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길다. 하루가...
그 동안 촛불의 긴 행렬에 감동하고 또 감탄하기를 몇 번...
하지만 오늘처럼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을 맞대면하기는 흔치 않았다...

아예 작심하고 시민을 폭도로 간주하고 때리고 찍어대는 경찰의 긴 방망이와 시커먼 방패는 결코 주저함이 없다...그 전에는 때리고 찍어대는 경찰을 스스로 저지하는 경찰도 있더니 이번에는 더 강하게 독려하는 듯 하다...

▲ 29일 경찰의 과잉진압에 부상당한 시민ⓒ미디어스

밀리고 또 밀리고...
경찰차를 끌어냈더니 오히려 그 틈을 통해서 물 밀듯이 몰려 나오는 경찰들...그들을 보면서 '봇물이 터진다'는 표현을 실감한다...

경찰 뒤로 갇혀 있던 야수들이 그들의 차를 시민들이 끌어내자 굶주린 이리때들마냥 시민들을 포획한다...피를 흘리는 시민을 부둥켜 안고 의료진을 부르는 시민을 향해 내리 찍는 방패...그 방패는 전두환 군사정권에 맞서 화염병을 날리고 돌을 던지며 저항하던 바로 그 시절 흔히 볼 수 있었던 광경인데...그 광경을 2008년 6월의 종로거리에서 다시 본다...

저항정신보다...분노보다...
스스로 직업운동가라고 자부하고 있는 내게 먼저 다가온 느낌은 '공포'였다...

또 얻어맞으면서 저들에게 본 때를 보여줘야지하는 정의감보다는 얻어맞지 않기 위해서 뒤로 물러나는 나의 본능...오늘 느끼는 자괴감이 어느 때보다 크다...

밀리고 밀려 '르메이에르' 앞 마당까지 밀려 왔다...시민들이 인도에 서서 경찰들의 전진을 막아섰다...인`도`에`서`내`려`가`라...인`도`에`서`내`려`가`라`...를 외치는 시민들을 향해 경찰은 막무가내다...

밀리지 않고 계속 인도에서내려가라는 시민들의 구호를 무시하며 인도를 점거한 경찰들이 갑자기 와 하는 함성과 함께 가장 앞에서 인도에서 내려가라며 선창하는 시민 2명을 덮친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봤던 '코브라'가 순식간에 먹잇감을 삼킨 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바로 그 장면.

순식간에 시민 2명을 그들의 대오 속으로 끌고 들어가자 옆의 경찰들이 앞을 막아서버린다...방배로 찍고 주먹을 때리고 발로 차며 눈 깜짝할 사이에 그 장면을 인의 장막으로 덮어버리는 그들. 그들의 모양은 바로 코브라의 그것과 같았다...

▲ 29일 경찰은 인도에서도 시위대 해산에 나섰다ⓒ미디어스
바로 1미터 앞에서 벌어진 그 광경을 보면서도 마음만 그 시민 두 사람의 옷자락을 잡고 경찰을 향해서 주먹을 날린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무섭다...맞기 싫다...그 생각이 더 강했던 것이다. 끌려 들어간 저 2명의 이름모를 시민들을 구하겠다는 마음보다...끌려 들어가며 무수한 구타를 당하는 저 시민이 내가 아님에 오히려 안도했던 모양이다.

계속해서 밀고 온다...저들과 대치한 첫번째 줄에는 서고 싶지 않다...후배들도 주변에 서서 제1선을 지키고 있는데...마냥 뒷 줄에 설 수는 없고...제 3선 쯤에서...저들이 치고 들어오면 언제든지 더 뒤로 튈 수 있는 공간을 봐 두고 선다....하지만 힘이 든다...아니 너무 무섭다...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하지만 건물 안으로 숨어버리면...남아 있는 대오가 너무 적어 고립될까봐...하며 계속 대오 속으로 들어가자는 여자 후배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또 다시 등 떠밀려 시민들의 깃발 속으로 일단 몸을 숨긴다...

