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확산성 밀리언 아서> 3인의 주인공. 믿기 힘들겠지만 초록 옷의 캐릭터는 남자다. (SQUARE ENIX, Published by Actoz Soft)

카드 게임 유행의 시작

모바일 게임이 '대세다 대세다'하는 말이 꽤 오래 전부터 회자돼 왔음에도,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널리 알린 것은 역시 스마트폰의 보급과 시기를 함께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간한 '2012년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모바일 게임 시장의 규모는 지난 2011년 4236억원에서 2012년 6328억원으로 성장했으며 올해에는 거기에 45% 더해 90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 성장률이 더 무서울 정도다.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시장에는 지금도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종류의 게임이 쏟아지고 있지만, '대세'를 이루는 게임들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작년 '애니팡' 돌풍을 일으킨 후 승승장구하고 있는 '모바일 메신저 기반 소셜 네트워크 게임(SNG)'들이다. 특히 그 중심에 서있는 카카오톡은 '카카오 게임하기'가 도입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음에도 수백 개의 게임을 런칭하며, 초강력 독점 플랫폼이 돼 버렸다. 아이폰 앱스토어 기준, 매출액 상위 10위중 무려 7개가 카카오톡 게임들이다. 이러한 성공의 원인에 단단하게 구축된 회원수의 네트워크가 있음을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부류는, 이른바 보통 TCG라고 불리우는, 주로 '예쁜 일러스트' 내세우는 카드게임들이다. TCG는 Trading Card Game의 약자로, 카드를 구입이나 거래해 모으고 그렇게 얻은 카드를 이용해 놀이하게 되는 게임을 말한다. 예컨대 <마구마구>와 같은 게임도 야구 경기를 위해서는 선수 '카드'가 필요하므로 여기에 속한다. 물론 (<매직 더 개더링>이나 <유희왕>과 같은) 오프라인 TCG와 달리, 모바일 게임이나 온라인 게임에서는 이용자간 거래(Trading)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기에 엄격하게는 CCG(Collectible Card Game, 수집형 카드게임)로 한정해 불러야 하겠지만.

TCG건 CCG건, 카드게임이 모바일 게임의 대세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경향이다. 그리고 이러한 유행의 본격적인 시작에는 작년 말 국내 서비스를 시작한 <확산성 밀리언 아서>(이하 '확밀아')가 있었다.

▲ 아이폰 기준 유료결제 가격은 이렇다. 카드 한 장 뽑기는 250MC이므로 대략 3000원 정도.

소득소비의 양극화

규칙은 간단하다. '기사' 카드를 수집해, 자신만의 덱(Deck)을 꾸리고 전투하면서 계속해 자신의 카드를 강화하고 새로운 카드를 다시 모아나간다. 사실 이런 단순한 반복성은 카드가 상징하는 것이 '몬스터' '악마' 등등으로 다르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른 모바일 카드 게임들에도 해당하는 공통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단순한 규칙의 게임이 월 수십억 단위의 수익을 올린다는 사실이다. 부분유료 구조인 이 게임에서, 수입의 대부분은 수십, 수백만원 이상을 게임에 쏟아 붓는 '과금전사(課金戰士, 일본에서 유래한 조어로 '현질'에 아낌이 없는 우수고객들을 뜻한다)'들로부터 나온다. 카드 게임에서 유료 결제의 핵심은 확률에 근거한 무작위 카드 추첨(확밀아에서는 '가챠'나 '뽑기')에 있기 때문에 원하는 좋은 카드를 얻으려면, 수십 수백 번 이상 추첨해야 하기 마련이다. 어설프게 몇 번 시도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따라서 아예 게임에 돈을 팍팍 지르며 좋은 카드를 얻고야 말겠다는 계층, 일명 '과금전사'와 유료결제를 아예 하지 않던가 꼭 필요한 만큼(전투와 탐험의 기회를 늘려주는 일명 '홍차/녹차' 투자)으로 최소화하겠다는 계층으로 나뉘게 된다. 확밀아는 게임 머니인 MC를 일정한 액수 단위로 판매하는데, 단위별 판매순위를 보면 전체 1위가 최소단위인 80MC 전체 2위가 최대단위인 9000MC다. 이는 이용자들의 유료결제에 대한 경향성이 양극화돼 있음을 뜻한다.

'과금전사'들이 있기 때문에, 게임 제작사와 공급사가 먹고 사는 것이지만 이들의 존재는 미스터리다. 아니 거의 이해 받지 못한다. 게임 등 하위문화에 돈을 투자하는 행위가 좋지 못한 시선을 사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지만, 확밀아의 경우는 조금 더 극단적이다.

▲ 확밀아의 앱스토어 스크린샷. 4마디 문장과 그림으로 작품의 특징은 요약된다.

카드의 가치론

과금전사들의 거금이 쏠리는 곳은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일러스트가 그려진' 카드이다. 한 장의 카드가 담고 있는 가치는 세 가지로 나눠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그 카드가 게임에서 실제로 어떤 역할을 얼마나 잘 할 수 있는가 즉 '성능 가치'가 첫 번째 기준이 될 것임은 쉽게 알 수 있다. 또 첫 번째와 관련하여, 그리고 그 카드가 획득하기 위한 확률과 난이도 즉 '희소 가치' 또한 중요한 기준이 된다. 대개의 경우는 희소 가치는 성능 가치와 완벽한 인과 관계는 아니더라도, 제작자의 상업적 의도에 의해 상당히 높은 상관관계를 형성하기 마련이다.

