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미디어스

Updated 2019.4.25 목 14:48
상단여백
HOME 뉴스 인터뷰
일본의 비판적 언론학자가 보는 '일본 그리고 아베'[인터뷰] "국가 공무원 보도직으로 전락한 공영방송 기자, 일본은 한국의 미래다"
김완 기자 | 승인 2013.05.07 13:51

편집자주=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극우 발언’과 일본 사회의 급속한 우경화 경향에 대한 국제 사회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최근 일본이 “2차 세계대전 때만큼이나 우경화되어 가고 있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이다.

아베 정권은 평화헌법을 파기하고, 자위권을 넘어서겠단 ‘야욕’을 공공연히 하며, 개헌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일본의 이런 움직임은 북한 발 위기와 묘한 ‘앙상블’을 이루며 동북아 전체를 군사적 긴장으로 몰아넣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의 직접적 침략을 경험했던 동아시아의 국가들은 일본의 이런 우경화 흐름에 매우 격렬히 반발하고 있지만, 아베 정권은 이에 아랑곳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오히려 “침략에 대한 정의는 이뤄지지 않았다”는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국 언론은 아베를 ‘전범의 손자’라고 부르며, 대놓고 극단적인 혐오감을 표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아베가 전범의 손자라서 그렇다는 비판만으로 넘어설 수 있는 문제는 없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것은 아베와 같은 정치인을 낳은 일본 사회의 구조적 문제 그리고 그런 역사 인식의 기원과 맥락이다.

일본은 가깝지만 먼 나라이다. 우리는 모두 일본을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정작 일본의 속내에 대해선 무지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철저히 깜깜하다. 가깝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모르는지도 모를 일본에 대해 묻기 위해 일본 사회의 대표적 비판 언론학자인 아사노 겐이치 일본 도시샤대학 미디어학 교수를 만났다. 일본 사회의 대표적 미디어비평지인 ‘월간 미디어비평 창(創)’의 주간이자 일본의 비판적 주간지인 ‘주간 금요일’의 필자이기도 한 아사노 교수는 거침없이 일본 사회의 문제와 언론의 한계를 지적했다.

아베와 같은 극우 정치인을 낳은 토대가 언론의 문제라고 지적한 아사노 교수의 비판은 놀랍게도 우리 안의 문제와도 맥을 같이 했다. 이번 인터뷰를 주선하고 함께 한 서강대 원용진 교수는 “KBS의 미래가 NHK라면, 일본은 한국의 미래일 수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말로 아사노 교수의 말을 듣고 있자면, 연쇄적으로 우리의 최근 언론 상황과 어떤 사건들이 즉각 연상되곤 했다.


일본 정치 지도자들의 역사 왜곡 발언이 반복되고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아사노 켄니치(이하 아사노) : 반복된 것이 아니다. 자민당 내 어떤 정파가 주도권을 잡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다. 과거 무라야마 정권이나 민주당 정권 그리고 호소카와 총리 때는 역사 왜곡 발언이 없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같은 도발 행위는 자민당 정권에서만 그리고 자만당 내 특정 파벌이 정권을 잡았을 때만 반복된다.

   
▲ 일본을 대표하는 비판적 언론학자로 꼽히는 아사노 겐이치 일본 도시샤대학 미디어학과 교수 ⓒ미디어스
그렇다면,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무라야마 담화 부정한 아베 신조 총리는 자민당 내 어떤 파벌인가?

자민당의 파벌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미야자와 파벌, 다나카 파벌, 후쿠다 파벌이 있다. 이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건 후쿠다 파벌이다. 후쿠다 파벌은 아베 할아버지와 같은 전범을 찬양하는 극우 인사들이 주를 이룬다. 이들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한국과 대만에 대한 침략을 모두 긍정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일본 사회 전체의 생각을 대변할 수 있는 세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치권력을 잡는 다는 점에 있다. 전체 표수의 17%에 불과한데, 국회 과반수를 넘기는 선거 제도의 부조리함에 있다. 작년 12월 총선 역시 그런 상황이었는데, 법원은 그런 선거는 위법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물론, 상황을 바꾸진 못했지만.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일본은 아직 민주국가가 아니다. 자민당 독재 체제는 중국이나 북한과 다름없다. 일본의 정치는 평양이나 마찬가지다.

