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MB정부가 또 하나의 사고를 치기 시작했다. 촛불시위 현장을 철저히 외면하고 왜곡했던 조중동과, 그러한 조중동이 가장 두려워하게 된 누리꾼의 한판 대결에 직접 선수로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민들이 협상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무엇을 바라고 있었는지 제대로 챙기지 못해 사죄드린다는 대통령의 말이 있은 지 딱 하루만의 일이다.

담화의 진정성에 대해 그리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지만, 막상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이런 일이 벌어지고 보니 늘 기대를 저버리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국민과 소통 하겠다’ ‘국민과 함께 가겠다’ ‘국민의 뜻을 받들겠다’ ‘반대 의견에도 귀를 기울이겠다’고 했던 약속은 오로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수사에 불과했던 것인지 아니면 자신과 뜻을 함께하는 국민만을 향한 것이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 82쿡 닷컴 회원들이 지난 22일 오후 2시 조선일보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곽상아
어쩌면 MB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말을 잘 듣는 국민과 말 많은 국민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여 그때그때 다른 법치를 읊어대고 있는 데서 나오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물리력을 동원해 사람을 때리고 방송사를 폭파해버리겠다고 벼르는 사람들에게는 가해지지 않는 ‘엄중’ 처벌의 위협이 고작 전화를 걸고 글을 올린 사람들을 향해서는 연일 쏟아지고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MB정부는 단단히 맘을 먹고 시작한 것 같다. 검찰과 경찰, 방송통신위원회 등이 참석한 인터넷 유해사범 대책회의 개최, 검찰의 '신뢰저해사범 전담수사팀' 구성, 포털 사이트를 통한 임시조치 관리 상태 압박, 인터넷 실명제 강화 등 며칠 사이에 생산된 관련 뉴스만 해도 적지 않다. 그 안에 소비자의 권리나 표현의 자유처럼 마땅히 보장되어야 할 국민적 권리는 그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이처럼 떠들썩한 고강도 위협 앞에서도 나는 여전히 마음이 편안하다. 그리고 이상하리만치 아무런 걱정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것은 매일매일 확인되어 나를 즐겁게 하는 누리꾼들의 신속한 대처 때문이다. 고강도 대책보다 더욱 빠르게 ‘업그레이드’되고 ‘네트워킹’ 되는 방안들은 모두 재기발랄하고 유쾌 통쾌한 내용들이다.

20일부터 줄을 잇고 있는 대검 사이트의 자수 행렬, 부드러운 목소리로 한사람씩 이어가는 짧고 경쾌한 항의 전화, 미운 넘(?) 말로라도 칭찬해주는 해학적 릴레이, 소액주주가 되어 합법적으로 회사운영에 개입하는 창조적 도전, 그리고 오프라인으로 위세를 보여주자는 집회 일자 공지 등 도무지 노회한 위정자들의 사고로는 따라잡기조차 어려운 합법적인 불복종운동이 계속 개발되고 있다.

▲ 지난 22일 검찰청 웹사이트 '국민의소리'에 조중동 광고 중단 소비자 운동 수사에 항의성 '자수' 게시글이 쇄도하고 있다.
그리하여 지금 ‘조중동’ ‘광고주’ 압박하기는 물론 ‘검찰청’ ‘경찰청’ 조롱하기의 물결로 번지고 있는 누리꾼의 힘은, 방송통신위원회의 본질을 꿰뚫는 결정적인 악재(?)로 이어질 가능성조차 보여주고 있다. 촛불시위가 공영방송 사수로 이어진 것처럼 말이다.

정말 MB정부와 조중동만 모르는 것이 있다. 그것은 시민들이 자신의 불편함과 두려움을 감수하면서까지 불매운동에 뛰어든 이유다. 사람들은 촛불과 촛불시위의 경험을 통해 잘못된 언론의 행태가 우리 사회의 가치를 훼손할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안위까지 파괴하는 요소라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다. 누군가의 부추김 때문이라고, 그것만 제거하면 선량한 시민을 보호할 수 있다는 식의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경험의 힘이다.

그런데도 정당한 이의제기가 폭력으로, 사회적 책무를 외면한 언론이 피해자로 형상화되는 후진적 정치가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행태가 멈추어지지 않는 한, 이를 질책하는 시민들의 조직적 움직임은 결코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MB정부는 끼어들기를 멈추어야 한다. 그리고 오히려 조중동의 사과를 촉구하여야 한다. 정작 뺨을 때린 사람은 따로 있는데, 뺨을 맞은 사람에게만 용서해줄 것을 강요하면 오히려 더욱 나쁜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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