물론 확밀아의 경우에는, 하나의 카드가 제대로 된 성능을 내기 위해서는 같은 카드를 여러 장 합체시켜야 한다는 특이점이 있어 희소성(즉 획득난이도)과 성능이 자주 어긋나기도 한다. 최고급 카드 한 장보다, 적당한 카드 여러 장이 더 좋을 때가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이도 변수의 기준을 카드 낱장이 아닌 완전히 합성된 카드(일명 '풀돌')로 넓혀 생각한다면, 상관관계는 분명하므로 결론적으로 큰 차이는 없다.

마지막으로, 확밀아의 핵심 세일즈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카드에 그려진 일러스트에 대한 선호 즉 '미적 가치'를 생각할 수 있다. 사실 미적 가치는 가장 어려운 문제다. 유명 만화가나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참여한 카드의 일러스트는 이용자를 끌어들이고 유료결제를 유도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지만, 가장 외부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요소이기도 하다.

보통의 게임이라면, 그 게임을 하는가 하지 않는가 즉 게임의 '규칙'을 받아들였는가 아닌가가 외부인과 게이머가 갖는 인식차이의 유일한 요인이 된다. 그런데 그런데 확밀아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더 복잡해진다. 왜냐하면 확밀아에서 카드의 가치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인인 미적가치의 위상이 복합적인 모순으로 뒤덮여 있고, 그 문제가 게임을 하고 말고를 떠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적 가치라는 것이 늘 그렇듯 거기에는 일차원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양적 요소를 가지지 않는다. 설령 우열을 판별할 수 있다 해도 그 차이가 카드의 획득 난이도와 별다른 상관관계를 이루지도 않는다.

다른 무엇보다, 그 미적가치에 대한 향유는 배타적이지도 독점적이지도 않다. 마음만 먹는다면 게임 밖에서 목표하는 일러스트를 찾아보는 것이 언제든지 쉽게 가능하고, 오히려 제작자와 공급사에서 홍보를 위해 끊임없이 노출시켜 준다. 오프라인 게임의 카드라면 실물을 보는 것에 나름의 의식(儀式)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지도 모르나, 온라인은 구글이미지만으로도 질리게 접할 수 있다. 외부인이 확밀아 이용자 특히 과금전사들의 카드에 대한 갈구를 한층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단순히 일본식 미소녀 그림에 대한 비취향을 제외하고 이러한 상식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 구글이미지로 확밀아를 검색한 결과. 셀 수도 없다.

욕망 없는 아름다움 과잉의 시대

사진과 복제기술의 발명 이전에, 아름다움이란 매우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가치였다. 지금의 일러스트레이터나 만화가와 같은 대중적 그림쟁이도 없었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관할 수도 없고 원하는 때 감상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어찌보면 냉장고 발명 이전의 얼음보다 더 귀했던 것이 아름다움이었을 것이다.

그 상황은 복제기술이 발달하고, 그 비용이 무료에 가깝게 내려가면서 완전히 역전되었다. 우리에게는 아름다움이, 특히 인간적 외모에 대한 아름다움의 감각이 귀하기는커녕 너무 흔해빠진 것이 돼 버렸다. 일본식 2D 일러스트 또한 그 역사는 짧지만 나름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을 기호화한 것이며, 복제기술을 통한 상품화를 위해 탄생한 것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에는, 그것에 대한 욕망과 열망이 포함돼 있다. 그런데 아름다움의 대상을 너무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그것에 대한 감각이 오히려 둔화되고 무력함에 빠진다. 구글이미지만으로도 세계의 모든 곳, 모든 것을 찾아 볼 수 있는데 대체 무엇을 갈구하고 찾아야 하는가?

아름다움이 있고 그것을 향해서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무언가에 몰입하기 위해 아름다운 것을 찾고 스스로 의미부여를 하는 것. '덕질'이란 이런 의미가 아닐까? 확밀아, 그리고 그와 유사하게 미려한 일러스트로 승부하는 무수한 카드게임들이 공통적으로 담고 있는 것은 단순한 그림쪼가리가 아니라, 욕망과 열망의 대상이 돼 줄 분명한 피사체이다. 그리고 게임이라는 미디어는, 그 피사체를 획득하기 위해 에너지를 쏟고 좌절하고 재기하고 성취하는 서사를 제공한다.

현실에서 벗어나 어떤 미디어에 몰두할 때, 우리는 '○○의 세계에 빠져든다'는 말을 쓴다. 현실이 우리의 감각에 어떤 욕구불만을 일으킬 때 다른 '세계'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이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어떤 '세계'에 빠져들었다면, 그 세계는 현실 세계가 우리의 감각에 어떤 제약,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를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확밀아의 판타지 세계 또한, 우리 현실의 구멍난 공간을 무대로 쓰고 있는 셈이다.

▲ 조은상 하위문화평론가
'잉여'나 '덕후'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시대가 왔다. 감격스러운 일이다. 주류 언론에게 존재 자체가 무시당하던 이들이 이제는 하나의 유의미한 집단으로 부상한 것이다. 하지만 그 시선은 잉여/덕후의 정치적 가능성, 사회경제적 위치 등에만 쏠려있을 뿐, 정작 그들의 정체성과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것, 하위문화(sub-culture)에는 무관심하다.

게임, 애니메이션, 만화 등을 비롯해 하위문화는 지금 경계선에 서 있다. 수적으로는 이미 다수의 위치를 넘보고 있지만, 사회적 위상은 여전히 바닥에 있다. 물론 인간이 그러한 것처럼, 문화에도 왕후장상에 씨는 따로 없다고 필자는 믿는다.

이 연재에서는 주류언론에서 거의 다루지 않으나 유의미한 향유집단을 가지고 있는 하위문화 콘텐츠 등을 소개하고, 그것이 갖는 의미에 대해 '편파적으로' 다뤄보려 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