질문을 바꿔보자. 자민당 체제는 일본의 변수가 아닌 오래된 상수인 문제다. 파벌 역시 오래된 문제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지금이냐가 중요할 것 같다.

아베 때문이다. 원래 아베는 자민당 안에서 당수 선거에선 당원 투표에선 이시바 시게루에게 뒤졌다. 이걸, 국회의원 투표에서 뒤집은 것이다. 당심은 상대적 온건파인 이시바 시게루를 택했던 것인데, 국회의원들이 사실상 이 결과를 뒤집으며 아베가 역전한 것이다. 지금의 문제는 아베가 정권을 잡았기에 생긴 탓이 크다. 아베가 단순히 전범의 손자라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가 그의 할아버지인 키시 노부스케같은 A급 전범을 범죄자로 보기는커녕 찬양하는 세계관을 갖고 있다는 점에 있다.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침략에 대한 정의를 부정하는 아베의 역사 인식에 대한 일본 내 논쟁은 어느 정도인가?

아사노 : 일단, 역사관과 역사 인식의 문제와 관련해 아베의 인식은 일본 사회의 다수파는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잘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이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소극적인 반응이 문제다. 여기에는 일본 언론의 책임이 크다. 과거사 문제를 말끔히 청산 해야한다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 목소리를 언론이 전달하지 않는다. 오로지 권력을 갖고 있는 정치인, 아베와 비슷한 문제의식만 전달할 뿐이다. 여기에는 일본 언론의 시스템 문제가 있다. 고착화된 일본 언론의 기자단 시스템에서 비판적 보도가 이뤄질 수 없다. 그래서 ‘기계적 중립’을 이루거나 비판하더라도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는 비판 밖에 안 된다. 예컨대, 야스쿠니 참배라든가 위안부 문제를 비판할 때 일본 주류 언론은 보통 ‘한국과 중국이 반대한다. 해외 언론이 시끄럽다’ 정도의 보도로 반대 의사를 전한다. 그건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NHK, 요미우리, 아사히 등 일본 내 주요 언론의 보도가 다 그러한가?

일본엔 온전한 의미에서 ‘비판적 언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일본 특유의 기자단 제도가 빚어낸 참극이다. 일본 언론은 권력이 통제하고 포섭이 가능한 시스템적 특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일본의 장관이나 정치가들은 역사 인식에 대한 반대나 비판이 제기되면, 기본적으로 어떤 협박에 대해서도 지지 않겠다는 수사를 사용한다. 일국의 총리인 아베가 태연하게 "침략이란 말의 국제적 정의는 없다"고 말할 수 있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일본의 주류 언론들은 아베의 발언을 그대로 전달만 할 뿐, 분석이나 심층적 접근을 하지 않는다. 모든 언론이 받아쓰기만 한다. 아베의 발언은 마치 ‘지구는 회전하지 않는다’는 인식과 같다. 언론은 이런 말을 하는 이를 ‘미친놈’이라고 비판해야 마땅한데 일본 언론은 그대로 ‘아베가 지구는 회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써줄 뿐이다. 망언에 대한 비판 없이, 망언을 그대로 전달하는 행위만 한다.

그렇다면, 일본 언론의 그런 보도 행태는 어디서 연유하는가?

기본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기자단의 문제다. 일본의 출입 기자 제도는 오로지 일본에만 있는 시스템이고, 1941년에 만들어진 이 시스템이 아직도 유지되는 상황이다. 담합의 카르텔이고, 주류 언론이 여론을 독점하는 뿌리이다. 일본의 기자는 저널리스트가 아닌 회사원이다. 회사가 권력과 협의해 만든 방에 출입하며, 이 방을 출입할 수 있게 등록된 언론만 언론행위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에서 언론은 필연적으로 권력과 가깝게 된다. 기자들이 정치인과 밥 먹고 술 마시고 함께 뒹구는 상황이 만성화된다.

