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타크래프트의 자리를 대체한 인기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OL).

LOL은 게임이 아니라 정치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LOL) 게이머 사이에는 'LOL은 게임이 아니라 정치'라는 말이 있다. 모 인터넷 게임방송국의 해설자가 한 말인데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으며 유행한 바 있다.

요컨대 게임의 승패 책임을 가릴 때, 중요한 것은 누가 잘하고 못했나가 아니라 누가 못했냐고 믿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패배의 책임소재를 두고 서로 비난하고 욕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LOL의 게임문화를 적나라하게 꼬집은 말이지만, 이 말은 동시에 LOL이 갖는 가장 중요한 특징을 함축하고 있기도 하다.

또 그 특징은 LOL에 욕설과 싸움이 유례없이 많은 원인이기도 하다. 욕설을 하거나 팀원에게 고의적으로 해를 끼친 이용자를 신고하는 시스템과 신고된 내용을 다른 이용자가 판결하여 제재하는 '배심원 제도'가 그나마 상황을 개선했다지만, 여전히 전세계에서 욕설과 싸움이 가장 많은 게임을 꼽으라면 단연코 LOL이다.

욕설과 싸움은 특히나 같은 팀 구성원 사이에서 발생한다. 거의 매 게임마다 누가 잘했네 못했네 다투지 않는 경우가 없을 정도다. 처음부터 목표가 상충되도록 프로그래밍된 관계, 즉 아군과 적군의 관계에서는 오히려 부딪힐 일이 적다. 어차피 '전부 아니면 무(無)'라는 상황에서는 타협하고 논쟁하고 설득하는 게 무의미하며, 그저 게임 내에서 실력을 겨룰 뿐이다.

LOL에는 아예 적팀과의 채팅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기능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대개 공동의 목표를 가진 팀원 사이에서 발생한다. LOL에서 상대팀의 '연결체'를 파괴하라는 목표는 팀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져있지만, 그 과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모두 플레이어'들'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공동의 목표와 더불어, 게임의 기본적인 규칙은 간단히 알 수 있다. 돈을 벌어서 플레이어들의 챔피언을 강화시키고, 상대편 방어포탑을 무너뜨리면서 끝까지 전진하라(그리고 이 과정에서 방해가 되는 상대팀 챔피언을 쓰러뜨려라)는 간단한 규칙이 있지만, 이를 제외한 모든 것은 플레이어들의 자유다. 심지어 챔피언 선택과 어떤 챔피언을 어디에 배치하는 것부터가 백지로 놓여있다. 문제는 스타크래프트 등과 달리, LOL에서는 플레이어가 한 명이 아니라는 점이다. 의지를 가진 주체가 여럿이며, 구체적인 승리의 방법은 비어있는 조건에서 LOL이라는 게임은 시작된다.

▲ 일명 'EU메타'에 의한 역할 구분. 봇(BOT)에는 원딜과 서포터 2명이, 나머지 공간에는 1명씩 배치된다. - 리그 디스

정답이 없는 게임

예컨대 'EU메타'라는 일종의 정석 전략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지나친 자율성이 초래할 혼란의 여지를 줄이기 위함이다. '어떠한 챔피언들로 팀을 구성하면 안정적'이라는 플레이어들의 경험적 결과가 정착시킨,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보편적인 규칙이다.

탑, 미드, 원딜, 서포터, 정글러라는 EU메타의 고정된 역할 구분은, 잠재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게임 양상의 폭을 좁히지만, 플레이어들에게는 오히려 변수를 줄여 게임을 쉽게 이해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즉, 스타크래프트의 정석 빌드오더와 비슷한 역할이다. 그러나 스타크래프트는 플레이어 한 명이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기에, 일정 실력에 이른 후에는 얼마든지 정석을 변형하거나, 이른바 '날빌'이라 불리는 과격한 전략을 마음대로 시도할 수 있지만, LOL은 사정이 다르다.

대부분의 게임에서는 서로 본 적이 없는 5명의 플레이어가 한 팀을 이루기 때문에, 플레이어 한 명이 EU메타라는 정석을 넘어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럴 경우 '트롤링'으로 매장될 뿐이다. 때때로 꾸준하게 호흡을 맞추는 프로게임팀 등이 연구를 거쳐서 EU메타를 깨는 '뉴 메타'를 선보이지만, 평범한 플레이어들에겐 먼 나라 이야기다.

플레이어의 챔피언 선택과 역할구분이라는 가장 높은 차원의 문제는 그나마 EU메타라는 장기에 걸쳐 완성된 합의로 어느 정도 해결됐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게임 내에서 플레이어들에게 주어진 자율적인 영역은 넓으며, 그때마다 어떻게 할 것인지를 결정할 주인공은 '없다'. '적과 아군의 상황에 비춰 어떤 아이템을 사는가' '언제 어디로 모여야 하는가' '위급한 상황에서 누가 희생하는가' 등등.

프로게임팀에서는 이른바 '오더'를 정해두어 이런 문제를 해결한다. 선수 중 한 명이 군대의 지휘관처럼 책임을 지고 다른 선수들에게 지시하는 것이다. "오더의 결정이 틀린 것 같더라도 일단 따르라"는 LOL의 격언처럼, 플레이어들이 따로따로 각자의 생각대로만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작위로 5명이 모이는 솔로 랭크 게임은, 이러한 프로게임팀의 경기와 다르다. 오더란 게 있지도 않을 뿐더러 설령 누군가 오더를 하겠다고 나서도 다른 네 명이 그를 따르리라는 보장도 없다. 대개의 경우 게임의 시작(픽밴)부터 끝날 때까지, 각자가 눈치껏 생각을 조율하다가 끝난다. 게임의 처음부터 끝까지 5명의 '합'을 도출하는 과정인 것이다.

