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동안 20명 넘게 해고당했고, 400여명 넘게 징계를 받았던 것을 상기한다면, 이명박 정권 아래서 언론인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단지, 언론 본연의 역할인 ‘공정한 보도’를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는 이유로, 많은 현업 언론인들이 징계와 해직의 칼날을 맞고 거리로 나왔다.

꼭, 38년 전에도 ‘자유 언론 수호’를 목표로 독재 정권에 맞섰던 언론인들이 있었다. 이들은 알려야 할 진실을 보도하지 못해 시민들에게 지탄을 받다가,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한 이후 박정희 정권의 인권 유린 및 민주화 운동 탄압을 고발해 지면에 담았다. 1974년 10월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하고, 6개월도 되지 않아 정권의 압력을 받은 동아일보 경영진에게 쫓겨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위원장 김종철, 이하 동아투위)가 그 주인공들이다.
동아투위와 동아투위의 곁을 묵묵히 지켜왔던 가족, 친구들이 그간 있었던 고난의 역사를 책 속에 담아 <1975 - 유신 독재에 도전한 언론인들 이야기>라는 책을 최근 펴냈다. 미디어스는 <1975>의 공동저자이자 현재 동아투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종철 위원장을 만나 동아투위 이야기를 비롯해 한국 언론의 ‘과거’와 ‘현재’를 들어 보았다. 인터뷰는 지난달 29일 5시 30분, 서울 신문로 프레스센터 부근의 한 음식점에서 진행됐다.
과거엔 기관원이 기사에 훈수 뒀지만 요즘은 언론 스스로 권력화돼
<1975>에는 지금 같으면 상상하기도 어려운 과거의 언론 상황이 실감나게 나타나 있다. 특히 기사 내용을 가지고 훈수를 두거나 방향을 설정하는 ‘기관원’의 존재가 눈에 띈다. 언론사 사람들이 ‘기관원’이라 이름 붙인 이들은 정보부, 보안사, 치안본부, 경찰 정보요원들이다.
김종철 위원장 역시 “70년 6월 복직했을 때 보니, 벌써 기관원이 동아일보사를 포함해 전국적으로 언론사에 출입을 하고 있더라”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종철 위원장은 “1969년 박정희 대통령이 3선 개헌을 할 때, 대학가에서 개헌 반대 투쟁이 벌어졌고 야당도 반대하는 등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3선 개헌을 위해서는 이런 반대 목소리가 드러나지 않도록 언론을 장악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고, 그래서 기관원이 투입되기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적어도 지금은 언론사에 기관원이 드나드는 일이 없는 만큼, 언론 통제의 수위는 더 낮아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언론이 권력 감시와 견제라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비판은 여전하다. 김종철 위원장은 “조선, 중앙, 동아 등 거대 언론은 오래 전부터 권력과 이해관계가 일치할 뿐 아니라, 정부 기관의 통제가 없어도 스스로 권력화돼 있는 상황”이라며 “교묘한 방식의 언론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민들의 응원 광고가 쏟아졌던 과거의 동아일보
▲ 김종철 동아투위 위원장 ⓒ언론노조
동아투위는 비록 동아일보 경영진에게 떠밀려 거리로 나온 후, 38년째 복직하지 못하고 있지만 동아일보에 대한 애정만은 남달랐다. 1970년대 동아일보와 동아방송은 날카로운 비판이 살아있어 시민들에게 대단한 사랑을 받았다. 박정희 정권의 압력으로 광고가 끊겨 텅 빈 광고면을, 시민들은 ‘사랑한다 동아일보’라며 자발적 응원 광고로 채워 주었다. 동아일보는 동아투위뿐 아니라 당시 시민들의 ‘자부심’이었다.
“무조건 1등이 좋은 건 아니지만, 그때 동아일보는 신문 보도나 논평 내용, 판매부수, 광고 등 모든 것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앞서 있었다.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이 언론윤리법을 만들어 언론인들에게 재갈을 물리려고 하자 마지막까지 저항한 것도 동아일보였다. 3선 개헌 때도 정부 비판적 논조를 유지했다”
하지만 동아일보 역시 언론을 옥죄는 시도가 더욱 더 활발해진 상황에서,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고 굳게 입을 다문 시절도 있었다.
“시민들이 와서 항의를 했다. 시민들은 대학가에 유신 반대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싣지 못하는 동아일보에게 ‘뭐 하느냐’고 따졌다. 기자들도 기자 생활해서 뭐하느냐는 자조가 가득했다. 73년 10월, 서울대 문리대에서 일어난 데모 사건을 싣자는 데 뜻을 모아, 젊은 기자들이 편집국에서 밤샘농성한 끝에 이를 최초로 보도했다. 다른 언론들도 동아일보를 따라서 해당 사건들을 1, 2단으로 처리하기 시작했다. 언론의 입을 막으려는 시도에 저항해 벽을 깨뜨렸다는 데 의의가 있다”
채녈A의 5.18 왜곡방송을 바라보는 심경
모든 면에서 앞서 나갔을 뿐 아니라, 독자들의 사랑과 신뢰도 높았던 동아일보는 현재 조선, 중앙, 동아를 합친 ‘조중동’으로 묶이는 보수지가 됐다. 갖은 편법과 특혜를 동원해 출범시킨 종합편성채널 채널A에서는 지난달 5.18 민주화 항쟁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왜곡 방송을 내보내 안팎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지난달 27일 <1975> 출간기념회에 앞서, 원로 언론인들은 방송통신위원회가 이 같은 왜곡방송을 내보낸 채널A와 TV조선의 허가를 취소해야 한다며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과거와 판이한 동아일보를 바라보는 ‘동아투위 선배’의 심경은 어떨까.
“참담하다. 최근에 종편에 나온 내용을 보니 기가 막혔다. 채널A는 광주 민주화 항쟁 때 북한군이 개입했다고 해 놓고, 동아일보는 그 보도를 비판하고 있었다. 각각 편집, 편성책임자가 다르겠지만 한 사안에 대해 갈팡질팡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완전히 수구 보수세력의 대변지가 된 동아일보를 보고 있으면 씁쓸해진다”
“책 출간 계기로 더 많은 사람들이 동아투위 사태 알게 됐으면”
▲ 지난달 출간된 '1975 - 유신 독재에 도전한 언론인들 이야기'
동아투위 사태가 일어난 지 40여년 가까이 됐지만, 이들은 해직 사태에 책임이 있는 정부, 동아일보 경영진에게 제대로 된 사과 한 번 받지 못했다.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동아투위 사태에 대해 ‘중앙정보부에 의해 강제로 해직됐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 유일한 성과다. 그래서인지 “동아투위와 박정희의 싸움은 ‘현재진행형’”이라는 말이 나온다.
동아투위는 언론노조, 미디어오늘과 함께 오는 5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1975> 출간 기념 해직 언론인 한마당 행사를 연다. 이 또한 ‘동아투위’를 모르는 독자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동아투위 사태는 진실화해위가 결정을 내렸듯, 박정희 정권이 동아일보사에 압력을 가해, 기자, 프로듀서, 아나운서, 엔지니어 등 113명을 강제해고한 일이다. 하지만 요새 젊은이들은 무시무시했던 유신 시대 이야기를 잘 모르고 있다. 언론인이 되려는 사람들이나, 젊은 후배 언론인들조차 동아투위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번 책 출간을 통해 독자들이 동아투위에 대해 알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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