모든 언론이 다 그런가? 비판적 언론, 이념의 스펙트럼에서 보면 좌파적 언론도 있지 않은가?

일본 내 주류 언론 가운데 그런 언론은 없다. 좌파 신문 같은 것은 아예 없다. 기자단에 등록된 언론은 기본적으로 모두 같다. 예컨대, 요미우리보다 진보적이란 평을 받기도 하는 아사히의 경우 독도 문제나 야스쿠니 문제에 대해서 영토권을 주장하거나 참배를 하면 국익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할 뿐이다. 그러니까 시끄럽게 하지 말자, 이 수준이다. 그게 본질이 아니다. 그것은 명백한 일본 헌법 위반인데, 그런 얘기는 전혀 하지 않는다. 일본의 우경화는 국제적 문제일 뿐만 아니라 국내 헌법 위반 문제이기도 한데, 절대 그런 식으로는 쓰지 않는다.  

한국에도 출입 기자 제도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걸 기자단의 문제로만 접근하면 너무 협소화 할 우려가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전후 일본 언론이 정경 유착을 통해 유지, 발전해 온 오너십의 문제 같은 것도 있지 않는가?

물론, 오너십의 문제도 중요하다. 일본의 사회 문제 전체와 맥을 같이 하는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상적 언론 행위가 부재한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역시 출입 기자 제도의 문제다. 일본의 출입 기자 제도는 기자가 등록되는 것이 아니라 언론사가 등록된다. 아사히의 기자가 아니라 아사히의 일원으로 출입하게 된다. 기자는 개별적 판단을 할 수 없고 그냥 사원으로 전락한다.

그리고 일본의 언론 환경은 기사 생산에서만 담합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적 차원에서도 언론사의 담합이 층층으로 시스템화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유통의 경우 일본에선 아무나 신문을 팔 수 없다. 지하철 역 같은 곳에서 신문을 팔수 있는 사람은 정부가 지정한 신문사가 등록한 판매원뿐인데, 지정을 받으려면 반드시 기자단에 가입되어 있는 언론사여야 한다.

신문 용지에 대한 담합도 이뤄진다. 아무나 신문 용지를 구매할 수 없다. 전후 일본 경제는 눈부시게 발전하고 성장했지만, 언론은 오히려 40년대에 비해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줄어들었다. 일본 언론은 아래서부터의 힘이 없다. 상층부 담합의 악순환만 계속 된다. 기자단에 속한 언론들이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을 구조적으로 방해하고, 용기 있는 언론인들이 새로운 미디어를 만들어도 취재를 못하니 도태된다. 신문 용지 구매와 유통 모두에 담합이 있으니, 신문을 새로 만들면 택배를 써서 DHL로 배달하는 신문이어야 하는 지경이다.(웃음)

   
▲ 일본의 공영방송 NHK의 홈페이지 화면. 방영 중인 역사 드라마의 장면이 눈에 띈다. NHK의 대하 역사 드라마는 일본 사회의 집단적 역사 인식을 만드는데 가장 큰 몫을 차지한다. 청일전쟁의 발발이 불가피했다고 그리는 역사 드라마를 보고 자란 세대가 '침략'의 문제를 성찰할 수 있을까? 아서노 교수는 NHK기자를 '국가 보도직 공무원'이라고 칭했다.

일본은 공영방송인 NHK의 영향력이 강한 것으로 알고 있다. NHK는 세계 3대 공영방송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한국의 공영방송인 KBS는 종종 NHK를 롤 모델로 들기도 한다. 그런 KBS는 지금 역사 왜곡 다큐 등을 통해 논란이 되고 있고, 한국의 공영방송들은 비판적 언론인들을 내쫒으며 조직의 체질을 개선하겠다고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 사회 내에서 NHK의 위상이나 역할은 어떠한가?