대다수의 게임에서, 특히 낮은 단계의 플레이어들의 경기에서 이 과정은 참으로 험난하다. '거기로 달려들어야 한다' '아이템이 그게 뭐냐' '공격적으로/수비적으로 해야 한다' '나를 도와줘라' '아니다 버리고 도망쳐야 한다' 등등 게임 전체에 걸쳐 이런 식의 논쟁을 벌인다. 또 아군이 죽거나 손해를 볼 경우에는, '왜 그렇게 했느냐'고 책임 논쟁을 한다. 심지어 게임이 끝난 후에도 채팅으로 잘잘못을 일일이 따진다. 이렇게 논쟁을 하는 과정에서 '왜 그렇게 했느냐'라는 비판이 누적되면 플레이어의 기본적 실력문제를 따지게 되고 싸움으로 번지기 일쑤다.

'LOL은 게임이 아니라 정치'라는 말이 성립하는 것은 이런 지점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상대팀 또한 의지를 갖춘 사람이라는 것이다. 우리 팀이 아무리 최선의 선택을 한다고 해도 상대가 예상에 맞춰 움직여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 순간에 어떤 선택이 최선인지 객관적으로 아는 것은 매우 어렵다. 게임이 끝나고 리플레이를 통해 결과론적인 파악이 가능할 뿐이다. 본인의 챔피언 컨트롤에 집중하느라 시야의 폭이 굉장히 좁아지는 실제 게임 도중에는 판단이 훨씬 어렵다.

또 각 플레이어마다 바라보는 화면과 중시하는 판단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생각은 더욱 달라지기 쉽다. 요컨대 최선의 선택을 게임 내에서 취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문제점을 극복해야 한다. 우선 특정 시점에서 최선의 선택이 존재하는 지 자체가 불확실하다. 또 설령 최선의 선택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게임 중인 플레이어가 알기 어렵다. 무엇보다 플레이어 중 한 명이 최선의 선택을 알고 된다 해도, 다른 네 명 또한 그것과 같은 생각을 하고 기꺼이 동의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이렇듯 LOL은 정답이 없는 게임, 즉 정치적인 게임이다. 설령 내가 정답을 알고 있다 해도, 그게 정답일지는 아무도 모르며 그것을 나만이 실천해서는 의미가 없다. 내가 생각하는 정답으로 아군을 설득해 움직이게 한 뒤 결과를 내야 그것이 정답이 된다. 그런 주장과 설득의 절차에 실패한다면 정답은 더 이상 정답이 아니다.

▲ 승리 시 화면. 이 화면을 보기 위해 적군과도 아군과도 참 열심히 싸운다.

정치적 즐거움을 위하여

LOL을 두고 '스트레스 풀려고 했다가 스트레스 받는 게임'이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사실 이는 모순적인 표현이다. LOL에서 즐거움을 주는 측면으로서의 게임과 스트레스를 주는 측면으로서의 정치를 칼로 자르듯 분리할 수 있을까? 그러한 정치적 과정 없이는 즐거움을 주는 승리를 얻을 수 없다. 최초의 멀티플레이 게임이 의지를 가진 또 다른 주체와 만나는/겨루는 즐거움을 즉 사회적 즐거움을 알려주었다면, LOL은 일종의 또 다른 주체들과 갈등하고 소통한 끝에 목표를 달성하는 정치적 즐거움을 알려주는 게임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만이 남는다. 정치적 투쟁의 괴로운 면을 감내하면서 LOL의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든지, 다투고 갈등하는 것을 아예 회피하기 위해 그냥 게임을 하지 않든지. 현실도 비슷하다. 포기하고 아예 관심을 끊든지, 짜증나고 괴로울 때가 있지만 멀리보고 감수하든지. 다만 결정적 차이가 있다면, 게임에서는 얻는 것이 한 때의 자극인데 반해 현실에서는 오랜 기간 남는 변화라는 정도랄까?

▲ 조은상 하위문화평론가

'잉여'나 '덕후'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시대가 왔다.감격스러운 일이다. 주류 언론에게 존재 자체가 무시당하던 이들이 이제는 하나의 유의미한 집단으로 부상한 것이다. 하지만 그 시선은 잉여/덕후의 정치적 가능성, 사회경제적 위치 등에만 쏠려있을 뿐, 정작 그들의 정체성과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것, 하위문화(sub-culture)에는 무관심하다.

게임, 애니메이션, 만화 등을 비롯해 하위문화는 지금 경계선에 서 있다. 수적으로는 이미 다수의 위치를 넘보고 있지만, 사회적 위상은 여전히 바닥에 있다. 물론 인간이 그러한 것처럼, 문화에도 왕후장상에 씨는 따로 없다고 필자는 믿는다.

이 연재에서는 주류언론에서 거의 다루지 않으나 유의미한 향유집단을 가지고 있는 하위문화 콘텐츠 등을 소개하고, 그것이 갖는 의미에 대해 '편파적으로' 다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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