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 뉴스데스크가 뉴스타파의 특종을 보도했다. 이 과정에서 최승호 PD를 뉴스타파 PD라고 소개했다. (MBC 뉴스데스크)

비영리 독립 언론 <뉴스타파>가 '조세피난처 프로젝트' 결과물들을 공개할 때, 많은 사람들은 MBC가 해고된 최승호 PD를 어떻게 화면에 담아낼 것인지 궁금해 했다.

SBS와 KBS, 타 방송사에서 보도하는 데 혼자만 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 MBC는 조세피난처 관련 내용을 소개하면서 최 PD를 '뉴스타파 PD'라고 밝혔다. 틀린 말은 아니나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MBC PD'였다. 인생은 새옹지마라는 말처럼, 최 PD를 시사교양국에서 쫒아내며 그의 입에 재갈을 물렸던 MBC가 외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 하나하나에 주목하는 모순적 상황이 MBC <뉴스데스크>를 통해 연출됐다.

"ICIJ와의 공조, MBC는 어떠한 노력도 없어"

<미디어스>는 13일 '해고 1년' 기획으로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에서 최 PD와 인터뷰를 가졌다. 최 PD는 박성제 전 언론노조 MBC본부장과 지난해 6월 18일 MBC로부터 해고됐다.

최 PD가 합류한 뉴스타파는 호랑이에 날개를 단 것처럼 한국 언론판을 뒤흔들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조세피난처 프로젝트'이다. 한국 탐사보도사(史)에 큰 획을 그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도 보도하지 않을 수 없는 특종이었다. MBC가 취재하러 왔을 때의 느낌을 물었다.

"과연 뉴스타파가 보도하는 걸 공중파에서 방영할까, 끝까지 긴가민가했다. 이 전에 보도했던 국정원 보도에 대해서는 공중파에서 무관심으로 일관해서 걱정을 많이 했었다. 그러나 '조세피난처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은 남달랐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뉴스타파는 이제 일시적 매체가 아니다. 조세피난처 보도를 통해 국민들 마음 속에 매체로서 자리잡게 된 것 같다.

사람들이 내 얼굴이 MBC에 나오니까 굉장히 신기하게 생각하더라. 나도 내 얼굴을 쏙 빼고 보도할 것 같았는데, 인터뷰도 내보내고.. MBC에 최소한의 양심은 남아 있다고 봐야 할까? 몸이 불편해 요양병원에 계신 아버지가 많이 좋아하셨다. 아버지는 내가 해고됐다는 사실을 아신다. 그런데 TV에 아들이 나오니 복직이 된 줄 알고 착각하셨다.(웃음)"

▲ 최승호 PD. 그의 MBC 복귀는 언제쯤 이루어질까? (언론노조 MBC본부 노보 175호)

취재 과정에서의 비화는 없었을까? 최 PD는 뉴스타파 기자회견 이후 많은 언론사들이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접촉하기 위해 물밑 작업을 펼쳤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러나, 타 사 언론이 치열하게 보도 전쟁을 치르는 와중에도 공영방송 MBC는 침묵을 지켰다고 한다.

"KBS와 같은 국내 언론들이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접촉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한 방송사 차원이 아니라 각 프로그램의 팀별로 노력을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막강한 인적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MBC는 접촉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특종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충분함에도 말이다.

후배들 중에서는 관심이 있던 친구들도, 심층취재를 하고자 했던 친구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발제를 하더라도 어차피 간부와 경영진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실을 알기에 일선 기자, PD들이 자체 검열을 했을 것이다. 그만큼 MBC는 많이 망가졌다."

연이은 특종과 취재로 '공영방송보다 낫다' '한국의 프로퍼블리카(Propublica)'라는 평을 듣고 있는 뉴스타파이지만, 매체의 영향력에서는 대형 방송사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최 PD는 이 지점이 아쉽다고 밝혔다. 지상파에 비교했을 때, 뉴스타파는 뉴스 접근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달리 말하면 공영방송은 최소 시청률이 보장되는 여건과 환경이 갖추어졌음에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 뉴스타파의 꽁무니만 쫓고 있는 것이다. 최 PD에게 MBC와 뉴스타파의 차이를 물었다.

"MBC에는 보호막이 있다. 소송 같은 게 불거져도 PD들은 겁을 내지 않았다. 그러나 뉴스타파에는 이런 보호막이 없다. MBC는 스탭들도 많고 이들의 역할이 분담이 돼 도움을 참 많이 받았다. 뉴스타파에서는 내가 운전을 하기도 하고 지하철로 가서 취재하기도 한다.(웃음) 그럼에도 내 생각을 검열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PD수첩 당시 '검사와 스폰서' 편을 성공했기 때문에, '수심 6미터의 비밀'을 다뤄보겠다는 말을 겨우 꺼낼 수 있었다. 그만큼 MBC에서는 조직이 체계적인 만큼 조심스러웠다. 자유로움이 덜 했다.