신뢰로는 NHK가 제일 높다.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극우로 평가받는 산케이 신문과 똑같다. 한 마디로 최악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일본은 특별히 더 역사를 왜곡하거나, 시청자들의 의식 조작을 할 필요는 없다는 점뿐이다.(웃음) 그나마 한국은 비판적 기자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일본에는 그런 기자들조차 없다. 기자들의 의식을 바꿀 필요도 없고, 체질을 개선할 필요도 없다. 보수적인 사람들만 모여들기 때문에 조작 없이도 알아서 스스로 잘 해낸다.(웃음) 일본의 언론 상황은 그래서 평양과 같다. 나는 NHK기자들이 ‘국가 공무원 보도직’이라고 생각한다. NHK의 보수성은 조직 구성에서도 잘 드러난다. 모두가 일본 본토 사람이고, 대부분 도쿄대 출신의 남성이다. 이들은 곧 자신이 일본이라고 믿는 정체성을 갖고 있는 극단적인 엘리트 집단이다.

국가 공무원 보도직이란 표현이 재밌다. NHK의 구성이 그렇게 획일적이고 보수적이란 것도 놀랍다. 그런데 이렇게 엘리트들이라면 더 자존심이 세지 않을까, 그럼 정치권력에 굴종하는 태도로 일관하는 논조에 반발을 할 것 같기도 하다.

내가 94년부터 교수를 했고, 그 전에는 교토통신 기자였다. 당시 기자 초봉이 750만 엔, 3년차는 1000만 엔 정도 했다. 그런데 지금 교수 정년을 앞두고 월급이 그 정도다. 지금 아마 기자의 월급은 더 올랐을 것이다. 일본 사회에서 기자는 초고소득을 올리는 상류 계층이다. 주요 언론 기자들의 경우 대부분 남성이고 도쿄대학이나 와세다 대학 같은 명문대 출신이 아닌 이를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프라이드가 강한 것은 기자 개인이 아니라 그 집단에 소속되어 있단 점에서 발현된다.

이런 언론사의 관행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폐쇄적이고, 퇴행적이다. 제자 중에 한 명이 3년 전에 NHK에 입사한 적이 있었다. 여성이었는데, 모두가 축하해주고 그랬다. 그런데 입사한지 2달여 만에 퇴사했다. 일본 언론은 처음 입사하면 경찰서 수습을 돌게 하는데, NHK의 경우 특히 3개월 수습기간 동안 ‘나는 NHK의 기자 ㅇㅇㅇ입니다’라는 팻말을 들고 경찰서 정문 앞에 서있도록 한다. 창피함을 무릅쓰고라도 기자의 근성을 가르친다는 취지이고, NHK만의 오래된 관행이다. 팻말을 들고 서있던 기자에게 한 경찰이 ‘속옷 사이즈를 알려 달라, 선물하고 싶다’고 치근덕댔다고 한다. 모멸감이 든 그 기자는 이 사실을 회사에 알리고, 선배들에게 자문도 구했다고 한다. 하지만 NHK는 ‘뭐 그런 일을 문제 삼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선배들 역시 ‘사이즈를 알려주고 선물을 받지 그랬느냐’며 무심하게 넘겼다고 한다. 결국, 제자는 조직과 상사에 절망하고 NHK를 그만뒀다. 이게 일본 공영방송의 수준, 나아가 언론의 수준이다.      

