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드라마 <구암 허준>이 14년 만에 귀환했지만 그 모습은 초라한 수준이다.
'김재철 체제' 이후 MBC의 모든 경영 지표가 악화된 상황에서, MBC는 지지부진한 시청률의 타개를 위해 <구암 허준>에 승부수를 걸었다. 봄 개편의 핵심인 <구암 허준>은 '170일 파업'을 거치며 '반토막'에 가까운 시청률 부진을 보였던 <뉴스데스크>를 8시로 옮겼을 때 만큼 '획기적 편성'이라며 MBC안팎으로 주목을 받았다.
일례로, MBC는 사극의 러닝타임을 기존의 72분이 아닌 일일드라마에 익숙한 '35분'으로 편성했고, <구암 허준>의 편성대는 KBS에서 메인 뉴스가 한창일 때인 9시다. 이는 드라마 몰입을 통해, 타 뉴스 시청자들을 흡수하겠다는 김재철 전 사장의 야심찬 기획이자 드라마를 <뉴스데스크> 앞뒤로 편성해 뉴스의 시청률까지 제고하겠다는 '기술적 전략'이었다.
MBC의 '도박', 현재까지는 참패
이러한 봄 개편은 저조한 시청률을 타개하려는 MBC의 불가피한 '모험'으로 해석되는 한 편, 그만큼 현재의 MBC가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는 '적신호' 상태라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MBC의 의도와는 달리 시청률은 전혀 들썩이지 않고, 현재까지는 잠잠한 수준이다. <구암 허준>은 시청률 10%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구암 허준>의 첫날 시청률은 6.7%(닐슨코리아 전국 기준)에 그쳤다. 2일에 방송된 11회가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으나, 이 역시 7.8% 수준으로 두 자리 수를 넘지 못했다.
아직 등장인물 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지 않는 시점이라는 데서 현재의 수치와 드라마의 성패를 직접적으로 연결짓는 것은 무리일 수 있겠으나, 초반 1~2주에 승패가 나는 드라마 광고 시장의 특성상 MBC의 광고 영업은 '난항'을 겪고 있고, 향후 전망 역시 별로 밝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MBC 광고 판매를 대행하는 코바코 관계자는 8일 <미디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현재로써 말 할 수 있는 것은 판매가 시청률에 비례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경기가 침체 상황이다 보니 판매에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아직 드라마에서 갈등이 불거지지 않은 초입이기 때문에 섣부르게 예측할 수 없으나 이런 식이라면 완판 혹은 80% 이상의 판매는 어려울 전망이다"라며 "우리가 영업을 통해 부진을 만회해야 하는 측면도 있지만 이 수준은 커버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며 현재의 상황을 설명했다.
프라임 시간대 방영되는 구암 허준의 광고 단가가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시청률로는 광고 판매 전망이 그리 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MBC가 120부 대작으로 야심차게 꾸린 <구암 허준>은 현재까지 뉴스의 시청률도, 드라마의 시청률도 잡지 못한채 광고시장의 '미아'로 전락하게 될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구암 허준, 합리적 절차가 '거세'된 기획
MBC내부에서는 <구암 허준>은 현직 PD들과 경영진 사이의 합리적인 토론과 절차를 걸쳐 기획된 산물이 아니라, 김재철 전 사장의 독단적인 '결정'에 의해 추진된 작품으로 회자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당초 봄 개편에 대한 논의가 부재했고, 광고시장의 상황, 기획과 편성 전반에 대한 MBC의 고민이 부족했다는 목소리가 나오며, '준비된 실패, 예고된 재앙'이었단 평가도 나오고 있다.
MBC PD A씨는 "이번 편성은 김재철 전 사장과 백종문 편성제작본부장의 '작품'으로 알고 있다"며 "사실 뉴스를 8시로 옮겼을 때부터 문제는 발생한 것이다. 뉴스를 옮기는 과정에서 합리적 절차, 토론이 전무했기 때문에 시장조사 같은 것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A씨는 "MBC는 뉴스를 8시로 옮긴 뒤에야 9시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모양새를 보였다"며 "그런 측면에서 구암 허준은 임시방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재영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본부장 이성주) 편제 민실위 간사도 <구암 허준>이 현재 보여주고 있는 결과보다 기획 당시의 과정을 지적했다. 김 간사는 "드라마가 편성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며 "면밀한 검토와 공식적인 편성 기획의 과정이 있어야 했는데, 이러한 MBC의 절차가 김 전 사장 체제에서 많이 무너졌다. 김 사장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돼 기획된 것이라면 지금의 성적은 필연적인 결과가 아닐까 싶다"고 꼬집었다.
지나치게 드라마 비율을 높인 것이 화근이었다는 자조섞인 비판도 나온다. A씨는 "9시에 드라마를 하고 10시에 또 드라마를 하는 등, 공영방송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드라마에 치중돼 있다"며 "이렇게 드라마 비율이 높다보니 시사나 교양 프로그램이 사라지고 소홀해 진다는 문제가 있다. 이런 식으로 상업적인 편성에만 골몰하게 되면 시청자들로부터 신뢰를 잃게 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구암 허준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새로워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또 다른 PD인 B씨는 "드라마가 안 되기만 바랄 수는 없다. 어떻게든 시청률을 회복하고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면서도 "이미 너무 많이 다뤘던 소재이기 때문에 새로운 내용이 없다는 게 큰 문제다. 새로운 것을 어떻게 드라마를 통해 구현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성패는 그것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어, B씨는 "드라마가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면서도 "그러나 반드시 짚어야 하는 것은 큰 드라마일수록 절차와 과정이 투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뭘 해도 안 되는 상황…MBC에 '적신호'
전문가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이승한 대중문화 평론가는 단순히 '구암 허준'에 국한할 문제는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 평론가는 "MBC의 프라임 시간대(7~10시)는 시청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며 "이 시간대의 프로그램 편성이 지나치게 자주 바뀌어 일관성을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MBC 내부에서 많은 고민을 하더라도 시청자들에게 전혀 전달이 되지 않는 게 더 큰 문제라는 말이다.
이 평론가는 "영화 관객과 달리 TV 시청자들은 소파에 기대서 채널을 돌리는, 즉 보수적인 소비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특성이 있는 매체가 TV임에도 MBC는 잦은 변화를 주면서 스스로 시청자들을 떠나게 만들었다"며 "그 시간대에 난리를 피웠으니, 초토화되는 건 예견된 일이다. 공영방송을 운운하지만, 김재철 사장이 부임한 시점부터 공영방송의 자질은 무너진 것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이 평론가가 지적한 것처럼 '김재철 체제' 하 MBC는 <놀러와>를 폐지했고, 그 자리를 대신한 <토크클럽 배우들>마저 폐지했다. 김 전 사장이 나간 이후에도 <컬투의 베란다쇼>가 여권의 유력 정치인을 풍자했다는 이유로 불방처리를 했다. '시청률 지상주의'에 매몰된 결과일 것이다.
<구암 허준>은 지금의 우려처럼 실패할 수도, 예상 외로 성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설사 실패하더라도 MBC라는 거대 방송사가 드라마 하나로 절체절명의 위기가 도래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러나 뭘 해도 안 되는 작금의 MBC 상황에서, MBC 스스로 김재철 사장이 임원들에게 주입한 이 '시청률 지상주의'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MBC의 초토화 상황"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