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온라인 취업 포털 커리어가 직장인 1,10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5.5%가 근무시간 중에 술을 마신 적이 있다고 답했다. 절반에 가까운 직장인들이 낮술에 취해 근무를 해본 경험이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결과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점심식사에 곁들인 반주 문화가 특별한 문제의식 없이 용인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 같은 낮술이 잘못된 일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업무 중에 낮술을 먹어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술을 먹고 나면 실수를 하거나 업무 능률이 떨어질 것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먹는 것이기 때문이다.

▲ ⓒ민중의소리
지난 5월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청 관할 주민센터의 한 동장이 근무 중에 술을 마시고 통장회의를 주재해 빈축을 산 일이(뉴시스 5월7일 보도) 있었다. 당시 고양시청 홈페이지에는 "민원인을 언제 어떻게 만날지 알 수 없는 대낮 업무시간에 어떻게 술을 마실 수 있느냐"고 강하게 질타했다. 논란이 일자 해당 동장은 "관할 지역의 아파트 노인회 대표들과 점심을 같이 하면서 권유하는 술을 뿌리칠 수 없어 소주 2~3잔을 먹었다"고 해명했다. 결국 고양시는 5월 21일 해당 공무원을 문책하는 주의조치를 내렸다. 고양시가 내린 주의조치는 징계 가운데 가장 낮은 단계의 징계처분으로 근무 중 술을 마신 상태에서 업무를 수행했다는 사실을 너무 간과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각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이보다 앞선 지난 2월에는 MBC 스포츠뉴스를 진행하던 한 아나운서는 점심식사 시간에 반주로 마신 술 때문에 결국 방송 사고를 내고 시청자들의 비난을 산 적이 있다. 당시 MBC 홈페이지 게시판에 한 네티즌은 "술 취한 사람이 진행하는 뉴스를 어떻게 신뢰 하겠느냐"며 이 아나운서의 행동을 비난했다. 많은 언론들은 시청자들의 비난을 소개하며 이 아나운서의 음주방송에 대한 비난 기사를 쏟아냈다. 결국 이 아나운서는 1개월 감봉이라는 중징계와 함께 스포츠뉴스 진행에서 손을 떼야했다. 절반에 가까운 직장인들이 특별한 문제의식 없이 접했던 낮술이 신뢰를 생명으로 해야 할 방송을 진행자라는 공인에게는 치명적인 실수로 귀결된 것이다. 시청자들의 지적은 분명 틀리지 않다. 시사가 아닌 스포츠뉴스라 해도 불특정 다수가 시청하는 방송에서 술기운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프로그램 진행을 했다면 당연히 비난받아 마땅하다. 때문에 많은 언론들도 이러한 점에 비춰 이 아나운서의 행동을 보도했다.

이 아나운서에게는 가혹하리만큼 냉혹했던 언론들이 스포츠뉴스를 진행하는 방송인보다도 훨씬 더 높은 신뢰도를 요구받아 마땅할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에게는 너무나도 너그럽게 대한 일이 있었다. 그것도 촛불민심을 저버린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장관 고시 관보게재가 강행됐던 지난 26일에 있었다. 특히 고시의 관보게재가 강행됐던 이날 오전에 이명박 대통령이 쇠고기 고시 관련 긴급 관계 장관회의를 주재했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오간 내용을 전 국민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시기였다. 이러한 중대한 시국에 관계 장관회의 내용에 대한 브리핑을 하기 위해 이날 오후 2시 20분에 기자들 앞에선 이동관 대변인은 낮술을 마셨다고 먼저 얘기했다고 한다. 취기가 남아있던 이동관 대변인은 결국 준비된 원고를 읽고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이러한 얘기는 미디어 비평지 <미디어오늘>만이 유일하게 보도했다.

▲ 6월26일 미디어오늘 온라인판.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다. 과연 스포츠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의 신뢰보다도 전 국민을 상대로 한 청와대의 대변인의 신뢰도는 낮아도 되는 것인지를 말이다. 이 물음에 어느 누구도 주저 없이 아나운서보다도 청와대 대변인의 신뢰도가 더욱 중요하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것도 촛불집회가 50일 넘게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수입위생조건이 관보에 게재된 날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런데 스포츠뉴스를 진행하던 아나운서에게는 신뢰도 운운하며 가혹하리만치 냉혹한 비난을 퍼 부었던 언론들이 청와대 대변인의 관보게재가 강행됐던 당일 있었던 음주 브리핑에는 왜 그리 너그러웠는지…….

아이러니하게도 이날 이동관 대변인은 음주 브리핑에서 "오늘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공영 방송이 의도적 편파 왜곡 보도로 국민을 혼란시켰다면 심각한 일이라는 우려 표명이 있었다"면서 MBC <PD수첩>을 비난했다. 혹시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를 나무라는 꼴이 아닌지 청와대 스스로가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최소한 MBC는 음주방송으로 물의를 일으킨 아나운서에 대해 중징계 처분을 내렸고, 고양시의 경우도 가볍다는 지적이 있기는 했지만 해당 공무원에 대해 주의조치를 내렸다. 그러나 낮술을 마시고 통장도 아니고 시청자도 아닌 전 국민의 앞에 섰던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문책을 받기는커녕 여전히 촛불을 든 시민들을 향해 엄포를 놓고 있다. 많은 국민들은 낮술에 취한 청와대를 보고 국민을 섬기겠다던 이명박 정부가 혹시라도 양의 머리를 걸어 놓고 개고기를 판다는 뜻의 양두구육(羊頭拘肉)은 아닌지 묻고 싶을 것이다.

경향신문 미디어전략연구소에서 미디어를 다루고 있는 나는 네티즌이다. 매일 사이버 공간에 접속해 소통하고 있다, 고로 존재한다는 생각으로 미디어에 연결된 삶을 살고 있다. PC와 휴대전화, MP3 등을 통해 수많은 네티즌들과 소통하는 것이 좋다. 앞으로 우리가 접속해 소통하고 있는 온라인 공간에서 일어나고 있는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미디어스 공간에 풀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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