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국회의원 중에서 최다선 의원은 'Mr. 쓴소리'라는 별명을 가진 7선의 조순형 의원이다. 그는 1956년 정통 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최고위원)를 지냈고 1960년 대통령 후보로 유세 도중 작고한 유석(維石) 조병옥 박사의 셋째 아들이다. 조순형 전 의원의 바로 위 형이 조윤형 전 국회부의장이다.

조 의원은 평생 '정통 야당' 생활을 하다 이회창의 자유선진당으로 옮기는 바람에 'Mr. 쓴소리'라는 이미지가 빛이 바랜 느낌이다.

정몽준 의원,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과 함께 '유이'의 6선 의원

7선의 조순형 의원에 이어 6선 의원은 두 명 밖에 없다. 한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한나라당, 포항시 남구·울릉군)이고 다른 한 사람은 정몽준 의원(서울 동작 을)이다.

정몽준 의원은 현대중공업이 있는 울산에서 줄곳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그러다 지난 4월 18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 입당해 서울(동작 을)에서 출마한 그는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을 누르고 당선됐다.

▲ 한국일보 6월 30일자 8면

정 의원이 지역구를 울산에서 서울로 옮긴 것과 무소속에서 한나라당으로 입당한 것은,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자신감과 확신을 가지고 '경제대통령'으로 불리는 것도 성에 차지 않은 듯 1992년 통일국민당을 창당해 대통령 후보로 대선에 나섰다가 고배를 마신 아버지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의 '유일하게 실패'한 꿈을 대신 이루기 위한 승부수로 보인다.

2002년 대선에서 당시 노무현 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 약속 번복 등을 통해 '대중 정치인'으로 상처를 받은 정 의원이 대통령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집권당에 들어가는 것이 유리하다는, 모처럼의 (정치)현실주의적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개인 재산이 2조원 안팎으로 국회의원 중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 사람 전체를 통틀어서도 최고부자 반열에 있는 정 의원 입장에서는 5년 뒤를 대비한 대선 행보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그가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경선에 나선 것도 예고된 행보로 볼 수 있다.

▲ 머니투데이 6월 30일자 6면

재미있는 것은 정 의원이 당 대표 경선 토론 과정에서 '버스 요금이 70원 정도'라고 대답한 것 때문에 각종 인터넷 포털 검색에서 '대박을 터뜨렸다(?)'는 것이다. '정몽준'이란 이름 석자와 '70원'이란 단어는 여전히 인기 검색어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정 의원이 지난달 27일 저녁 KBS1라디오에서 생중계로 진행된 한나라당 대표 경선 토론에서 '버스비가 얼마인 줄 아느냐'는 공성진 의원의 질문에 "굉장히 어려운 질문을 했는데 요즘은 카드로 계산하지 않습니까. 한 번 탈 때, 한 70원 하나!"라고 대답한 이후 포털 관련 기사에는 정 의원을 질타하는 수 천개의 댓글이 줄을 이었고, 그의 홈페이지에도 그를 비난하는 글이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정 의원은 가뜩이나 경기도 침체인데다 정치사회적인 분위기도 심상찮은 상황에서 대부분의 서민들조차 까마득하게 잊고 지내던, 일상 경제활동에서 거의 사장(死藏)된 것이나 다름없는 '10원대 단위'의 중요성을 일깨운 셈이다. 그래서 '빅히트'를 친 것 아닌지 모르겠다. 과연 '정몽준 답다'고나 할까.

'버스요금 70원' 발언을 듣고 난 뒤 드는 3가지 단상

정 의원의 버스 요금 70원 발언과 파문을 들으며 드는 생각은 세 가지다.

첫째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정몽준 의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는 것이다. 우리나이로 58세인 그의 삶 전체가 오롯이 서민이나 서민의 삶 자체와는 애초부터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는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 어렵다던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해 '학력과 배움'에 목말라했을 아버지 정주영 회장을 엄청나게 기쁘게 해드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MIT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다시 존스홉킨스대학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귀국해 30대의 나이에 처음 국회의원이 된 뒤 내리 다섯 번을 더 당선됐다. 대한축구협회 회장과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으로 '2002 FIFA 한일 월드컵' 개최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바 있고 현재 울산대 이사장과 아산재단 이사장을 겸하고 있다.

