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사회부에 유덕영 기자가 있다. 어떻게 아냐고. 오늘자(1일) 26면에 '기자의 눈'을 썼다. 그래서 안다. <MBC 앞 시위대의 신선한 준법>이라는 제목의 칼럼이다.

이 칼럼은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MBC 본사 남문 앞에서 열린 집회 풍경을 담고 있다. 네이버 카페 '과격불법 촛불집회 반대 시민연대' 주최로 열린 이날 집회의 주제는 MBC의 편파·왜곡 방송 규탄. "요즘 광화문에서는 죄 없는 경찰과 시민이 폭행당하고, 도로가 무단으로 점거당하는 등 대한민국을 혼란케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런 광기 어린 쇼는 MBC의 거짓 선동방송으로부터 시작됐다"는 게 이날 집회참가자들의 주장이다.

최소한의 균형감각은 칼럼의 기본이다

▲ 동아일보 7월1일자 26면.
제목에서 이미 짐작했겠지만 이 칼럼은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민들의 '폭력성'을 부각하기 위해 MBC 앞 집회 참가자들의 '준법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른바 '대비효과'라고나 할까. 그런데 그 효과, 제대로 발휘될 지 의문이다. 칼럼의 수준 자체가 워낙 떨어지는 데다 팩트마저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쓴 흔적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우선 칼럼의 마지막 부분을 한번 보자. 유 기자는 이렇게 주장한다.

"매일 밤 망치와 쇠파이프를 들고 경찰과 '전투'를 벌이고 시민들의 불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도로를 불법 점거하면서도 시위대는 스스로를 민주시민이라고 부른다. 도대체 이들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틀렸다. 유 기자가 언급한 민주시민은 매일 밤 망치와 쇠파이프를 들지 않았다. 최근 일부 시위대가 망치와 쇠파이프를 들긴 했지만 유 기자가 언급한 것처럼 매일 밤 망치와 쇠파이프를 들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별 차이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 몰라도 이거 중요한 차이다. 유 기자는 대체 뭘 근거로 이런 주장을 펼치는 걸까.

사실 이 칼럼에서 발견되는 가장 큰 문제점은 균형감각 상실이다. 최소한의 균형감각도 발견할 수가 없다. 이 칼럼을 비평 대상으로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엄밀히 말해 이런 현상은 유 기자 개인 문제가 아니라 이른바 조중동의 공통된 특징이다. 일부 시위대의 폭력에 대해서는 국가 전체가 흔들릴 것 같은 목소리로 지면을 도배질하다시피 하면서, 온갖 규정을 무시한 채 이뤄지고 있는 경찰의 불법 폭력진압에 대해서는 눈을 딱 감고 있다.

경찰의 폭력은 무조건 공권력으로 정당화 될 수 있는가

그래서 유 기자를 위해 '선물'을 하나 마련했다. 유 기자의 균형감각 회복을 위해 필요한 작업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핵심과 주변부, 전체와 부분, 강자와 약자를 판별하는 능력은 사실 기자가 지녀야 할 소질 가운데 중요한 항목이다. 그래서 참고자료를 좀 인용했다.

▲ 한겨레 7월1일자 5면.
"경찰의 장비 규칙을 보면, 방패는 ‘가장자리로 상대의 머리 등 중요 부위를 찍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진압봉은 ‘시위대의 머리·얼굴을 직접 가격할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살수차는 ‘발사 각도를 15도 이상 유지해야 하고, 20m 이내의 근거리에서 시위대를 향하여 직접 살수포를 쏘아서는 안된다’는 점도 명시돼 있다. 그러나 지난(6월) 29일 새벽 유혈 충돌에서 보듯 현장에서 이런 규정은 좀처럼 지켜지지 않는다…

