가 유리할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사적 권리의 보장을 위해 공익이 희생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임을 너무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

3. 사법질서를 해체하는 투자자-국가소송제(ISD)

한덕수 전 국무총리는 "최재천 의원의 비판 덕분에 투자자-국가소송제도 중에서 많은 부분을 지킬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한미 FTA는 투자자-국가소송제를 도입하고 말았다.

협정문 제11와 16조에 따르면, 투자자는 투자대상 국가가 투자계약을 위반한 경우 이때 발생한 손실과 손해를 중재청구할 수 있다. 투자자의 자격으로는 "자신이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소유하거나 지배하는 법인인 피청구국의 기업을 대신"하는 것까지 포함된다. 국내자본과 외국자본의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의 활용기회를 보장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것이다. 협정문 제11조와 18조에 따르자면 청구인(투자자)은 당사국의 법에 따른 행정재판소나 법원, 그 밖에 분쟁해결절차에서 절차를 개시하거나 '계속되는 권리'에 대해 포기하고, 동일 사건을 제3자인 '중재판정부'에 넘길 수 있다. 이로써 삼세판으로 상징되는 대한민국의 삼심(三審)제도는 뿌리째 흔들린다. 대법원 위에 '중재판정부'가 생긴 것이다.

NAFTA의 판례를 볼 때 대법원의 판결까지 ISD의 대상이 된다. 사실상의 사심(四審)제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삼심제는 물론이거니와 헌법재판소의 권한도 논란거리가 되고, 헌법 101조 2항에 따른 대법원의 최고법원으로서의 지위나, 헌법 27조 1항에 따라 국민이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사법절차적 권리도 정면으로 도전받는다.

한미 FTA 협정 해석의 사실상의 권한과 관련, 최종적인 권한을 사법 기관의 일종인 중재판정부가 아니라 공동위원회가 보유한다. 사법부 위에 또 다른 사법부인 중재판정부가 있는데, 그 중재판정부는 공동위원회의 해석에 따른다는 것이다. 이제 사법해석은 위원회의 몫이라는 이상한 순환체계가 완성된다.

4. 전경련의 소원대로 우리 헌법의 '경제질서' 편이 사라진다!

헌법재판소의 일관된 결정이 있다. 대한민국 헌법의 '경제질서' 조항은,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과 안정, 적정한 소득의 분배,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남용의 방지,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 균형 있는 지역경제의 육성, 중소기업의 보호 육성, 소비자보호 등" 경제영역에서의 국가목표를 명시적으로 규정함으로써 국가가 경제정책을 통하여 달성하여야 할 공익을 구체화하고 있다.

미국과는 전혀 다른 헌법체계라서 가능한 결정문이다. 미국은 아예 경제질서 조항 자체가 없다. '정부편'과 '기본권편'만으로 구성된 것이 미국헌법이다.

다시 우리 헌법재판소는 우리의 경제질서를 이렇게 정의한다. "사유재산제를 바탕으로 하고 자유경쟁을 존종하는 자유시장 경제질서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이에 수반되는 갖가지 규제와 조정을 용인하는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헌법은 늘 강조하듯이 순전한 의미의 자유시장 경제질서가 아니다. 자유시장 경제질서와 사회적 시장경제질서의 조화가 바로 대한민국 헌법이다. 경제 영역에 있어서만큼은 공익과 사익의 조화, 강자와 약자의 조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조화, 제조업과 농어업의 조화 등 공익적 가치를 철저히 추구한다. 이 점에 있어 이윤만을 추구하는 극단적 자유시장경제 근본주의와는 충분히 배치된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에 대해서는 미국 연방대법원이 위헌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의 IMF 직후의 빅딜정책에 대해서는 최소한 대한민국 헌법질서 내에서는 위헌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것이 바로 우리 헌법의 취지이고 미국 헌법과의 차이다. 그 핵심조항은 제119조 제2항으로,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부분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늘 헌법 제119조에서 제127조에 이르는 헌법 '경제편' 자체를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전경련이 추구하는 극단적 시장경제원리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이윤추구라는 사익 앞에 공익의 가치를 조화롭게 구성하려는 우리 헌법의 규정은 시장만능주의자들에게는 당연히 걸림돌이다.

정부의 규제와 조정에 대한 근거 규정인 헌법 제119조 이하는 또한 무규제 혹은 규제완화를 소리 높여 외쳐온 재벌기업들에게 당연히 제약에 해당했을 것이다. 한미 FTA 최고의 수혜자는 전경련이다. 이제부터 전경련은 한미 FTA를 통해 이 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하게 됐다. 미국에 현지법인을 세워 국내에 투자하면서 규제 관련 정부 정책을 투자자-국가소송으로 공격한다면, 이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정부는 환경이나 부동산 정책 등은 국가 정책결정의 자율성을 확보했다고 하나, 그것은 일시적 변명에 불과하다. 이윤추구를 종교적 신념으로 삼는 초국적 기업들에게 대한민국 경제헌법은 이제 무력화되고 말았다. 우리 헌법이 정한 조화로운 경제질서는 더 이상 없다. 헌법재판소부터 당장 결정례를 변경해야 한다. 헌법의 경제질서 조항은 부정됐다.