하지만 어제 저녁부터 7시간 가량 길거리에 서서 어슬렁거렸더니 앉고 싶어진다...발목에 힘이 빠진다...아니 몸이 힘 든 것보다 마음이 더 무겁다...무겁다보다 무섭다가 올바른 표현이리라...르메이에르 건물에 있는 미디어스 사무실로 들어왔다...밖에서는 아직도 함성 소리가 우렁차다...임을 위한 행진곡이 쟁쟁하게 들려온다...

이 글을 올리고 또 밖으로 나서야 할 것 같다...하지만 왠지 그냥 눕고 싶어진다...더 이상 나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다...방패에 찍히며 주먹에 맞는 아까 그 두 사람의 시민들이 계속 눈 앞에서 어른거린다.

경찰이 무섭다...경찰이...
그들은 경찰이 아니라 폭도였고...어청수는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 민중의 목을 치는 망나니였으며...이명박 정권은 국민을 적으로 돌리며 군사훈련을 시키는 폭도의 배후세력이자 주동자였다... 내일은 또 다시 조중동은 우리를 향해서 '폭도'라고 할 터이다. 우리를 보고 불법폭력시위꾼이라고 할 터이다. 하지만 나와서 본 사람들은 결코 조중동을 폐간하지 않고서는 희망이 없다는 것을 저리게 저리게 뼈저리게 느낀다.

적어도 어제와 오늘 새벽 나는 더 이상 이명박정권의 강압통치 아래 한 하늘을 이고 5년을 버틸 수 없음을 또 한 번 확인한다...KBS아나운서 황정민이 폭력적인 촛불에 대해서 실망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평화시위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으로 한 말이라고 해명했다...하지만 그 말이 무슨 뜻이든 의미이든...보고 듣고 겪으면서 생기는 '폭력시위'에 대한 입장은 하늘과 땅 차이.

결코 시민들이 불법폭력시위꾼이 아니라 경찰이 불법폭력적 진압군임을 눈으로 단 한 번이라도 나와서 확인하라고 말하고 싶다. 와서 보지 않고 겪지 않은 이야기를 사실로 간주한 채 내뱉는 '폭력시위'에 대한 자기 입장과는 천지차이. 설령 시민이 경찰을 먼저 때렸다고 하자. 백번양보해서 몽둥이를 들고 때렸다고 하자. 그 시민은 어김없이 경찰의 뭇매를 맞고 끌려간다. 그리고 옆에 있던 시민들은 자신의 얼굴을 향해서 날아오는 방패를 두 눈 뜨고 황망이 지켜보다 찍혀야 한다.맞아야 한다. 시민들이 저항하는 가장 큰 수단은, 하지만, 여전히 주먹이다. 맨주먹...이 맨주먹을 보고 격렬해진 촛불의 폭력시위라고 하는 기사가 바로 조중동이다.

▲ 29일 경찰의 과잉진압에 부상당한 시민ⓒ미디어스
스스로 인격파탄의 딜레마에 빠져 들게 하는...바로 눈 앞에서 끌려가는 시민들을 구출하고자 하는 의지보다..소나기처럼 후려대는 무수한 폭행을 당하며 끌려가는 시민이 내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게 하는...이 미친 정권 이명박의 주구 어청수의 폭력을 겪어보면, 단 한 번만이라도 겪어보면, 불법폭력 시위꾼 운운은 결코 입에 담지 못할 말이 될 것이다.

탄압 앞에 당당하게 맞섰다고 자부해 온 삶...그 힘으로 대학입학 후 지금까지 23년 간 저항의 언저리를 떠나지 않고, 지금보다 나은 우리나라, 11살짜리 사랑하는 나의 딸에게 아빠가 살았던 환경보다 나은 우리 사회를 물려주고자 나름대로 노력했던 나의 삶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럽게 돼버렸다.

참혹하다...
하지만...오늘 이후 나는 보다 더 철저하게 보다 더 혹독하게 스스로 다짐을 한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지쳐 주저 앉고 싶더라도...
마지막 남은 하나의 촛불을 내가 들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한다...

지금 시각...2시54분...
나는 다시 내려간다...
지금 들려오는 저 함성과 함께 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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