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철 사장과 함께 일했다는 이유만으로 배제하는 것을 옳지 못하다. 그와 특수한 관계로 승진하거나 이익을 본 사람이 아니라면 배제할 이유가 없다"

방문진의 한 여당 추천 이사의 말이다. 타당하다. 지난 3년 김재철 전 사장과 같이 일을 했던 MBC 경영진을 모조리 뭉뚱그려 '김재철 측근' '김재철 아바타'로 폄하할 수는 없다. 이러한 태도는 MBC 정상화를 위한 노사의 대화 물꼬를 막아 버리는 일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 갈등만 부추길 뿐이다.

하지만 '인사'에는 원칙이 있다. 그것은 인사 대상자가 지닌 능력일 것이고, 능력은 과거의 행적을 바탕으로 판단하고 예측할 수 있다. 과거 행적이 문제가 있다면, 그래서 조직 발전을 더디게 만들었다면 일정 부분 '책임'을 지우는 것이 원칙일 것이다. 김 전 사장은 이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 그는 철저하게 이해에 따른 정실인사를 단행했다. 그와 비례해 MBC의 시청률, 신뢰도는 추락했다.

▲ MBC의 과거와 현재. 김재철 전 MBC 사장(왼쪽)과 김종국 현 MBC 사장 ⓒ뉴스1

김재철 인사 존속…'먹구름' 낀 시사교양프로그램

김종국 신임 MBC 사장은 30일 관계사 임원급 인사를 단행했다. MBC 감사를 제외하면 주요 보직은 채워졌다. 그렇다면 김재철 전 사장 때와 얼마나 많이 달라졌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크게 달라진 게 없다.

MBC 관계자들은 당초 김종국 신임 MBC 사장이 선택할 수 인사 폭이 좁을 것이라는 전망을 했다. 인재풀(Pool)이 협소하고 임기가 짧아 재임을 위해서는 방문진 여·야 이사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한 관계자는 "김종국 사장이 사석에서 '지역사 인사만큼은 자신의 뜻대로 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며 "이 말은 본부장 및 국·부장 인사는 방문진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설명을 했다.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백종문 편성제작본부장과 권재홍 보도본부장은 그대로 유임됐다. 백종문 본부장의 경우 윤길용 울산 MBC 사장 내정자와 함께 <PD수첩>을 망가뜨린 인물로 손꼽힌다. 이들의 비호 아래 권력과 자본을 감시하는 <PD수첩> PD들의 아이템을 반복적으로 막아냈던 김철진 시사제작국장과 김현종 교양제작국장도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은 채 유임됐다.

<뉴스데스크>의 여당 편향성과 연성화는 언제까지?

권재홍 보도본부장은 MBC <뉴스데스크>가 '연성화' 이슈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스스로 "'생활밀착형 뉴스'를 집중적으로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권 본부장은 사회적 쟁점을 첨예하기 다루기 보다 가볍고 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연성화된 뉴스를 주로 내세웠다.

정치부장에서 승진한 김장겸 보도국장은 MBC내부서 극단적인 여당 편향성을 지닌 인물로 꼽힌다. MBC 보도국 관계자는 "김 국장은 여당에 유리하고 야당에 불리한 기사는 키우고, 야당에 유리한 기사는 빼버리거나 축소시킨 인물"이라며 "대표적으로 예로 이명박 전 대통령 내곡동 사저 문제 축소 보도, 대선 기간 안철수 논문 검증 보도를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MBC <뉴스데스크> 소속의 한 기자도 "권재홍 본부장과 김장겸 보도국장이 보도라인을 장악함에 따라 '뉴스데스크'가 정상화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며 "현 정권에 비판적인 아이템을 제대로 발제나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 왼쪽부터 안광한 MBC 플러스미디어 사장 내정자, 이진숙 워싱턴 지사장, 백종문 편성제작본부장 ⓒ뉴스타파 화면 캡쳐

재기 노리는 이진숙, 영전한 윤길용·황용구

일선 보도라인에서 배제된 상태이지만 이진숙 워싱턴 지사장도 내년 '사장 교체기'를 노리고 있다는 의견이 있다. MBC의 또 다른 관계자는 이진숙 지사장의 해외 발령을 "쉬어가기"라고 표현하면서 "내년에 김종국 사장의 임기가 끝나는 만큼 이 전 본부장은 워싱턴 지사장 자리에서 생존을 위한 정치적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윤길용 울산 MBC 사장 내정자, 황용구 MBC경남 사장 내정자, 안광한 플러스미디어 사장 내정자도 '김재철 체제'를 뒷받침한 인물로 MBC 안팎에서 꼽힌다.