5. 헌법이 정한 국가의 농어민보호, 정부 스스로 포기

대한민국은 수천 년간 농경국가로 살아왔다. 그런 연유로 우리 헌법은 특별히 농민·농업·농지와 관련된 여러 조항을 두고 있다. 헌법 제123조 1항은 "국가는 농업 및 어업을 보호·육성하기 위하여 농어촌 종합개발과 그 지원 등 필요한 계획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또 123조 4항은 "국가는 농수산물의 수급균형과 유통구조의 개선에 노력하여 가격안정을 도모함으로써 농어민의 이익을 보호한다"고까지 규정할 정도이다.

우리 헌법재판소는 이미 우리 헌법상 경제질서가 "사회국가 원리를 수행하여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 달성을 근본이념으로 삼고 있다"고 판시한다. 농업과 농민보호에 있어서는 스위스 헌법과 우리 헌법이 실질적으로 차이가 없음에도 스위스는 유전자 조작(GMO) 관련 문제를 들어 스위스-미국 FTA를 국민투표에 부쳤고, 당연히 부결됐다. 그러자 스위스 정부는 미련 없이 협상을 중단했다.

극심한 대조를 보이는 것이 우리 정부이다. 우리 정부는 보호정책이나 국민투표 회부보다는 강변을 선택했다. 대표적 사례가 쌀 시장만은 지켰다고 호도하는 일이다.

참여정부는 이미 2004년, "2014년까지 실질적으로 쌀 소비량의 13%를 의무수입하고 그 30%를 밥상용으로 자유로이 수입하겠다고 양보하여 지금 이 순간에 미국 캘리포니아 산 칼로스 쌀이 수입되고 있고 2015년부터는 쌀 시장을 전면 개방하겠다고 협정을 맺어놓았다." 2015년부터 쌀 시장은 완전 개방된다. 따라서 그 프로그램에 따라 미국산도 당연히 들어온다. 그래서 쌀 시장만은 지켰다는 것은 말짱 거짓말이다. 그 거짓말을 바탕으로 식량주권이나 농업주권을 지킨 것처럼 변명한다.

헌법이 정한 농민·농지·농어업에 대한 각종 보호규정들은 철저히 무시되고 말았다. 농업도 경영 마인드를 갖자는 것이다. 농업도 시장원리에 내맡기자는 것이다. 일부 농업경영 성공사례를 들며, 모든 농업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호도하기까지 한다. 제주산 감귤의 피해를 한라봉으로 극복하자며 어설프게 변명한다. 한우의 피해를 명품한우로 극복할 수 있다며 떠든다.

거짓말의 백미는 세이프가드 관련 협정이다. 우리가 많이 먹는 삼겹살은 미국산 만큼은 냉동삼겹살이다. 냉장으로 들여오면 원가가 맞지 않는다. 그래서 95%가 냉동이다. 그래서 미국은 냉장 삼겹살에 대해서는 세이프가드를 설정하는 데 동의했다. 냉동삼겹살에 대해서는 세이프가드를 해주지 않았다. 미국으로서는 당연한 방어 아니겠는가.

역시 문제는 우리 정부이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돼지고기에 대해 세이프가드를 설정했기 때문에 축산농민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홍보하는 것이 참여정부였다. 헌법상 농민과 농업보호 조항은 전면 개정됐다.

6. 더 이상 국가는 중소기업을 보호·육성해야 할 의무가 없어져

 

   
  ▲ 파이낸셜뉴스 5월 14일자 2면  
 

헌법 제123조 제2항은 "국가는 중소기업을 보호·육성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한미 FTA는 철저한 시장의 논리이다. 경쟁의 논리이다. 경쟁에 뒤처진 자는 도태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진화론이 바탕에 깔려 있다.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이 경쟁을 통해 스스로의 이익을 쟁취할 수 있고 그 이익이 시장원리를 통해 적절히 분배될 수 있다는 신자유주의적 가치관에 근거한다.

그렇다면 대기업과 중기업과 소기업에 차별적 대우를 두어야 할 필요가 없다. 경쟁을 통해 소기업이 대기업 되고, 대기업이 소기업 되는 시장질서만 존재하면 되는 것이다.