이렇게 '성공적인 삶'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탄탄대로를 걸어왔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버스요금이 얼마인지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정몽준 의원만 비난할 일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있다!

둘째, 정몽준 의원만 비난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는 정몽준 의원 보다 몇십, 몇백 배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상황 인식과 판단력도 정 의원 못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1백만 촛불 대행진'이 벌어진 6월 10일 저녁 청와대 뒷산에 올라 혼자서 촛불행렬을 바라보며 '뼈저린 반성'을 했다던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들 귀에서 그 말의 여운도 채 가시기 전에 사실상 경찰의 강경진압을 지시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바로 시위진압 경찰들이 평화적인 촛불집회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강제 진압하고 심지어 아무런 저항 능력을 갖지 못한 20대 초반의 여성을 집단적으로 잔인하게 폭행하는 상황이 가능한가?

▲ 중앙일보 6월 20일자 3면

그래서 다시 이명박 대통령의 6월 19일 기자회견 내용을 읽어본다.

"지난 6월 10일, 광화문 일대가 촛불로 밝혀졌던 그 밤에, 저는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바라보았습니다. 시위대의 함성과 함께, 제가 오래전부터 즐겨 부르던 '아침이슬' 노래 소리도 들었습니다.

캄캄한 산중턱에 홀로 앉아 시가지를 가득 메운 촛불의 행렬을 보면서, 국민들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제 자신을 자책했습니다. 늦은 밤까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수 없이 제 자신을 돌이켜보았습니다.

아무리 시급히 해결해야 할 국가적 현안이라 하더라도, 국민들이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또 국민들이 무엇을 바라는지, 잘 챙겨봤어야 했습니다. 저와 정부는 이 점에 대해 뼈저린 반성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취임 두 달 만에 맞은 이번 일을 통해 얻은 교훈을 재임 기간 내내 되새기면서 국정에 임하겠습니다. 국민과 소통하면서, 국민과 함께 가겠습니다. 국민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반대 의견에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1987년 6·10 민주혁명 이후 한국 사회는 엄청나게 변했다. 특히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한국 사회는 질적으로 엄청나게 달라졌다. 2008년 5~6월의 촛불시위는 인터넷 강국, 한국인의 역동성과 상상력, 그리고 창의성이 어우러진 '세계 최초의 Web 2.0에 기반한 정치혁명'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런데 '불도저'라는 별명을 가진 이명박 대통령은 20년 전의 권위주의 시대의 '제왕적 대통령‘에 머물러 있고, 국무회의에 참석한 장관들과 청와대 참모들은 입을 굳게 다문 채 '몰락의 길'로 접어든 대통령에게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고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대통령과 참모들만 세상 바뀐 줄 모르는 것 아닐까!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정부는 사실상 21년 전 군사독재정권 시절로 돌아갔다. 그동안 세상은 엄청나게 변했고 국민들은 10년 전, 20년 전의 국민이 아니다. 더 이상 제왕적 대통령은 이 '열정적이고, 역동적이고 창의적인 국민'을 다스리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오로지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만 이 사실을 모르는 듯하다. 대통령과 그의 정부가 국민들의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한 사실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자기 나라의 대통령을 '2 메가바이트 혹은 마이크로바이트(MB)'로 부르는 것은 문제있다고 생각한다.

셋째, 정몽준 의원은 이번 '버스 요금 70원' 발언으로 대통령의 꿈을 접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는 점이다. 감히 예언하건대, 이회창 씨가 그의 아들 병역면제에 대한 '반성하지 않는 자세와 발언' 때문에 1997년과 2007년 두차례의 대선에서 패배한 것처럼, 정 의원의 지금과 같은 상황인식과 판단력만으로 볼 때도 그가 대통*령직에 오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 다음 이야기는 '버스요금 70원의 정몽준과 박근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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