   
▲ 아사노 겐이치 교수는 열정적으로 그리고 분명하게 아베와 같은 극우 정치인을 낳은 일본 사회의 토대가 언론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미디어스
충격적이다. 그런데 성희롱은 범죄적 행위가 아닌가. 일본 사회의 수준이 그만큼 낮은 것인가

아니다. 사회 전반에서 그런 일은 용납될 수 없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언론에서의 관행이다. 일본의 언론사 조직과 구조는 여전히 봉건적이다. 일본 사회의 실패를 말할 때 가장 대표적인 예가 언론의 실패이다. 그 다음으로 봉건적인 조직이 대학인데, 언론과 대학이 봉건적 행태를 깨지 못한 이유는 이 두 영역의 경우 외부에서 침범하기가 어렵단 특수성에 기인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엔 제대로 된 언론학자들도 없다. 대부분 언론사의 고문을 하거나 기자단의 배후에서 활동한다. 일본의 언론학자란 곧 언론사의 간부와 함께하는 이들이라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이런 언론 구조나 환경에 반발하는 기자들은 없나? 보편적 수준의 상식이란 것은 있는 게 아닌가?

그런 사람들은 다 그만둔다. 아니면 정신병을 얻게 된다. 한 조사를 보면, 아사히에 입사한 사람 가운데 1/4이 그만뒀다고 한다. 상식과 합리성을 주장하면 배제된다. 그래서 종종 개인적으로 신문사를 그만 둔 사람들만 모여서 신문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한국에서는 해고를 당한 언론인들이 그런 시도를 해 한겨레 같은 언론이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일본에는 아직 그런 것이 없다. 일본의 언론 상황은 1789년 프랑스 혁명 직전의 봉건제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보면 딱 맞다. 기자단에 속해 있는 기자들은 그런 문제의식을 갖기 힘들다.

유명한 스캔들 가운데 지금 총리인 아베가 자민당 간사장이던 시절에 NHK의 다큐멘터리 방송에 개입한 적이 있었다. NHK 간부를 불러 검열을 한 사건이었다. 위안부 문제에 관한 다큐에서 특정 장면과 표현들을 빼라고 요구했다. 이는 검열을 금지한 일본 헌법 21조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었는데, 기자들은 이를 비판하지도 제대로 쓰지도 않았다. 당시, 그 사건을 기사화한 언론은 그런 일이 있었다는 스트레이트로만 보도했다. 당시, 아사히 신문은 그 사건을 썼다가 후에 아베에게 ‘취재를 하지 않아 미안하다’며 사과를 하기도 했다. 기사를 썼던 기자 2명은 지역으로 전보됐다. 그 사과를 단행한 데스크가 바로 지금 아사히의 사장이다. 

일본 사회의 비판적 지성계에서 이런 문제가 회자되진 않는가? 일본 사회가 언론의 이런 문제를 인식하는 정도는 어느 정도인가?

전혀 없다. 여기에는 이를 공론화해야 하는 언론학자들의 책임이 크다. 언론사의 그늘 아래서 언론학자들이 존재하니 비판적 문제의식이 발휘되지 않는다. 그래서 대학을 나오며 ‘학자의 범죄’라는 책을 쓰려고 준비 중이다.(웃음) 일본 사회의 문제를 언론과 대학이라고 말했는데, 직업적으로 보면 학자와 저널리스트 2가지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해외에서 활동하는 비판적 사회학자들은 일본의 최대 불행은 학자와 기자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일본의 권력구조’한 책을 쓴 다치라는 학자는 정치, 언론 그리고 노조 이 3가지는 일본에서 안 된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일본의 언론 상황이 이런 지경에 처한 근본적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기본적으로 일본은 민주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웃음) 일본은 시민사회로 구성된 사회가 아니라 여전히 천황 이하 신민사회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은 시민들이 집단적으로 싸워서 쟁취한 민주화의 경험이 있지만 일본엔 그런 것이 없다. 싸움이 없었던 일본 민주주의의 역사는 그래서 나는 ‘미국이 가져온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민주주의를 쟁취한 집단적 경험이 없는 ‘페이퍼 민주주의’다. 그래서 일본은 여전히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미국 중심의 미국의 식민지적 발상이 강하다. 일본은 그래서 한국과 대만과 차별되는 다른 체제이다. 한국이나 대만 역시 체제의 안전 보장 문제에 있어선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다른 국내 문제의 경우 민주화 투쟁을 통해 극복해왔고, 이런 경험이 정치적 배경에 깔려있다. 하지만 일본은 이 부분이 전무하다보니, 비판적 시민의식 같은 것이 성장할 수 없었다.