(시청자 수요 측면에서) 뉴스타파가 트위터 공간에서는 참 뜨겁지만, MBC와 비교해 보면 보는 사람들이 적은 것이 사실이다. 조세피난처 프로젝트 편이야 공영방송에서 보도할 정도로 뜨거웠지만 그 전까지는 좋은 뉴스를 만들더라도 사람들이 보지 않았다. 그만큼 공영방송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MBC를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 비영리 독립 언론 <뉴스타파>가 지난달 22일 '조세피난처 프로젝트' 기자회견을 했을 당시의 취재 열기. (뉴스1)

"김종국 사장, '공영방송' 희롱 말아야"

최승호 PD는 1986년 MBC에 입사했다. 이후 그가 MBC에 남긴 발자취는 뚜렷하다. 최 PD는 2005년 '황우석 박사의 논문조작 의혹' 편의 책임 PD였다. 2009년 <PD수첩>의 일선 PD로 복귀한 뒤 그가 연출한 프로그램은 '4대강과 민생예산' '검사와 스폰서' '공정사회와 낙하산' '한 해군장교의 양심선언' 등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들이다. 그는 '올해의 PD상'에 2번이나 선정된 유일한 PD이기도 하다. 그랬던 그가 MBC에서 쫓겨났다.

"현재 PD수첩은 아예 쳐다보질 않는다. 이따금 PD수첩과 관련한 뉴스가 올라올 때 소식을 듣는다. 카톡에서 다른 PD들이 '이번 주 피디수첩 괜찮던데'라고 하면 찾아서 보는 정도다. 그때마다 후배들이 참 열심히 하는구나 생각하지만 예전과 같은 의지나 날카로움은 느껴지지 않는다. 꽉 막혀있는 곳에서 조심스럽게 몸가짐을 하다보니 그런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조금이라도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위에서 막아버리는 상황이 참 안타깝다. 조세피난처 자료를 제공한다고 해도 지금의 MBC는 제대로 보도하지 못할 것이다. 위에서 이 기업 빼라, 저 기업 빼라, 할 텐데 제대로 보도하겠나?"

최 PD는 오는 18일이 '해고 1년'이 되는 날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지난 시간들이 너무 빠르게 지나갔다"고 밝혔다. 그는 대선 전까지는 해고됐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했다. 대선이 끝난 후에야 진짜 해고자가 됐다고 느꼈단다.

"1년을 의식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스스로 '해고자'라고 생각지 않았다. 대선 이후에야 '아! 내가 해고자가 됐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갔다. 내 경우 '뉴스타파'를 통해 계속적으로 PD 역할을 하고 있어서 더욱 그런 것 같다.

그러나 지난 1년 동안 가장 힘들었을 때는 대선 직후였다. 엄청나게 많은 이들이 MBC 정상화를 약속했다. 그러나 그 약속들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나중에는 방문진 여당 이사들마저 약속을 안 지키더라. 김재철 해임에 동의했던 이사들이 김종국 사장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담함을 느꼈다. 끝까지 우리사회의 상식을 믿었고, MBC가 제대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허무함과 허탈감이었다."

최 PD와 인터뷰를 하다보니 김종국 MBC 사장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 사장은 지난 5월 취임사에서 "공정방송은 직을 걸고 실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최 PD는 김 사장에게 뼈 있는 말을 던졌다.

"김종국 사장이 '공정방송'이라는 단어를 희롱하기 전에 그 뜻이 지닌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셨으면 좋겠다. 공정방송은 단순한 기계적 중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 기득권 구조 속에서 막강한 힘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들을 견제하고 비판해야 한다는 의미다. 김 사장이 말하는 '공정방송'은 도대체 무엇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 김종국 MBC 사장 (뉴스1)

"후배들에는 미안한 감정…동기 이진숙 기자는 행복할까?"

현재 최승호 PD를 비롯한 해고자들은 MBC를 상대로 해고 무효 확인 소송을 진행 중이다. 최 PD는 부당한 해고에 맞서 법적인 절차를 통해 당당히 MBC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을 누차 밝혀왔다. 그러나 복직을 한다고 해도 PD로서 프로그램을 계속 제작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최 PD도 복직과 관련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복직이 된 뒤 고민해도 될 듯하다.(웃음) 그러나 내가 원하는 일을 계속 할 수 있는지 여부는 중요할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사유로 해고가 됐기 때문에 반드시 복직돼야 한다. 김재철 사장의 만행이 또 다시 반복돼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김종국 사장 밑에서 드라미아를 간다든지, 인생을 낭비하게 된다면 고민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난 인생을 충분히 낭비했다. 2011년 초 PD수첩에서 쫓겨난 후, 2년 동안 아무것도 못했다. 그런 낭비를 또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면 참 많은 고민을 할 것 같다. 나 혼자 판단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고."

최 PD와 동기인 이진숙 기자는 워싱턴 지사장으로 영전했다. 이 지사장은 '김재철 전 사장의 입'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최측근 인사로 분류돼 왔다. 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이 지사장은 승진했다. 이 기자의 대척점에는 최 PD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마지막으로 승승장구하는 동기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나를 징계할 당시 인사위에 조규승씨와 이진숙씨도 앉아있었다. 이들 모두 다 동기다. 우리 동기들이 나를 해고하는데 일조하는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 그렇게 사는 게 행복한 것인지 묻고 싶다. 시간이 지나서 자신을 반추해 보면 당시의 기억은 아름답고 행복하게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난 그렇게 승승장구하지는 못했지만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대로의 모습이 나름대로 행복하기 때문이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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