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제 전 언론노조 MBC본부장은 최승호 전 MBC PD와 함께 지난해 6월 18일 해고됐다. 1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현재 그는 '스피커 제작 장인'으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그가 만드는 스피커 이름은 '쿠르베(Courbe)'. <미디어스>는 해고 1년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11일 서울 양재동에 위치한 쿠르베 청음실을 방문했다.

박성제, 그가 '스피커 장인'(?)으로 변신한 이유

청음실에 들어서자마자 들려오는 음악은 조용필의 '바운스'였다. 웅장한 사운드가 가져다 주는 공기가 귓구멍에 가득찼다 이내 빠지는 것 같았다. 사운드의 진동은 가슴까지 이어졌다. 원목에서 나는 향기가 공방에 물씬 풍겼다. 고급스러운 스피커 쿠르베도 인상적이었다. 박 전 본부장은 웃으며, "보는 것과 달리 잘 먹고 잘 살지 않는다. 손수 만드는 스피커이기 때문에 큰 수익을 볼 수 있는 건 아니다"라며 "다만 이 일은 해고자 생활을 버티는 힘"이라고 전했다.

▲ 박성제 전 본부장이 기증한 스피커 1호 (쿠르베 홈페이지)

올 초 박성제 전 본부장이 뉴스타파에 자신의 스피커를 기증해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는 "내가 작년 말에 완성한 작품이다. 대선 때 멘붕을 겪으면서 만든 건데 애착이 많이 가는 녀석"이라며 "돈도 좀 들어갔고 연구를 많이 해서 만든 것이다. 최승호 선배에게 '같이 하지는 못하지만 이게 제 마음입니다'라는 말을 전하면서 기증했다"고 밝혔다. 언론인으로서 고생하는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때문이었다.

쿠르베의 우수성을 침이 마르도록 설명하는 그의 모습에서 순수함과 열정이 느껴졌다. 그러나, 한국 언론이 직면한 작금의 현실을 이야기하자 그의 눈은 날카로워졌다. 자리에 제대로 앉고서야 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됐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공정방송 사수를 주창한 언론인들에게는 '엄동설한'의 시기이다. 지난 10일에는 노종면 전 언론노조 YTN지부장을 비롯한 YTN 해직기자 5명이 '공정방송을 위한 국토 순례'를 떠났다. 같은 해직기자의 입장에서 박 전 본부장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YTN 친구들이 대장정을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많이 아팠다. 그들의 무거워 보이는 뒷모습이 우리의 미래인 것만 같아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우리 MBC 해직기자들도 같이 참여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해고 1년 동안을 뭐라고 규정할 수는 없으나, 참 정신없는 일들이 많았다. 대선이 있었고, MBC 사장이 교체됐다. 반복적으로 기대와 실망이 교차하는 시기였다. 정신도 없었다. 우왕좌왕하며 술 먹고 울분과 분노를 토하는 시기랄까?(웃음) 그러나 지금부터는 장기전을 대비해서 씩씩하게 좌절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취미생활이었고 그것을 일거리로 확장시킨 상황이다."

▲ 박성제 전 본부장이 직접 원목을 다듬고 있다. ⓒ미디어스

MBC 후배들에 대한 부탁과 당부

박 전 본부장은 어린 시절부터 오디오 스피커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막귀'를 가진 기자로서 그의 민감한 청력과 예술적 기질이 부러웠다. 언론판에서 명망 높은 박 전 본부장에 러브콜 하는 언론사나 기업체들도 많았을 텐데, 굳이 '스피커 장인' '스피커 사장님'이 된 이유가 궁금했다.

"오라는 곳이 있다고 덥석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잖나? YTN이나 MBC 해고자들이 가지는 상징성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주어진 상황을 떠나 MBC로 돌아가는 게 급선무다. MBC로 돌아가고 싶다는 게 내 마음이다. 같은 해고자인 박성호 전 기자회장과 이야기한 적이 있다. 성호에게 '개와 걸도 괜찮은데 네 인생이나 내 인생이 모 아니면 도가 됐다'고 말했다. 굴하지 않고 MBC로 돌아갈 것이다.

화를 목공으로 다스렸다.(웃음) 해고된 뒤, 지난해 9월부터 목공예를 시작했고 11월부터 스피커를 만들기 시작했다. 올 초 동호회 친구의 도움을 받아 본격적인 스피커 제작을 시작했다. '세상에 없는 스피커, 내가 평생 쓸 진짜 멋있는 스피커'를 만들고 싶었다. 스피커의 디자인 기획과 공예 작업을 혼자서 1달 만에 완성했다. 동호회에서 완성된 스피커를 발표했는데, 그 자리에 있던 50명 중 2명이나 계약을 했다. 그때 상품화해도 '되겠구나'하고 확신을 가졌다. 해직된 기간 동안 대박은 나지 않더라도 버틸 힘을 될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런 과정에서 사업자 등록을 하게 됐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거칠 것 없이 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의 자신감 있는 목소리가 유난히 듣기 좋았다. 그러나 그는 MBC 기자다. 현재 MBC의 무거운 상황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MBC 구성원들의 자조적인 목소리를 그에게 전하려고 하자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이 바뀐다.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이다.

"후배들, MBC 구성원들의 자조적인 목소리를 자주 듣는다. 어떤 후배는 나에게 '선배가 하는 사업 망했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내가 돌아오지 않아 두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야 인마. 그렇다고 망하면 되겠냐'고 웃으며 말했다. 후배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대박날 사업은 아니다.(웃음) 이건 그냥 내가 버티는 힘일 뿐이지.

