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미사에 참석했다. 내가 살고 있는 구로1동 성당이 아니라 서울 시청광장에서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대표신부 전종훈·아래 사제단)이 마련한 이날 미사는 엄숙하게 시작됐지만 시간이 갈수록 경쾌한 분위기로 이어졌다.

미사 중 터져나온 박수…촛불 흔들며 봉헌성가

사제단은 30일 오후 7시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시국미사에서 제일 먼저 보수언론의 폐해부터 지적했다.

▲ 30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시국미사에서 촛불을 든 신부님들. ⓒ정은경
미사를 집전한 전종훈 신부님은 '대통령의 힘과 교만을 탄식함'이라는 제목의 강론에서 "참여정부 시절 광우병 위험에 대해 무섭게 따져들던 언론이 지금은 절대 안전을 강변하고 있다"며 "조중동의 후안무치에 경악한다"고 말했다.

신부님이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값싸고 질좋은 쇠고기가 아니라 드높은 자존감을 지키는 것"이라며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 없다"고 말할 때에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일부 신도들이 "박수 치지 마세요"라고 조심스럽게 말하기도 했지만 신부님은 오히려 "이왕에 칠 거면 더 크게 치라"며 시민들을 격려했다. 미사 중에 박수가 나오기는 나로선 처음이었다.

"대통령은 사죄의 뜻으로 장관고시를 폐하고 전면재협상을 선언하라"는 말씀에서, "일부 언론은 친미-반미, 진보-보수로 몰아가며 핵심을 왜곡하지 말라"는 말씀에서 박수는 계속 터져 나왔다. "과잉 폭력진압을 지시한 어청수를 해임하라"는 말씀에서는 더 큰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 천주교 신도를 비롯한 7만 시민들이 서울 시청광장을 가득 메웠다. ⓒ정은경
보편지향기도를 마친 뒤 봉헌성가는 '헌법 제1조'. 의외의 제안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혹시나 어려운 성가라도 나오면 어떡하나 생각했던 건 기우였다. 사람들은 손팻말과 촛불을 양손에 들고 성가를 함께 불렀다. 오른팔이 아프면 왼팔로 바꿔들어 촛불이 수그러들지 않도록 했다.

다음은 영성체송. 저 많은 사람들에게 성체를 어떻게 다 나눠줄지, 이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면 어디까지 이어질지 지레 걱정하고 있었더니 신부님들이 신도들을 찾아가신단다. 역시 사제단 짱! 신도들은 광장 곳곳에서 두 손을 모으고 사제단을 기다렸다.

▲ 신부님이 신도들에게 성체를 나눠주고 있다. ⓒ정은경
나도 1년 만에 성체도 모셨다. 사람이 너무 많아 내게는 기회가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마음으로만 받자 생각했는데 눈 밝은 신부님께서 성체를 건내셨다.

영성체송은 '광야에서'와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불렀다. 촛불집회를 취재하면서도 기자로서 냉정을 잃지 않으려 애써왔는데 이날 미사에서 만큼은 본분을 망각하고 눈시울이 불거졌다. 시민으로서, 신도로서, 그리고 기자로서 처음으로 노래도 따라 불렀다.

"사랑으로 대통령을 깨우쳐 드립시다"…비폭력 평화집회 호소

이날 사제단의 제안으로 시민들은 대통령에게 사랑을 '고백'하기도 했다. "사랑의 힘으로 깨우쳐 드리자"는 뜻에서다. 시민들은 내키지는 않지만 억지로 억지로 기도를 바쳤다.

미사가 끝난 뒤 사제단과 시민들은 북쪽 청와대 방향이 아닌 남쪽 남대문 방향으로 행진했다. 더 이상 대통령을 찾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제 경찰은 더 이상 청와대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지키지 않아도 되겠다. 사제단은 "촛불을 지키는 힘은 비폭력"이라며 "오늘 밤에는 부디 평화의 원칙을 지켜달라"고 시민들에게 호소했다.

▲ ⓒ정은경
사제단은 이날부터 시청광장에 천막을 치고 단식 기도에 들어갈 예정이다. 매일 저녁 7시에는 미사가 계속된다. 이명박 대통령 덕분에 앞으로 자주 미사를 봉헌할 수 있게 됐다.

아 참, 손에 든 카메라와 수첩 때문에 성체를 한 손으로 받고 인사도 하지 못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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