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련 ‘추가협상’이 진행 중이던 지난 19일 (긴급)기자회견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정부는 지금 모든 외교력을 동원해서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국제기준과 충돌되지 않고 통상마찰을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식품 안전에 관한 국민들의 염려를 해소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미국 부시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 사항을 구체적으로 분명히 밝혔습니다. 이를 계기로 지금 이 시각에도 양국 대표들이 모여 협상을 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원하지 않는 한 30개월령 이상의 미국산 쇠고기가 우리 식탁에 오르는 일이 결코 없도록 할 것입니다. 미국 정부의 확고한 보장을 받아내겠습니다. 미국도 동맹국인 한국민의 뜻을 존중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부시 행정부의 관련 공무원들이나 미국 전문가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이런 언급을 들으면서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이 대통령 19일 기자회견, 사실상 실현불가능한 약속만 늘어놓은 셈

국제관계 전문가는 아니지만, 기자가 쇠고기 관련 국내 상황과 한미관계 등을 종합해 볼 때 이명박 대통령이 19일 기자회견에서 한 이 말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결과적으로 국민을 속이는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첫째, 이명박 대통령은 “정부가 모든 외교력을 동원해서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했지만, 다른 문제도 그렇지만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도 ‘외교력’ 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외교라는 것이 외교관들의 능력에만 좌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고 우리가 미국보다 외교력 자체가 뛰어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좁은 의미에서 ‘외교적 수단’만 놓고 따져도 우리가 가진 수단이 10가지라면 미국은 100가지도 넘는다. 현실이 그렇다는 것이다.

둘째, “국제기준과 충돌되지 않고 통상마찰을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식품안전에 관한 국민들의 염려를 해소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제기준’을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기본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모든 나라에 적용되는 하나의 기준(만)이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국제수역사무국(OIE)이 ‘강제기준’이 아니라 ‘권고’ 기준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과 별개로 각 나라(주권국가)가 자기네 나라에 맞는 별도의 동물 검역과 수입에 관한 기준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말인가?

우리 국민들은 국제수역사무국의 권고기준과 상관없이, 우리나라의 특수성, 가령 털과 발톱 등 극히 일부를 빼고는 사실상 소의 거의 모든 부위를 다 먹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 우리나라의 음식문화에 맞게 검역과 수입 기준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또 ‘통상마찰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쇠고기 식품 안전에 관한 국민들의 염려를 해소하겠다는 말도 문제가 있거나 모순되기는 마찬가지다. ‘협상 아닌 협상 과정’에서 ‘조공을 바치듯’ 다 줘놓고, 이제 와서 통상마찰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미국의 실질적인 양보를 얻어내는 것이 정말 가능하다고 생각했을까? 궁금할 따름이다.

▲ 한겨레 6월20일자 1면.

국민들은 어떤 통상마찰이 나중에 실제 발생할 지 모른지만, 일부 통상마찰을 각오하더라도 먹거리 문제인 쇠고기 수입과 안전과 관련해서는 이명박 정부가 단호하게 ‘재협상’을 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미국의 부시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사항을 구체적으로 분명히 밝히기만 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가? 캠프 데이비드 한미 정상회담에서 카트를 몰며 부시 대통령과 쌓은 ‘우정과 신뢰’가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의 주요 정치자금줄인 축산업자의 이해관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미국 축산업자들, 부시 대통령의 주요 정치자금줄

지난 16일자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공영방송 <피비에스(PBS)>는 ‘쇠고기의 정치학’이란 프로그램에서 2000년, 2004년 대선 때 부시 대통령이 미국의 중부 지역 남북을 잇는 이른바 '쇠고기(Beef) 벨트'에서 큰 지지를 얻었으며 부시는 두 차례 모두 축산업자들이 기부한 선거자금의 80% 가량을 휩쓸었다고 한다.

당시 미국 축산협회(NCBA) 소식지는 부시 대통령이 백악관 크리스마스 파티에 협회 회장을 초대해, “난 목장 주인들이 너무 좋아요!”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2004년 <뉴욕타임스>는 1990년 이래 축산업계가 지출한 정치자금이 2,200만달러에 이르며, 이 가운데 4분의 3을 공화당이 가져갔다고 보도했다.