아베 정권과 같은 권력을 언론이 비판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비판적 저널리즘 교육 자체가 없는 일본 사회에서 기자는 곧 최고의 직장에 다니는 사원일 뿐이다. 주류 언론 기자의 가정 환경을 조사해보면, 아버지가 법관, 정치가, 교수, 경제계 인사였던 이들이 엄청나게 많다. 부유하게 길러져 좋은 대학을 나와 최고의 월급을 받는 직장에 안착했는데, 이들이 비판의식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정치적 약자나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이해가 있을 수 있겠는가.

   
▲ 점점 더 국제 사회의 문제적 인물이 되어가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그러나 아서노 교수는 그의 개헌론이 국내용일 뿐, 성공하진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내부의 저항 때문이 아닌 미국이 용인해주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뉴스1

이런 언론의 담합 속에서 아베와 같은 정치인이 득세하는 근본적인 토양이라고 보는 것인가

그렇다. 하지만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찬동하는 파벌은 자체 모순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장기 지속되긴 어렵다. 시간의 문제지만 아베 류의 권력은 해제가 될 것이다. 일본 국내의 저항이 문제가 아니라 그런 시각 자체가 국제 사회와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당장에 헌법 개정은 도저히 미국이 수용할 수 없는 문제다.

하지만 자민당은 공식적으로 7월 총선에서 개헌석 확보를 요구하고 있다. 아베가 장기 지속하는 것은 어렵더라도 단기적으로 아베 체제가 일본사회의 어떤 근본적인 포인트를 해체할 가능성은 있지 않은가?

이대로 가면, 그럴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헌법 개정론의 최대 모순은 미국의 이해를 구하지 못할 것이란 점에 있어, 실제 개헌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유럽의 국가들 역시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벌써 미국은 아베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아베가 주장하는 헌법 개정의 포인트는 2가지인데 우선, 일본군 만든다는 것이고 그 원수를 천황으로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국가의 주권을 천황이 갖게 됨을 의미한다. 천황이 국가 원수가 되면 국가통수권도 당연히 천황이 갖게 된다. 이는 미국이 절대로 인정할 수 없는 대목이다. 또한 일본의 핵무장 역시 미국으로선 절대 인정할 수 없는 문제다. 미국은 지금 수준의 일본군을 인정하고 유지하는 전략이 기본적이다. 그렇게 봤을 때, 일본이 UN을 탈퇴할 것이 아니라면 아베의 헌법 개정 자체에 모순이 크고 국내용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아베의 생각은 언젠가 어디선가 반드시 자멸할 수밖에 없다. 일본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한중과 경제적 동반 관계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 제국주의 역사관과 노선을 갖는 것은 그 자체로 심각한 모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중국의 견제라는 미명하에 미국의 묵인 속에서 아베가 질주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갖고 있기도 하다.

미국의 태도는 철저히 미국의 지배 하에서 일본군이 활성화되는 것만을 인정한다. 굳이 헌법을 개정하지 않아도 그대로 하면 되는 부분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미국 입장에서 군대는 괜찮더라도 천황을 원수로 하겠다는 것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미국 각지에서 결의안이 나온 것도 그런 압박의 흐름이라고 본다. 야스쿠니 문제 역시 미국 언론은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미국이랑 같이 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일본의 정치란 있을 수 없다. 아베의 헌법 개정안은 그런 의미에서 공존이 불가능한 목표를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다.

일본 정부 입장에서 보면, 동북아 전체가 우경화의 길을 걷고 있는 상황에서 대응적인 차원이라고 말할 수 있는 대목도 있지 않을까?