과거 <PD수첩>의 대표적 PD였던 윤길용 내정자는 2011년 최승호 PD, 이우환 PD, 한학수 PD 등 간판PD들을 <PD수첩>에서 내치며 물의를 빚었다. 그는 PD들에게 직접적으로 '민감한 이슈는 회피할 것'을 노골적으로 주문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PD수첩>의 한 PD는 "윤길용 PD는 <PD수첩> 전반기에서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PD이다"라면서도 "그는 우리사회가 어떻게 가야 할지 깊은 고민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처음 국장이 되자마자 '교양국 선배들이 지방사 사장으로 승진하지 못하는 현실을 바꿔보고 싶다'고 하더라.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많은 PD들에게 상처를 줬다"고 설명했다.

황용구 내정자도 '대기업 비판' '4대강 비판' '5·18 비하 논란' 리포트 등 첨예한 사회적 이슈를 다룬 보도를 축소하고 누락했다는 비판을 내부서 받았다. 안광한 내정자는 지난해 170일 장기파업 당시 언론노조 MBC본부 조합원들에게 징계를 무차별적으로 내렸다.

'반쪽사장'과 방문진, 멀어진 정상화

결과론적으로 위에서 언급된 '김재철 체제' 인사들은 영전을 하거나 유임을 하게 됐다. 이들은 김재철 전 사장과 "특수한 관계로 승진하거나 이익을 본 사람"들이라고 평할 수 있을 것이지만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이는 MBC가 지금의 모습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전적으로 김종국 신임 사장의 '실책'으로 해석하는 것은 온당할까?

김 사장은 진주·창원 MBC 사장 시절 노동조합의 조합원들을 '탄압'한 것으로 유명하다. 김재철 사장의 지시에 따라 김종국 사장은 철저하게 지역사의 통폐합을 추진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곳이 MBC경남이었다.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는, 즉 막무가내식 통폐합에 반대한 조합원들에 징계의 칼을 들이미는 방식으로 구성원들에 큰 상처를 입혔다.

▲ 김문환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뉴스1

그러나 서울 MBC사장으로서 그가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은 MBC경남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서울 MBC 사장직이 더 큰 권력을 지녔지만 보다 더 정치적일 수밖에 없고 더 많은 눈이 MBC 사장을 감시를 하고 있다. 위로는 방문진 여·야 이사들이 존재하고 언론노조 MBC본부가 사측의 대척점에 있다. 큰 틀에서 보자면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분위기 차이도 영향을 미친다.

김평호 단국대학교 방송영상학 교수도 "김재철 사장은 이명박 정권의 지침을 제대로 따랐지만 박근혜정부는 컨트롤타워가 없을 뿐더러 시스템적으로 언론을 완벽하게 장악하긴 어려운 상태"라며 "따라서 김종국 사장의 운신의 폭은 김재철 사장보다 좁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종합해 보면, 이번 인사는 김종국 사장의 의지가 오롯이 반영된 인사라고 평가하긴 어려울 것이다. 김 사장의 정치적 버팀목은 김재철 전 사장과 천양지차이며 방문진 이사들, 그 중에서 여당 이사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들과의 권력 관계뿐 아니라, 그들의 이해 관계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즉, 현 구조에서 김 사장은 '반쪽 사장'일 수밖에 없다.

실제 MBC 관계자들은 "김문환 방문진 이사장과 김종국 사장 사이가 매끄럽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들린다"며 "인사 문제로 갈등이 빚어진 것 같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미묘한 갈등 속에서 방문진과 MBC 사장. 두 거대 권력이 빚어낸 '김재철 시즌2'는 결국 MBC 정상화의 길을 요원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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