얼마나 후배들이 회사 상황에 침체돼 있고 의욕이 없으면 그런 이야기를 할까, 참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더더욱 재판으로, 법원의 판결에 따라 당당하게 돌아가고 싶다. 노조에게도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 다만, 말씀드리고 싶은 건 후배들이 해고자들을 잊지 않아 줬으면 좋겠다. 때 되면 제사라도 올려주고.(웃음) 우리도 회사를 늘 생각하고 있으니까 후배들도 우리를 잊지 않고 배려해주면 충분히 버틸 수 있다."

MBC의 한 지인은 "일할 맛 나지 않는다"는 말을 기자에게 한다. 제작 자율성이 경영진들에게 침해 받는 상황 속에서 눈치를 보며 제작을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지난해 장기 파업의 후유증도 크다고 한다. 총체적인 난국에 빠져 있던 MBC는 최근 시청률에서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보도와 제작에서는 여전히 헤매고 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에서 후배들이 현 MBC 상황을 이야기하며 자포자기식, 자조적인 멘트를 곧잘 던지곤 한다. 그런 느낌의 멘트를 볼 때 너무 마음이 안타까웠다.(긴 침묵) 섣부르게 희망을 이야기해서는 안 되지만... 예전에도 김재철 사장 만큼은 아니더라도 만만찮은 간부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다들 참 열심히 했다.

바라는 건 '노조 뭐하고 있는 거냐?' 이렇게 말하기 전에 자기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주어진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제작하는 프로그램, 뉴스를 결코 포기하지 말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잘못된 지시나 부당한 어떤 것에는 목소리를 적극 내야 한다"

▲ '쿠르베' 앞에서 음악감상하고 있는 박성제 전 본부장의 모습. ⓒ미디어스

김재철 전 사장은 <신동아> 5월 호 인터뷰에서 "박성제 위원장이 굉장히 강력한 위원장이었다. 이근행 위원장 체제라고 하지만 사실상 박성제 전 위원장이 모든 걸 하고 있었고 (그래서) 처음에 날 반대했다" "이제 정치 노조는 끝나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며 언론노조 MBC본부와 박성제 전 본부장을 비판했다. 이에 박 전 본부장은 <신동아> 6월 호에 반박 인터뷰를 했다.

"그 인터뷰를 통해 내가 왜 해고됐는지 알게 됐다. 사실 내가 배후에서 노조를 조종했다고 말한 것 때문에 반박 인터뷰를 했던 것은 아니었다. 노조의 투쟁과 존재 이유를 정치적으로 매도하는 것에 화가 많이 났다. 그래서 최승호, 정영하 등 몇 분을 만나고 반박 인터뷰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공유했다. 거명된 내가 하는 게 제일 맞는 것 같았다.

인터뷰에서 강조했던 점은 MBC 사장이 진보냐, 보수냐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다는 것이었다. 보수 정권에서 보수적인 사장이 올 수도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또, 제대로 된 진보 사장이 없었다는 이야기도 했다. 정치적 성향과 상관없이 언론사 수장으로서의 자기 역할만 제대로 하면 된다는 게 우리들의 생각이다. '신동아'에서 제목을 멋있게 뽑았더라. '보수 사장도 괜찮다 공정보도만 한다면'. 나와 MBC 노조가 명예를 회복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반론은 된 셈이다."

김종국 사장에 대한 고언

우여곡절 끝에 김재철 전 사장은 불명예스럽게 MBC를 떠났다. 새롭게 사장이 된 김종국 사장은 지난 한 달동안 인사를 통해 김재철 전 사장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는 그가 '김재철 시즌2'라는 비판을 줄기차게 받은 이유이기도 했다.

"김 사장이 선임됐을 때 실망했다. 주변에서는 김재철 사장과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했던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방문진의 6대 3 구도 하에서는 김종국 사장이 아닌 다른 누구에게도 큰 기대를 할 수 없을 뿐더러, 김 사장에게 노사 관계 회복과 인력 정상화를 기대하는 건 어려운 일이기에. 경쟁력 회복은 인사를 잘해야 가능한 것인데, 김 사장이 상처를 받은 구성원들을 제대로 끌어안을 수 있을 거라 생각진 않는다."

▲ MBC의 과거와 현재. 김재철 전 MBC 사장(왼쪽)과 김종국 현 MBC 사장 (뉴스1)

박성제 전 본부장이 언론노조 MBC본부를 이끌 당시 김종국 사장은 '엄기영 사장 체제'에서 기획조정실장이었다. 그만큼 박 전 본부장과 김 사장은 노사 관계자로서 계속적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이는 박 전 본부장 만큼 김 사장을 잘 아는 이도 없다는 이야기일 터. 마지막으로, 김 사장에게 하고픈 말을 물었다.

"김 사장이 내년 봄에 임기 3년의 새 사장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이 하지 마셔야 한다는 걸 아셨으면 좋겠다. 넓게 바라보면서 경영을 하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김재철 전 사장 반대로 하시라는 말이 아니다. 조금 더 멀리 보시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으셔야 한다. 방문진 이사들만 바라보지 마시고, 본인에게 기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경영을 하셨으면 좋겠다.

그 정도의 뚝심을 가지고 있는 분이라는 건 알고 있다. 자꾸만 구도 핑계를 대고 뒤에 숨는데, 구도라는 게 그렇게 견고하지는 않다. 정치권 상황과 권력가진 사람들의 특성을 고려 했을 때, 어떤 상황이 올지는 모른다. 권력자들은 언제든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코 푼 휴지처럼 버리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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