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편성제작본부는 여전히 공룡본부다. 조직 구조의 불균형 속에서 백종문 편성제작본부장이 MBC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MBC 한 관계자의 말이다. 이 관계자는 '편성제작본부'의 기형성을 지적하며 백 본부장의 전횡을 비판했다. 그의 말대로 현 MBC 편성제작본부는 6개의 국(편성국, 콘텐츠협력국, 아나운서국, 라디오국, 시사제작국, 교양제작국, 스포츠국)을 관할하는 거대 조직이고 수장은 백종문 편성제작본부장이다.

'편성 부문'과 '제작 부문'이 상호 견제하고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방송의 ABC에 비춰봤을 때, 편성제작본부에 쏠린 권력과 이를 쥔 전권자의 전횡은 제작 부문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주요인으로 꼽힌다.

편성과 제작의 견제가 무너진 MBC

▲ 백종문 MBC 편성제작본부장 (MBC 제공)

김종국 MBC 사장은 지난달 21일 김재철 전 사장의 9본부 체제를 7본부로 축소시켰다. 그러나, MBC PD들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왔던 편성제작본부에는 '메스'를 대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조직 개편에서 앞서 백종문 편성제작본부장을 MBC 등기 이사로 유임했다는 것. 당연한 수순으로 예견됐던 '조직 슬림화'에 MBC 구성원들이 마냥 기쁠 수 없었던 이유였다.

편성제작본부가 현재의 모습처럼 거대해진 데에는 2011년과 2012년, 두 차례에 걸친 김재철 전 사장의 조직 개편이 큰 역할을 했다.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닌 편성국, 외주제작국, 아나운서국은 편성본부로 통합됐고, 이어 김 전 사장은 라디오 본부와 시사교양국, 보도제작국까지 편성본부 산하에 흡수시켰다. 보도본부를 제외하면, 시사·교양의 모든 기능이 통합된 것이다.

앞서 말한 관계자는 "편성 부문과 제작 부문이 MBC처럼 구성돼 있는 방송사는 어디에도 없다"며 "지금 구조에서는 편성, 제작부문을 모두 관리할 수 있는 최고 책임자가 프로그램의 편성권을 쥐고, 프로그램에 전방위적으로 개입할 여지가 크다"고 밝혔다.

이어, 이 관계자는 "편성 부문의 구성원들과 제작 부문의 구성원이 교류와 견제를 통해 균형을 이뤄야 하는 게 바람직하나, 지금의 상황은 MBC 경쟁력에 있어서도 유익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실질적 '왕' 백종문 본부장…김재철의 산물?

막무가내 통합은 '관리'로 이어졌다. 백종문 편성본부장의 '관리'는 구체적이다. 단협이 깨진 상황에서 '국장책임제' '공정방송협의회' 등 방송 공정성과 관련된 제도는 힘을 발휘할 수 없고, 이 틈을 백 본부장이 꼼꼼하게 개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노조 MBC본부도 5월 노보를 통해 "방송 강령과 편성규약, 제작가이드라인은 무력화됐고 아이템 검열과 통제는 일상화됐다"며 제작 프로그램들이 책임자들의 자의적 '관리'로 망가졌다는 점을 비판한 바 있다.

MBC의 또 다른 관계자는 "백 본부장이 편성권을 가지고 일선 PD들을 직접 통치하려고 한다"며 "백 본부장이 직속 상관으로서 제작과 관련한 모든 부문을 다 개입하고 있는 상황이며 현 시점에서는 거의 모든 부장, 국장들이 백 본부장의 눈치를 봐야 한다"고 밝혔다.

백종문 본부장이 제작 부문의 인사와 아이템 검열 등 세세한 것까지 쥐고 있는 상황 속에서 김종국 사장이 현 상황을 제대로 보고 받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 관계자는 "김종국 사장은 보도 라인의 전문가"라며 "그렇다 보니 임원회의 등에서 라디오, 아나운서, 시사교양 등과 관련해 백 본부장의 말만 듣게 되는 상황이 연출된다는 우려가 나온다. 내부 구성원들의 목소리가 사장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재철 전 사장도 이런 구조가 갖는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MBC 내부자의 말에 따르면, 김 전 사장은 2011년 9월 단협을 체결한 뒤 시사교양국의 제작 PD들과 만남을 가졌고 이 자리에서 제작 PD들은 김 전 사장에게 '백종문 본부장-윤길용 국장'의 전횡과 그로 인한 제작상의 문제들을 알렸다. 김 전 사장이 이에 대해 장고를 했던 것으로 전해지는 만큼, '거대 조직과 수장의 전횡'은 노사 모두 일정 정도 공감했던 사안으로 보여진다.

▲ MBC의 과거와 현재. 김재철 전 MBC 사장(왼쪽)과 김종국 현 MBC 사장 (뉴스1)

'PD수첩' 파탄 장본인 백종문-윤길용
헤매는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축소, 아나운서 배제

<PD수첩> PD로 잔뼈가 굵은 백종문 본부장은 2011년 당시 윤길용 시사교양국장(현 울산 MBC 사장) 등과 함께 MBC <PD수첩>을 망가뜨린 장본인으로 꼽힌다. 이들은 정권과 자본에 비판적인 아이템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일선 PD들의 제작을 최대한 지연해 스스로 검열을 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자율성을 위축시켰다는 혹독한 평가를 받고 있다.

'백종문-윤길용' 체제에 반발해 <PD수첩> PD들은 2011년의 제작국 일상을 [응답하라! PD수첩](출판사 휴먼큐브, 2012)에 담아내기도 했다.

MBC의 한 PD는 "백 본부장이 시사교양국 무력화를 주도했다는 건 많은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사실"이라며 "윤길용 국장과 함께 최승호 PD, 이우환 PD, 한학수 PD 등을 내쫓았다. 이후 PD수첩이 망가지는 건 당연지사"라고 밝혔다. 이어, 이 PD는 "권재홍 본부장 유임보다 백 본부장 유임이 미치는 악영향이 더 크기 때문에 유임이 결정됐을 당시, 제작 관련자들은 걱정과 우려, 근심이 가득했다"고 설명했다.

2011년의 상황은 2013년에도 재현되고 있다. 2011년 이후 고질적인 아이템 검열 문제로 현재까지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위축됐다. <시사매거진 2580>이 2012년 편성본부로 흡수된 후 아이템 '연성화'가 더욱 가속화됐다는 지적은 MBC 제작국 소속 기자들에게 흔히 들을 수 있는 얘기가 됐다.

또 지난해 '170일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아나운서들이 방송에서 배제됐고, 방송에 출연할 수 없는 아나운서들은 잇따라 MBC를 떠났다. MBC 구성원들은 총 책임자 백 본부장이 이 모든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보고 있다.

MBC 내부의 또 다른 PD는 "공중파에서 찾아볼 수 없는 조직과 수장의 전횡으로 MBC가 가지고 있던 저력이 빠지고 있으며 더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어마어마한 조직 속에서 만들어진 모든 프로그램이 거의 다 망가졌다는 사실"이라며 "개인 의사와 무관하게, 이미 기형적 구조에서 백 본부장은 최고 권력자나 다름 없게 됐다. 그의 전횡으로 인해 마비된 제작국이 당분간은 경쟁력을 갖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백종문 본부장은 7일 <미디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제작 자율성 저해 문제와 관련해서는) 할 말이 없고, 미디어스와는 인터뷰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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