척 램버트 미 농무부 차관보와 칼로스 구티에레즈 상무장관 등 축산업계 출신 인사가 관료를 맡는 일도 드물지 않다. 램버트는 축산협회, 구티에레즈는 켈로그의 최고경영자(CEO) 출신이다. ‘아버지 부시’ 행정부 시절 농무부 차관보를 지낸 조앤 스미스는 축산협회 회장 출신이었다. “검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기 조각과 연골 등의 유통을 허용한 장본인이다. 업계와 관료를 오가는 ‘회전문’식 인사로 정책의 공정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고 한겨레는 보도했다. 지난달 15일 <시엔엔>(CNN)은 “미국의 검역 체계가 붕괴되고 있다”며, 미 축산협회 출신이 농무부 고위직에 대거 포진한 현실을 비판했다.

넷째,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 정부의 확고한 보장을 받아내겠다”고 하면서도 구체적이고 설득력있는 방침을 제시하지 못하고, “미국도 동맹국인 한국민의 뜻을 존중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는 말만 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공개할 수는 없지만,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것처럼’ 해석될 소지도 있지만, 미국이라는 나라의 실상을 알면 이런 해석은 그야말로 ‘제 논에 물대기(아전인수)’식 착각이 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련 추가 협상을 계기로 이명박 대통령의 대미외교를 한마디로 평가한다면 ‘한미동맹관계에 기초한 선처호소 외교’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한미동맹 관계라 해서 서로 ‘주고 받는 관계’라기 보다는, 이명박 정부가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양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승만의 '어리광 외교'와 이명박의 '선처호소 외교'

이승만 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 일하는 동안 미국 정부에 대해 나름대로 ‘할 말은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승만과 미국을 아는 전문가들은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 정부나 지도자를 상대로 할 말을 한 것은 독립국가의 지도자로서라기 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어머니’에 대한 어리광의 성격의 짙었다고 얘기한다.

자신의 젊은 시절 대부분을 미국에서 보냈고, 미국의 지원으로 공화국 정부의 최초의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이승만으로서는 ‘어리광’을 부릴 수 있을 정도의 기반을 미국에 갖고 있었던 셈이다.

이런 이승만 대통령의 미국 내 지지기반과 이명박 대통령의 그것은 비교할 바가 아니다.

▲ 경향신문 6월20일자 4면.

네오콘과 연결고리 확보 위해 쇠고기 시장 전면 개방 선물?

한미동맹이 모든 것을 저절로 해결해 주는 만능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명박 대통령은 몰랐을까?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미국 안에 별다른 지지기반이나 부시 정권과 특별한 연결고리가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이명박 대통령이 부시 정권과 네오콘(신보수주의) 등과 연결선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쇠고기 시장의 전면적인 개방을 ‘선물’로 주게 되었다는 얘기들이 보수세력 쪽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산 쇠고기 문제에서 주도권을 쥐고 결정권을 행사한 것은 협상 실무를 맡은 농림수산식품부와 외교통상부 관계자들이 아닌, ‘보이지 않는 비선(秘線)’이었다는 것이다.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손이 한미 정상회담 직전에 모든 것을 미국 측에 내주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 ‘보이지 않는 손’에게 쇠고기 시장 전면 개방이라는 조공을 바치도록 최종 결정을 내린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으로 보는 것이 맞다. 19일 이명박 대통령의 기자회견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런 정황이 엿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은 오직 ‘국익만이 모든 기준’이 되는 냉혹한 국제관계와 미국이라는 나라의 실체에 대해 무지했던 탓에 ‘엄청난 수험료’를 지불한 꼴이 됐다. 수험료를 지불하는 정도가 아니라 자칫 자신의 ‘임기 전부를 내줘야할 지도 모르는 상황'을 자초한 셈이다.

대통령이 모든 국정 현안에 대해 속속들이 알 수는 없지만, 아주 중요한 현안에 대해서는 상당한 정도를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참모들이나 전문가들의 조언이나 정책들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하물며 미국과의 관계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이명박 대통령은 모든 사안에 대해 자신이 옳고 그른 결정을 내리려 하지 말고 적절하게 권한과 책임을 분산하고 여유시간을 만들어 미국에 대한 ‘기초공부’라도 시작할 것을 권유한다.

미국의 국익 앞에 한미동맹은 없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미국의 국익을 뛰어넘는 한미동맹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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