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했던 일이다. 포털 다음이 지난 22일 동아일보의 요구를 수용했다. '조중동 광고 불매 운동' 관련 게시글 가운데 수십개를 자발적으로 임시삭제(열람제한) 조처를 취했다고 밝힌 것이다. 열람을 제한한 게시물의 불법성 여부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결정에 맡겼다고 한다.

▲ '조중동 광고주 압박 게시물' 임시삭제에 대한 다음 커뮤니케이션의 공지

다음이 이런 조처를 취하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배상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서다. 현행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2 제6항은 누군가 게시물 삭제를 요청만 하면 포털이 일단 삭제부터 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그래야 "배상 책임을 줄이거나 면제받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열람제한 조처를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게시물이 불법으로 판정나면 포털도 배상 책임을 진다는 얘기다.

그럴 듯하다.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차근차근 생각해 보자. 포털은 자신의 정보통신망에서 발생하는 명예훼손, 저작권 침해, 업무방해 등 각종 불법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한다. 포털 스스로가 네티즌의 의사소통 행위를 끊임없이 체크하고 관리하는 강력한 유인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포털은 불법성 여부를 자체 판단하기 위한 끊임없는 유혹 속에서 게시물들을 응시해야 한다.

이게 중요하다. 포털은 이미 '중립적 전달자'(neutral carrier)가 아니다. 정보통신망법은 네티즌의 의사소통 행위에 대한 책임을 포털에 지우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통신망법 제44조 제2항은 이 점을 더 분명히 보여준다. "사생활 침해 또는 명예훼손 등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정보가 유통되지 아니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포털 스스로 불법성 여부를 판단하는 포괄적인 의무를 지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포털 역시 정보통신망법의 피해자라는 일부 네티즌들의 주장은 옳다. 그러나 이 주장에는 한계가 있다. 스스로 중립적 지위에 있음을 강조하면서도, 포털이 언론 기능을 붙들고 있다는 사실은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통제에 대한 정부의 논리는 간단하다. 포털이 중요한 언론 기능을 하고 있는 만큼 포털의 사회적 책임성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말하는 '사회적 책임성'은 사생활 침해, 명예훼손 등의 명분을 필수적으로 동반한다. 인터넷 표현의 자유와 정보접근을 제약하는 데 이런 명분은 늘 매력적이다.

▲ 지난달 31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 '협상무효 이명박 정부 심판 범국민행동' 참석자들이 '조중동 광고 중단'을 촉구하는 펼침막을 내걸고 행진하고 있다. ⓒ서정은

포털의 언론 기능은 대통령선거나 총선 등 중요한 고비 때마다 주목을 받아 왔다. 포털은 기사배치 순서 및 크기 설정, 제목 변경 등 자체 편집을 통해 의제를 설정하고 여론을 형성한다. 포털은 다음 '아고라'에서 어떤 게시물을 돋보이게 드러낼 것인가를 결정한다. 바로 이 지점이 정부가 인터넷 표현의 자유와 정보 접근을 제약하기 위한 든든한 교두보를 확보하는 고리이다.

▲ 조준상
포털이 스스로 내세우는 중립적 지위와 포털이 수행하는 언론 기능은 양립할 수 없다. 그래서 포털은 기로에 서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광범위한 편집 기능을 포기하고 명실상부한 중립적 지위를 주장하며 네티즌과 함께 정보통신망법 개정에 나설 것인지, 아니면 사이비 중립적 지위를 내세우며 현행 정보통신망법에 안주할 것인지를 분명히 택해야 한다. 현재 포털의 자의적인 편집 기능은 인터넷 표현의 자유와 정보 접근을 제약하는 고리다. 이걸 끊어내지 않으면 정부의 인터넷 여론 통제에 완강하게 맞설 수 있는 해법은 없다.

포털만 그런 게 아니다. 정보통신망법에 따르면, 포털뿐 아니라 수많은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ISP), 사이트 운영자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라는 범주로 묶여 포털과 동일한 운명에 놓여 있다. '중립적 전달자' 지위가 인터넷 전반에 걸친 표현의 자유와 정보 접근과 관련되는 사안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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