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에 의해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발췌본에 이어 전문이 공개되면서 정국이 거듭 요동치고 있다. 새누리당은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에 합의하며 ‘출구’를 만들려는 시도를 하면서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앞장서 이적행위를 한 반역의 대통령이라 맹비난하고 있다. 한편 발췌본 공개 때는 ‘복붙’(복사 후 붙여넣기)한 것처럼 1면이 같았던 ‘조중동’ 역시 원문공개 이후에는 각자 조금씩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진보언론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과 구상에 대해 옹호하거나 찬성하고 발췌본과 새누리당 측의 이해가 잘못된 것임을 비판한다면, 보수언론들은 기본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이 부적절한 것이었다고 본다.
하지만 중앙일보의 경우 보수언론 중에서는 ‘국가기밀 유출’이라는 논점을 가장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다. 1면 기사부터가 <국정원 명예 보호 vs 국가기밀 유출>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회의록 전문의 내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 국정원이 회의록 전문을 공개한 행위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지를 묻는다는 점에서 여타 보수언론의 보도와는 큰 차이가 있다.
▲ 금일(26일)자 중앙일보 1면 기사
또 회의록 전문의 내용을 해석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3, 4, 5, 6면을 할애하여 비단 여야공방의 문제를 다룰 뿐 아니라 이 회의록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들을 논점별로 정리하는 형태로 정리했다. 사설란에서도 <NLL은 실질적인 영해선이다>라는 제목의 긴 사설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을 “다수 국민의 생각과 거리가 먼 부적절한 표현”이라 평가하면서도 “노 전 대통령이 김정일 앞에서 NLL을 포기하거나 양보하겠다는 의사를 직접적으로 밝힌 대목은 나타나지 않는다”면서 새누리당 일각의 잘못된 이해와는 선을 그었다. 또한 다른 사설은 아예 <국정원의 ‘회의록 공개’ 판단은 부적절했다>라는 제목으로 국정원의 처신을 비판하고 나섰다.
반면 조선일보의 경우 전날 대선 직전이나 볼 수 있는 긴 사설로 대통령을 질타했던 모습에서 벗어나 다소 소심한 보도태도를 보였다. 1면 기사 제목은 공개된 전문에 대한 새누리당 측과 문재인 측의 발언을 병렬 소개하는 것으로 달았다. 3, 4, 5면에 실린 관련 기사도 내용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기 보다는 여야의 논란을 소개하고 서로의 주장이 틀린 부분을 지적하는 정도에 그쳤다. 조선일보나 중앙일보나 회담 당시 NLL 논의도 없었고 대화에 대한 녹취록도 없었다는 이재정 전 통일부장관의 발언이 ‘위증’임을 지적하고자 했다.
▲ 금일(26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태도를 가장 크게 문제삼은 것은 동아일보였다. 동아일보 1면 기사 제목은 <‘대통령의 직분’ 망각한 2007년 盧 발언>이었고 3, 4, 5면의 관련 기사들도 전문 내용에서 김정일의 태도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저자세를 끄집어내어 사실상 비판하였고, 박근혜 정부가 당시 정상회담의 결과로 만들어진 10.4 선언의 이행을 철회할지도 모른다는 예측 기사를 실었다. 국정원의 행태에 대한 논란은 조선일보 측 기사보다도 더 작게, 야당 측의 문제제기와 국정원의 반론을 동시에 소개하는 형태로 다루어졌다.
전반적으로 평가할 때 중앙일보의 보도기조가 보수세력이 응당 지녀야 할 책임의 최소한을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고, 조선일보의 경우 그 소심한 보도행태로 미루어 보건대 회의록 전문의 내용이 그들이 우려하던 만큼은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인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가장 실망스러운 것은 동아일보로, 회의록 전문 내용에만 치중하고 다른 논점은 보지 못하는 태도도 문제였을뿐더러 전문 내용에 대한 해석도 대단히 편향적이었다.
▲ 금일(26일)자 동아일보 1면 기사
동아일보는 이명박 정부 시절 이제 더 이상 ‘조중동’에 묶이기도 민망한 친정부 성향의 언론이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박근혜 정부 이후 인사문제 등에서 각을 세우며 왕년의 비판언론의 위상을 다소 회복하는 듯 보였으나, “삼성비판은 조선일보 만큼도 하지 못하고, 대북정책은 중앙일보보다도 경직적인” 논조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비록 대북정책에 대한 생각이 다르더라도, 동아일보가 비판언론의 역할을 한다 자임하려면 정보기관의 책임 문제나 회의록 공개의 적법성 및 타당성의 문제 정도는 두루 챙겨야 할 것으로 보인다. 좁은 상황에 매몰되는 것은 보수의 가치도, 비판언론의 진면목도 살리는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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