무차별적인 연행도 문제다. 시위 현장에서는 과잉 진압에 항의하거나, 쇠고기 수입반대 문구가 새겨진 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연행되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다. (6월) 29일 밤 시위 때는 ‘전경들의 방패를 만지면 연행하겠다’는 경고방송도 나왔다. 또 현행 경집법은 경찰이 현장에서 시위대에게 신분증을 요구할 때 ‘먼저 자신의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고’(3조 4항), 대답을 요구 받은 시민은 ‘답변을 강요 당하지 않는다’(3조7항)고 못박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검문은 물론 연행까지 마구잡이로 진행한다." (한겨레 7월 1일자 5면 <경찰 불법·폭력 진압 '치명적 위험'> 가운데 인용)

경찰의 이 같은 불법·폭력진압에 대한 유 기자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다. 자료는 또 있다.

"지난 (6월) 13일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가 여의도 문화방송 앞에서 LPG(액화석유가스)통을 차량에 매달고 불을 붙이려 한 사건은 보름이 넘도록 입건된 사람이 없다. 지난(6월) 23일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벌어진 우익단체 회원이 촛불집회 참가자를 각목으로 폭행한 사건도 마찬가지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에 따르면 당시 ‘공영방송 지키기’ 1인 시위를 하던 박모씨(50·여)가 우익단체 회원 수십명에게 각목으로 구타당했지만 가해자는 오리무중이다." (경향신문 7월 1일자 3면 <촛불집회 수사는 눈에 불켜고…우익단체 수사는 늑장·시늉만> 가운데 인용)

고엽제전우회와 우익단체의 이런 폭력에 대한 유 기자의 생각은 어떤가. 정말 궁금하다. 하나만 더 보자.

▲ 경향신문 7월1일자 3면.
고엽제전우회·우익단체·경찰의 폭력에 대해서는 왜 눈을 감나

"경찰은 지난(6월) 24일 서울 세종로 네거리에 바리케이드로 쳐진 전경버스에 불을 지르려 한 연아무개(31)씨와 망치로 전경버스 유리창을 깬 이른바 ‘망치남’ 유아무개(24)씨 등을 구속했다. 경찰은 특히 유씨의 경우에는 지난 8일 채증된 사진을 바탕으로 수사를 벌여 23일 유씨를 붙잡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또 전경들에게 새총을 쏜 20대 남성에 대해서도 채증 사진까지 언론에 공개하며 적극적으로 수사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의 폭력적 진압으로 다친 시민들만 해도 이미 수백명에 이르고, 누가 봐도 명백한 경찰의 폭력 사건도 적지 않지만 제대로 수사에 나서지 않고 있다. 지난달 26일 발생한 시민 조아무개(53)씨의 손가락 절단 사건의 경우 경찰은 사건을 인지하고 실제 조사도 했지만 ‘해당 전경을 찾을 수 없고, 손가락이 이빨로 물어 절단된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한겨레 같은 날짜 5면 <검·경, 촛불 수사 ‘속보이는 이중잣대’ 중에서 인용)

경찰의 이런 이중잣대에 대한 유 기자의 생각은 어떤가. 물론 경찰과 시위대 모두 폭력을 자제해야 한다. 경찰의 폭력도 문제고 시위대의 폭력도 문제다. 하지만 폭력의 양상과 물리력 동원, 장비 등을 놓고 봤을 때 경찰과 시위대의 그것을 동급으로 놓는 것은 무리가 있다.

오늘자(1일) 한겨레에서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가 지적했듯이 "전경들은 장비를 갖춘 훈련된 병력이기 때문에 규정을 조금만 벗어나도 비무장한 시민들한테는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시위대 폭력 역시 문제지만 경찰의 폭력행위에 대해 더 엄격한 기준이 적용될 필요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유 기자 칼럼에는 이런 부분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50여일이 넘게 진행된 촛불집회에서 경찰에게 폭행 당한 수많은 시민은 눈에 보이질 않고, 폭력을 행사한 일부 시위대만 시야에 가득 잡힌다. 이거 좀 곤란하지 않나. 최소한의 균형감각은 칼럼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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