이 시장론과 진화론은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가감 없이 적용된다. 그렇다면 왜 우리 헌법은 굳이 중소기업을 보호·육성하라고 규정했을까? 고용의 90%까지를 책임지는 국가경제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과연 한미 FTA는 이런 헌법정신에 충실한 조약인가? 헌법 제125조는 국가는 "대외무역을 육성하며 이를 '규제·조정'할 수 있다"고 했다. 정부는 이 부분과 관련된 정책결정권을 사실상 포기했다.

7. 헌법상 의무인 '주택개발정책' 자체도 제한 받아

우리 헌법 제35조 제3항은 꽤 특이한 규정이다. "국가는 주택개발 정책 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한 규정이 그것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주택개발 정책에 대한 조항을 '정부편'이나 '경제질서편'이 아닌,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라는 '기본권 편'에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에 있어 주택개발정책은 국가의 의무이다. 모든 국민은 쾌적한 주거생활을 누릴 권리가 있다. 국가는 그러한 의무의 주체이다. 그 의무의 한 방편으로 주택개발 정책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듯 대한민국 헌법 개정자들은 대한민국에 있어서 주택이 갖는 의미를, 그리고 의식주 제공과 관련된 정부정책의 필요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헌법에까지 규정했다. 우리 헌법이 부동산 문제를 시장의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근본적 징표이다. 특히 주거권만큼은 결정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주거권은 헌법이 정한 기본적 인권이고,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지 못하는 정부는 존재의 가치조차 없다. 이것이 바로 우리 헌법의 선언이다.

부동산 원가공개에 대해 위헌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분들은 헌법 제35조 3항의 존재를 애써 외면하는 사람들이다. ‘헌법적 외눈박이들’이라고 표현하고 싶을 정도이다.

그런데 투자자-국가 소송제도에 따라 정부의 주택개발 정책은 철저하게 제한된다. 한미FTA 협정문은 '저소득층의 주거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를 통한 부동산 가격 안정화 정책'만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예외로 규정했다.

8. 책임성이 결여된 정책결정 형태는 헌법상 대의제 원리에 대한 중대한 도전

한미 FTA와 같은 정책결정 방식이라면 더 이상의 매니페스토 운동은 무의미하다. 대통령은 선거를 통해 합헌적 권력을 취득하고 주권자의 위임의 취지에 맞게 내용적 합헌을 정책결정 과정에서 실행에 옮겨야 한다.

선거를 통해 당선된 합헌적 위임이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해도 상관없다는 극단적 민주주의관을 드러낸다. 이를 두고 고려대 최장집 교수는 '사이비 민주주의'라고 비판한다. 또 다른 표현으로는 '위임 민주주의'라는 용어로 비판하기도 한다. 대통령이 당선돼 의회를 무시하면서 권한을 행사하고, 국민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대통령의 정치행태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결국 민주주의의 위기, 대의제의 본질적 위기, 투표제의 근본적 위기에 봉착하는 것이다. 한미 FTA가 바로 이러한 민주주의의 위기, 헌법의 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헌법이 정한 투표제도, 대의제의 원리에 대한 급진적 충격이 바로 한미 FTA 협정이다.

9. '위원회 공화국'이 아니라 '한미 위원회 공화국'이 판친다

정부 정책결정의 자율성, 행정권의 독립성은 한미 협의라는 이름 아래 근원적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미 FTA 상 공동위원회가 하나, 상품 무역위원회 등 위원회가 열, 소위원회 하나, 협의회 둘, 작업반 넷 등 총 18개의 협의채널이 구성된다. 협의채널 숫자만큼이나 아메리칸 스탠더드 화는 가속화될 것이고 대한민국 정부의 정책결정권은 제약될 수밖에 없다. 그만큼 헌법의 개정에 해당한다.

10. 한미 FTA는 법률적 효력을 갖는 조약이 아니라 초법률적 조약

우리 헌법 제6조는 "체결·공포된 조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했다. 한미 FTA도 당연히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한미 FTA는 국내법 169개를 개폐하는 무지막지한 철퇴를 휘두르게 된다. 국내법과 같은 효력이 아니라 국내법을 개폐하는 효과를 갖는 것이고,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초법률적 조약이다. 문제는 법률만 개폐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마저도 개폐하는 데 있다.

