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밖에 두려운 게 없다'는 말, 흔히 해왔던 말인데 이번에 '진짜 우리가 독자를 무서워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무적인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어떻게 하면 이 뜻을 소중하게 잘 간직해서 경향신문을 발전시킬 수 있을까 두려운 마음입니다."

지난 12일 취임한 경향신문 이영만 사장은 최근 독자들의 호응과 지지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이 사장은 취임 4일만인 17일 국장과 부장, 평사원 인사까지 한 번에 내버렸다. 이 사장은 "경향신문에 쏟아지는 뜨거운 찬사를 살려야 할 시점인데 괜히 인사 때문에 술렁이면 안될 것 같아서 한꺼번에 인사를 끝냈다"고 말했다.

▲ 경향신문 이영만 사장. ⓒ송선영
이 국장은 지난 78년 신아일보에 입사해 80년 해직됐다. 90년부터 경향신문 편집국 체육부장, 매거진X 기획취재부장, 출판본부장, 편집국장, 광고마케팅본부장, 대외협력담당 상무 등을 맡아 일해왔다.

인사 마무리 작업으로 한창 바빴던 지난 17일 오후 경향신문에서 이영만 사장을 만났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최근 경향신문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높은데 실제로 경향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자진구독이 한 달 새 1만 부가 넘었다. 처음에는 갑자기 자진구독이 늘었다고 우리끼리 수근댔는데 하루에 300부, 400부까지 늘어났다. 이러다 말겠지 했는데 6주 연속 이런 흐름이 이어졌다. 우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국민들이 바른 언론에 대한 갈증 때문에 지지를 보내주는 것인데 이런 때에 조금이라도 실수하거나 독자들의 성원을 배신해서는 안되겠다 싶어 인사도 빨리 냈다. 작은 것이지만 판매국도 독자서비스국으로 이름을 바꿨다."

-인터넷 쪽 유입량과 광고 부분은 어떤가.

"경향닷컴 쪽은 역대 최고라는 보고를 받았다. 양적으로는 1.3~1.5배 정도 된다. 스포츠칸에 '쩐의전쟁'을 연재하고 있는데 SBS <쩐의전쟁> 드라마가 나갈 때 방문자수가 많이 늘었던 적이 있다. 지금은 그런 것과 상관없이 순수하게 촛불, 정치 관련 기사로 방문자수와 댓글이 많이 늘었다. 광고는 사실 별로 안좋다. 격려광고가 많이 들어오지만 단가가 낮으니까 사실 돈은 별로 안된다. 하지만 돈을 떠나서 기분은 상당히 좋다. 경기 때문에 기업이 약간 움츠려든 상황이라서 전체 광고 시장은 줄었다."

-조중동 광고중지 운동으로 한겨레와 경향이 부메랑을 맞았다는 분석도 있다.

"기업들이 광고 원고 자체를 안 만든다. 경향, 한겨레만을 위해 따로 원고를 만들지는 않으니까 조중동에 광고를 끊으면 경향과 한겨레에도 타격이 온다. 어차피 신문에 광고 안하려던 기업들은 어떻게 보면 잘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딜레마다. '조중동' 문제로 신문에 대한 독자들의 신뢰도가 떨어지면서 전체 신문 시장이 나빠졌다. 안타까운 일이다."

▲ 경향신문 이영만 사장. ⓒ송선영
-촛불집회 국면에서 지면이 다소 흥분했다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지면은 편집국장과 기자들이 만드는 것이니까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다만 구독자가 늘고 격려광고도 들어오니까 일시적 흥분상태일 수는 있다. 그러나 지면을 만드는 데 이를 반영한 적은 없다고 본다. 1~2개 그런 기사가 나올 수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차분하게 할 말을 했다고 본다."

-편집국장을 유임시켰는데 어떤 이유에서인가.

"잘 하고 있지 않나. 전임 사장이 시켰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기자들이 시킨 것이다. 기자들의 뜻이 그냥 갔으면 좋겠다는 것이었고 나도 굳이 '내 사람을 심어야겠다' 이런 생각은 없다. 편집국장 외에도 대부분 유임이다. 서로 다 아는데 사장 바뀌었다고 사람들 바꾸는 건 괜히 시간 낭비, 힘 낭비다. 내가 혹시라도 보수 성향으로 가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기자들이 많았는데 이번에 편집국장 유임되고 등기이사로 승진까지 되면서 불신은 어느 정도 해소됐다고 생각한다."

-사장 출마 때마다 정체성 논란이 일었는데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편집국장 할 때 실제 경영을 몇 번 도와준 적이 있다. 기업 쪽과 친하니까 보수로 가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실제 나를 겪어본 사람들은 부드러운 진보라고 이해한다. 모든 일에 핏대를 세우거나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폼 안 잡는 것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80년 신아일보에서 해직된 뒤 기업 홍보과장 제의도 거절하고 자존심 하나 지키면서 살았는데 계속 그런 얘기가 나오니까 속상했다. 편집국의 오해도 풀어야 하고 경영 개선에 대한 비편집국의 기대도 충족시켜야 하니 고민이다."

-매체 시장이 매우 어려운 상황인데 경영개선을 위한 전략은.

"뭐 대단한 전략이 있겠나. 일단은 지면평가를 제대로 받고 그에 적정한 광고금액을 받아내야겠다. 한겨레, 한국일보 등에 비해 경향신문의 광고 단가가 억울하게 책정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생활경제 정보를 담은 주간지 ‘비즈니스 경향’이 한 달 내 가시화될 것이다. 온라인 생활경제 매체와 IPTV도 준비 중이다. 방송 쪽은 승부가 금방 나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하다. 현재 관심 있는 몇몇 기업의 투자를 받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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