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 전투 경찰의 극한 대치로 맞이한 2008년 6월 29일이 아침은 한국 현대사의 잊지 못할 한 장면으로 기록될 것이다. 역사는 21년의 시차를 두고 엄청난 퇴행적 상실을 경험하고 있다. 이명박은 전두환조차 항복했던 그 6월 29일을 짓이기며 나아가고 있다. 문자 그대로의 불굴(不屈)한 권력이다.

그리고 이날 몇 시간 뒤 정부는 촛불시위가 과격해졌다며 긴급한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21년 전 6.29선언이 발표된 그 즈음의 시간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을 갖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정말 곤란했다. 창피했다. 담화에는 조중동의 최근 며칠 기사가 압축·요약되어 있었다. 결론은, 최루액 사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의 파업을 압살하겠다는 것이다. 적대적 언론을 향한 경고도 잊지 않는 것이었다.

▲ 조선일보 6월 27일자 1면
엄숙한 얼굴이었지만, 더럽고 비열한 속내를 다 감추지는 못했다. 정부는 국민에게 악이 바쳤다. 축제와 같던 집회가 항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을 아느냐고 물었다. 촛불을 들던 이들이 버스를 끌어내는 것이 이해되느냐고 반문한다. 그 모두가 깃발 때문 아니겠느냐고 다그친다. 그들은 폭도란다. 이명박 물러가라는 구호를 증거라며 들이민다. 반체제, 반정부, 반미 폭력 집회에 더 이상 정부도 어쩔 수 없단다.

많이 듣던 소리다. 자주 보던 논리다. 그렇다. 정부의 담화는 철저히 조중동에, 조중동에 의한, 조중동을 위한 담화이다. 말귀를 알아 차렸으니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중동을 위한 다짐이다.

문제를 거슬러 올라가보자. 이미 많이 알려진 바와 같이 정부와 한나라당이 상황 반전에 결정적 자신감을 획득한 계기는 지난 6월 22일자 < 중앙SUNDAY>의 여론조사 결과라고 한다. 2달간의 촛불에 그토록 굼뜨던 정부가 일요일판에 실린 믿거나말거나 여론조사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기민하다.

▲ 6월 22일자 중앙SUNDAY 설문조사 결과
'사과와 반성을 하고 잘하겠다고 약속했으므로 믿고 지켜볼 생각'이란 응답이 60.4%, '촛불 집회 중단 의견'이 58.2%, '재협상 수준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가 51.3% 나온 여론조사였다. 그 여론조사가 정확하게 어떤 맥락으로 해석되는 문항들로 이뤄졌는지, 1024명의 샘플은 어떻게 구성 되었는지 따위는 일단 따지지 않고 덮어두겠다. 분명한 것은 중앙일보의 메시지였다. 도와줄테니 자신감을 가지라는 강권이었다. 중앙일보의 격려에 고취 도무된 정부는 이틀 후(6월 24일) 촛불에 대한 강경 대응 방침을 천명했고, 사흘 후(6월 25일) 장관 고시를 강행했다.

그 여론조사 이후, 닷새간 조중동은 맹폭을 퍼부었다. 비축해뒀던 모든 화력을 집중했다. 집중 타격 대상은 MBC < PD수첩>,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안티 조중동 운동이었다. 조중동을 엄호하는 정부의 움직임도 현란했다. < PD수첩>에 대한 전담 수사반이 꾸려졌고(검찰),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집행부 전원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됐다.(경찰) 유인촌 문화부 장관은 조선일보를 지켜주지 못한 것을 사과했고, 조중동 불매 게시물에 대한 심의 검열 압박(방송통신위원회)이 본격화됐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촛불은 사그러들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더욱 악취나는 쓰레기에 파묻혔고, 동아일보 사기가 펄럭이던 게양대에는 100리터 짜리 쓰레기가 걸렸다. 드디어 6월 27일, 이성을 잃은 조선 동아일보가 작심하고 청와대에 직접적으로 따져 물었다. 강한 질책이었다. 정권이 청와대만 지킨다면 퇴진 운동도 불사 하겠다는 겁박이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지난 6월 27일자 1면 머리기사에 청와대가 얼마나 놀랐는가는 그날 저녁 집회에 바로 드러났다. 이순신 동상 앞이던 전선이 500미터 이상 당겨져 조선일보 앞으로 내려왔다. 대한민국 1,2,3등 신문사가 드나듦이 불가능 하도록 전경 버스가 막아섰다.

경찰이 두 달이 넘도록 이순신 동상 밑에 웅크리고 있던 데는 까닭이 있다. 이 집회를 가장 잘 아는 이들은 시민들이고, 두 번째로 잘 아는 이들이 바로 현장 경찰들이다. 6월 1일 이후 경찰은 아슬아슬하나마 시민들과 일정 정도 경계를 유지해왔다. 이는 6월 내내 이어진 집회가 원천 봉쇄하고 강경 진압하며 해결할 수 있는 흐름이 아니라는 것을 경찰도 알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집회란 것이 현장에 없으면 도저히 판단 할 수 없는 '직관'의 세계이고, 그 최소한의 '직관'을 학습해온 경찰은 갖은 비판과 조롱에도 불구하고 이순신 동상 밑을, 청와대만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 '직관'의 수준을 보편적 상식의 수준까지 느리나마 꾸준하게 향상시켜 온 것이 지난 87년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흐름이었다. 이 흐름을 민주주의 역사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20일 이후 조중동이 선동하여 청와대에 해체할 것을 주문했던 무엇은 결국, 이 느리나마 꾸준했던 민주주의이다.

조중동이란 함량 미달의 하수구들은 너무 급격하게 몰아친 두 달여간의 물살을 받아내지 못하고 끝끝내 역류해버렸다. 그걸 어청수 경찰청장이, 임채진 검찰총장이, 김경한 법무부 장관이 그리고 청와대가 넙죽 마셔버렸다. 지금, 조중동은 기사를 빙자하여, 독극물을 뿜고 있는 하수구다.

그리고 지난 6월 27일 이후 현재까지의 국면은 가히 조중동을 위한 정권의 분풀이 정국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떤 이즘이나 체제를 불문하고 국민을 대상으로 분풀이에 나선 정부가 있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사회의 공기라고 일컬어지는 언론이 그것도 1,2,3등을 휩쓰는 신문들이 국민을 향한 분풀이를 선동하는 체제를 알지 못한다. 길고 지루한 장마라고 했다. 2008년 장마는 아마 92년 장마가 되려나 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