차라리 미국은 헌법과 법률에 충실했다. 권력분립 원칙에는 더욱더 충실했다. 통상에 관한 권한, 입법에 관한 권한은 미 의회의 권한이다. 한미FTA 협상 과정에 있어 미국 측 통상 대표들은 이 원칙을 철저히 준수했다. 우리 측은 미국 국내법 관련 법개정 사항은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조차 없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무역구제조치이다. 우리가 이번 협상에서 반드시 얻어내야만 했을 최고의 카드가 반덤핑 조항 등 무역구제조치였다. 그런데 미국은 국내법 개정 사항에 해당한다며 2006년 12월을 끝으로 말도 내지 못하게 했다. 법개정 사항에 해당하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를 처음부터 2006년 12월 27일까지 일관되게 주장했고 관철했다. 당연히 한국에도 통보했고, 미국 의회에도 통보했다. 우리 정부는 미국 정부의 의회에 대한 보고가 확정된 2006년 12월 27일 이후에도 무역구제조치를 카드 삼아 자동차 등을 방어하겠다는 거짓말을 해댔다.

현대중공업의 주가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 앞으로 30년 동안 최고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2007년 5월 한 달은 매일 한 척씩 수주했을 정도이다. 하지만 현대중공업도 미국 연안을 항해하는 선박을 건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토록 경쟁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세계 최고의 시장인 미국에 배를 팔 수 없다. '존스 액트'라는 미국 국내법 때문이다. 이 법 때문에 선박은 아예 협상대상에 빠졌다. 왜? 미국 국내법 개정사항은 논의조차 안되니까.

우리는 현재 시행 중인 1천여 개의 법률 중 169개를 개정해야 하지만, 미국은 하나도 손댈 수가 없다. 그리고 손댈 필요도 없다. 아예 협상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미국은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한 헌법질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가의 규제나 조정에 친하지 않다. 우리와는 근본바탕이 다르다. 이런 차이를 무시하고 그저 시장을 넓힌다는 이유로, 미국식 문화를 도입한다는 이유로, 미국식 사회경제시스템을 선호한다는 이유로 덜렁 협상에 나섰다. 1995년 이미 WTO는 우리의 상품시장 개방화율을 99.3%라고 했다. 한미 FTA는 상품시장 개방을 위한 협정이 아니다.

물론 미국에 있어서도 한미 FTA는 조약이다. 하지만 법률 아래 위치하는 일종의 행정협정 수준의 내용을 담은 조약이다. 한국에 있어서 한미 FTA는 모든 법률 중에서 최우위에 서는 수석법률이고, 헌법마저 맘껏 유린하는 초헌법이다. 그런데도 위헌론은 잠잠하다.

11. 헌법재판소 결정대로라면 한미 FTA는 당연히 헌법개정 국민투표 대상

신행정수도건설 관련 위헌심판청구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이상한 '관습헌법론'을 들고 나왔다. 수도 서울은 헌법전에 규정되지 않은 일종의 관습헌법이라는 것이고, 관습헌법 개정은 '해석 개헌'이 아니라, 헌법 제10장이 정하고 있는 헌법개정 절차를 밟으라는 것이었다. 개헌안을 발의해서 공고하고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부쳐야 하는데, 신행정수도 건설을 그저 법률로 처리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한미 FTA야말로 분명 헌법 개정에 해당하기 때문에 당연히 국민투표로 가야 하는 것이다. 헌법이 이토록 실질적으로 변경되고 있음에도 헌법 전문가들은 아무런 말이 없다. 입법기관인 국회가 아예 입을 다물고 있다. 입법권 침해 자체도 아예 관심 밖이다.

12. 결국 국민투표밖에 없다

국민투표 근거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신행정수도 건설 관련 헌재의 결정 취지에 따라 헌법개정 국민투표를 밟으라는 것이다.  그 근거는 헌법 제10장인 헌법개정편이다.

또 하나의 근거가 있다. 헌법 제72조가 그것이다.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주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 한미 FTA야말로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국가 명운과 관련된 주요 정책이다.

이런 정도의 사안이면 국민투표로 가는 것이 옳다. 캠브리지대 장하준 교수의 주장도 상통한다. 스위스의 미국과의 FTA 체결여부에 대한 국민투표 부의 선례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주권과 관련된 의사결정 사항은 주권자인 국민에게 맡기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이다. 방사성폐기물저장 장소를 두고도 주민투표로 결정하듯이 한미 FTA 정도는 모든 국민들의 이해관계가 걸린 만큼 국민투표로 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이대로 가자는 것은 헌법의 국민투표 규정을 아예 잠재우는 일이다. 사실상의 사문화다. 헌법상 국민투표 조항은 죽었다. 대통령에 대한 신임투표만큼이나 대통령의 중임제 개헌만큼이나 주권자인 국민의 투표를 통한 의사결정은 필요하다.

* 다음 기사는 '5년 단임제 권력구조, 아직 바꿀 때 아니다' 입니다.

-촛불들이여, 헌법 119조 2항을 사수하자(2) 헌법 119조 2항 없애면 재벌세상이 된다
-촛불들이여, 헌법 119조 2항을 사수하자(1) 촛불시위 틈탄 수구세력의 개헌 총공세

신학림 기자  mediashin@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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