일본이 가야할 길 그리고 갈 길은 3가지가 있다. 첫째, 헌법을 개정 하지 않고 현행 유지하는 길, 둘째 강력한 일본군을 만들고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끊는 일, 그리고 마지막으로 평화헌법을 지키고 유럽의 스위스 같이 피군사 중립국이 되는 길이다. 여기서의 외교적 목표는 미국과 중국 중 어느 편이 될 것이냐가 아니라 미국과 중국 양쪽이 사이좋게 하는 게 일본의 지향이 되어야 하고 현실적으로 택할 수밖에 없는 목표다. 일본이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질문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본은 이미 중국과는 70년대 평화조약을 맺은바 있다. 중일 간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UN 가입 시에도 이에 대한 준수를 약속했다. 이와 동등하게 미국과도 군사조약을 파기하고 평화조약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그것이 동북아 평화에 일본이 기여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아베는 일본도 보통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선전하는데, 일본 헌법에 9조가 존재하는 것은 명백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일본은 근대화 이후 유일하게 동아시아에서 2천만 명 이상을 죽인 과거가 있는 나라이다. 그래서 한국의 우경화와 일본의 우경화는 다르다. 18세기 근대국가 탄생 이후 동아시아사에서 다른 나라를 침략 한건 일본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아베가 ‘침략이 있었느냐, 없었느냐’ 따위의 논쟁을 거는 것은 좌우파의 문제를 떠나 한 마디로 ‘미친짓’이다. 민주주의가 옳으냐, 파시즘이 옳으냐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다. UN에서도 아직 일본은 이탈리아, 독일과 함께 유사시 바로 공격할 수 있는 위험 국가로 분류되고 있다. 한국, 북한, 중국의 우려는 동아시아의 시각이 아니라 일본을 보는 국제적 시각 UN의 입장과 같음을 일본 정부는 인정해야 한다.

   
▲ 지난 25일자 조선일보 3면 기사. 한국 언론은 아베의 잇딴 망언에 그를 '전범의 손자'라고 힐난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본질이 아니다. 본질을 짚지 못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일본의 언론과 정치에 매우 비판적인데, 일본의 시민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일본 시민들 역시 문제가 많다. 역사 인식도 그렇고 중요한 문제에 대한 침묵도 그렇다. 근데 이건 일본사회의 구조와 연관이 있다. 사람의 의식은 기본적으로 학교, 가정, 언론의 영향을 받고 형성되는데, 일본은 이 가운데 최소 2가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구조이다. 아베와 같은 위험한 인물을 선거 제도를 가진 나라에서 수용하는 것은 일종의 집단적 무지에서 오는 현상이라고 밖에 설명이 안 된다. 여기서 전후 독일의 상황과 비교하면 이해가 쉽다. 공동체가 나치즘을 배격하고 단죄한 독일의 역사와 일본의 역사는 완전히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 건전한 상식에 대한 믿음은 있어야 하지 않는가, 일본 시민 사회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어떻게 사회 운동을 하고 한일 관계의 변화를 믿을 수 있겠는가?

한 명이라도 같은 뜻은 품게 하고 비판적인 사람을 만드는 것, 그것이 목표다. 지금 당장에 대중운동을 할 순 없지만 생각을 널리 퍼트리는 것 밖에 또 다른 방법은 없다. 일본은 경제적으로 힘이 세고, 인구도 많다. 여전히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에게 충분히 위협적인 덩치 큰 국가다. 그런데 과거에 큰 국가 범죄를 저질렀다. 이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하고 고민하고 있다.

김완 기자  ssamwan@gmail.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완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72길 22 가든빌딩 608호 (우) 07238  |  대표전화 : 02-734-9500  |  팩스 : 02-734-2299
등록번호 : 서울 아 00441  |  등록일 : 2007년 10월 1일  |  발행인 : 안현우  |  편집인 : 안현우  |  개인정보책임자 : 윤희상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희상 팀장
Copyright © 2011-2019 미디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mediaus.co.kr

ND소프트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