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시장의 왜곡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얼마나 극한이었기에 두 아이의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도대체 어떠하기에 20년 넘게 지국을 운영하던 이가 왜 자살을 선택했을까라는 안타까움에서 이 영화를 시작했다."

2006년 1월 25일, 한겨레 10면에 실린 <사람잡는 '신문 판촉전쟁' 언제까지…> 기사가 김은경(31) 감독의 가슴에 서글프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는 이내 곧 이를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1년 9개월이 지난 후, <뉴스페이퍼맨(Newspaperman)- 어느 신문지국장의 죽음>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완성한다.

▲ 김은경 감독이 영화를 제작하게 된 계기가 된 한겨레 2006년 1월 25일자 10면.
이 영화는 '2005년 12월 서울시 은평구 갈현동 한 식당에서 종합일간지 지국장 박 아무개씨(당시 45세)가 숨진 채 발견됐다'는 사실에서부터 시작한다.

두 아이의 아빠이자 20년 넘게 지국을 운영하던 박 씨는 신문사의 무리한 확장 요구로 신문 지대를 제 때 메우지 못해 적자가 악순환 됐다. 4개 신문사 지국을 겸영하던 박 씨는 3곳의 신문사로부터 지국 계약을 해지 당했으며 신용불량자로 전락,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람은 비를 맞아도 되지만 신문은 비를 맞으면 안 된다"

영화는 모두가 잠들어 있는 시간인 새벽 2시부터 신문을 배달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신문 지국의 모습을 조명한다. 혹여나 신문이 비에 맞을까봐 비닐로 꼼꼼히 덮는 모습에서부터, '내가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좋다'며 불편한 몸을 이끌고 신문을 배달하는 한 장애인의 모습까지.

이렇게 많은 이들의 손 때가 묻은 채 배달되는 신문을 조명한 이 영화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본사와 지국과의 관계가 얼마나 불공정한지를 잊지 않고 보여준다.

본사의 무리한 확장 요구에 스스로 지국의 간판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사연, 본사에 밀린 신문 지대를 주기 위해 자식의 수술비를 포기해 먼저 하늘나라로 자식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사연, 본사와의 불공정 계약에 항의하며 공정위에 조사를 요구하는 사연 등 신문 시장을 둘러싼 왜곡의 단면을 드러낸다.

"지국이 불법 경품을 쓸 쑤 밖에 없는 사연, 알리고 싶었다"

지난달 30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명동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어느 신문지국장의 죽음> 시사회에서 만난 김은경 감독은 드러나지 않는 진실, "신문사와 지국 간의 불공정 계약과 지국이 불법 경품을 쓸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영화를 통해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 6월 30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명동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어느 신문지국장의 죽음' 시사회. 김은경 감독(가운데)이 관객과의 대화를 갖고 있다. ⓒ송선영
"한겨레 기사를 보고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김 감독은 영화를 제작하기 전에 직장 생활을 했고, 단편영화 1~2편 만든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김 감독은 "신문시장 왜곡이 우리 사회 단면을 보여주는 내용이기에 장편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장편극영화를 구상하다가 제작비, 구성 등의 문제로 촬영이 지연되다 결국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만들었다"며 "기술적으로 부족한 상태에서 시작해 어려움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당시 한겨레의 기사를 보고 어떠한 점을 느꼈기에 영화를 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나?

▲ 김은경 감독. ⓒ송선영
"대학교 다닐 때 당시 안티조선운동의 열풍이 강했다. 제2전공이 신문방송학이라서 학교 다니면서 진중권씨의 책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를 비롯해 강준만 교수의 저서를 꽤 읽었다. 사실 나는 고등학교 때 조중동을 보고 논술 공부를 했었다. 그러나 그 후 대학교에 와서 보니 '이들 신문들의 논리가 상당히 왜곡돼 있고 그간 속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신문 시장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이 기사를 보고 지국장의 죽음을 알리고 싶어서 영화를 만들게 됐다."

-영화를 통해 전달하고자 한 점은 무엇이었나?

"신문 시장의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신문사'와 '기자'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우리 손에 배달되는 신문 유통 과정의 문제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신문 지국장들은 개인사업자로 등록돼 있어 노동조합에서도 소외돼 있고 신문사에서는 그들에게 투자만을 요구할 뿐이다. 이처럼 지국장들은 양쪽 모두에서 소외돼 있다. 지국장들의 이런 현실을 영화를 통해 알리고 싶었다."

-영화 제작 과정에서 알게 된 본사와 지국과의 관계는 어떠했나?

"한 지국장이 인터뷰 도중 '평생 종으로 살아야 된다'는 말을 했었는데 이 말이 맞았다. 정말 깜짝 놀랐다. 지국장들이 개인 돈을 지국에 투자했는데 본사에서는 이들에게 확장 수단을 주지 않았고 오히려 이들에게 '일정한 부수 목표를 달성을 해야 한다'는 각서를 받고 있었다. 신문사들은 강압적으로 신문 부수를 부풀려 지국에게 제공한다. 예를 들어 실 구독부수가 3천부라면 본사에서는 6천부를 지국에게 배달해 나머지 부수에 대한 몫을 지국들이 감당해야 하는 그런 구조다."

-영화를 제작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영화 중에서도 비주류인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라는 점이 가장 힘들었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인적, 물적 자원이 없다는 점이 힘들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지국장님들의 아픔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동병상련의 마음이라고나 할까?(웃음)"

- 가장 보람 있었을 때는 언제였나?

"영화를 찍으면서 보람을 느낀 적이 두 번 있었는데, 한 번은 새벽에 신문 지국에서 배달하는 모습을 촬영하고 집으로 왔을 때 집 앞에 신문이 배달돼 있는 것을 보고 무척이나 찡했다. 모두가 잠들어 있을 시간에 부지런히 배달하는 그 과정을 알고 있었기에 더 그랬던 것 같다. 또 한 번은 영화를 완성하고 지국장들과 비공개 시사회를 가졌는데 그간의 사연이 고스란히 담긴 영화를 본 그분들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 때 많은 보람을 느꼈다."

-신문시장 정상화를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신문사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돼야 하고 스스로 자정 노력을 보여야 한다. 또한 독자들도 경품으로 신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신문의 내용과 질로 선택해야 한다. 더불어 본사와 지국과의 관계가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 지국들이 독자에게 경품을 제공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국을 처벌하고 벌금을 매기는 것은 소용없다. 나아가 사법부와 공정거래위원회 모두 일부 세력의 눈치 보지 않고 그들 목적에 맞게 본분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도 요즘 신문 내용으로 구독을 선택하는 경향이 늘고 있는 것 같아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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