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프로그램 기획의 중요성과 경쟁력을 가진 영상 콘텐츠 개발에 힘쓰자

일본 공영방송 NHK에서는 지난 4월13일(일)과 20일(일) 양일간 NHK스페셜을 통해 “병의 기원(病の起源)” 시리즈 두 편을 방송했다. 제 1편은 “수면무호흡증”이었고 제 2편은 “뼈와 피부병”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요통, 당뇨병, 유방암, Dyslexia(난독증) 등 4편을 추가제작 후 방영할 예정이다. 모두 6편으로 기획된 이 프로그램은 그동안 NHK가 제작했던 다큐멘터리의 역량을 하나로 집적한 듯 흥미와 정보 그리고 강한 인상을 모두 보여주는 걸작으로 평가할 수 있다.

쉽고 명확한 프로그램 제목

우선 제목에서 우리는 찰스다윈의 <종의기원 : 種の起源 : On the Origin of Species>을 떠올리게 된다. 1859년 출판된 이후 생물진화론의 교과서 역할을 해 왔던 이 책의 제목은 너무도 유명하기 때문에 그것을 차용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NHK는 과감하게도 이 프로그램의 제목을 찰스다윈의 “종의 기원”으로 바로 연결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병의 기원(病の起源)”이라고 정했다.

보통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제목”이 도출되어 협의되면서 최종의 제목이 선택되어지는 것이 통상적인 수순이다. 따라서 시청자에게 쉽고도 명확하게 프로그램 성격을 전달하기 위한 제목은 해당 프로그램의 내용만큼이나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된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병의 기원(病の起源)”은 그 제목만으로도 프로그램의 성격과 내용을 짐작하기에 충분하다고 하겠다.

또한 이 시리즈의 가장 큰 기획 구성적 특징은 각 병(病)의 구체적 질환 증상이나 대처법 혹은 치료에 대한 정보제공이 아닌 그 병(病)의 기원을 소개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우리 방송은 KBS의 <현장기록 병원>을 비롯해 <마음> <남자의 몸> 등 많은 건강의료 관련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 방영해 왔으며 지금도 KBS의 <생로병사의 비밀>, <비타민> MBC의 <닥터스>, EBS <명의>등의 프로그램이 제작 방영되고 있다. 이처럼 의학, 건강관련 아이템은 방송 프로그램에서 빠지지 않는 소재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많은 방송 프로그램은 특정한 질병에 관한 이야기와 그것의 예방 그리고 치료에 관한 보편적 접근이 주류를 이루었던 것이 사실이다.

즉 프로그램의 접근방식에 유연성을 보이지 못했고 단순히 구성형식의 다양성에만 고민했던 것이 현실이다. 즉 콘텐츠 기획에서 대상을 바라보는 시점의 다양성 보다는 구성형태와 시청자를 의식하는 흥미위주의 내용구성이 우선시되었던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우수한 영상 콘텐츠로써의 경쟁력을 가지기 보다는 그저 방송시간을 채우기 위해 제작되는 영상 프로그램의 하나로 인식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콘텐츠 기획구성의 한계를 벗어던지고 범 지구인들이 보편적으로 시청 가능한 국제경쟁력을 가진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제작하려는 의지와 인식의 필요성을 가져야 한다.

아이템 접근의 차별성 - 병의 기원을 인류의 진화에서 찾다

NHK 다큐멘터리 <병의 기원>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아이템의 차별화 된 접근성을 들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이 프로그램 시리즈에서 다루고 있는 병(病)들이 Dyslexia(난독증)를 제외하고는 우리 일상에서 너무도 쉽게 접할 수 있거나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잠재적 질환들이라는 점이다. 수면 무호흡증, 당뇨병, 요통, 유방암, 피부병 등이 그것인데 이 같은 흔한 질환의 기원을 바로 인류의 진화와 관련해서 그 기원을 유추한다는 점이다.

기 방영된 제1편 ‘수면무호흡증(睡眠時無呼吸症)’에서 제작진은 이 질환의 기원을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단축된 구강(口蓋)구조에서 찾고자 한다. 또 한걸음 나아가 구강구조의 진화는 인류가 석기(石器)사용에 따라 부드러운 먹을거리 섭취가 가능해 지면서 구강의 단축을 촉진했으며 동시에 고도의 발음능력(發音能力)을 획득하며 언어와 문화의 발달에 기여했다고 소개한다.

또 2부의 ‘뼈와 피부병(骨と皮膚の病)’에서는 일조량 부족에 따른 “비타민D” 결핍문제를 적도와 위도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인류의 이동(脫아프리카)에서 그 기원을 찾고 있으며 인류의 적응방산(適應放散:adaptive radiation) 과정에서 멜라닌 수량의 가감에 따른 지역적응 문제를 통해 피부병이 발병하고 있다고 유추한다. 이러한 적응방산에 따른 문제는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으며 에스키모인들이 바다물범의 고기로부터 비타민D를 섭취했으나 식생활의 변화로 인해 비타민D의 결핍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환경적 변화에 대해서도 진단하고 있다.

또 앞으로 방영될 제3편 요통(腰痛)편에서는 요통(腰痛)의 원인을 인류가 두발로 직립보행을 하면서 얻게 된 숙명이라고 소개하고 더불어 아프리카의 원시적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요통이 발생하지 않는 사실을 소개함으로써 그 발생 원인의 비밀을 찾는다. 또한 ‘당뇨병’을 “인류 진화과정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부작용 혹은 불필요한 과욕의 산물”로 가정하고 그 기원의 뿌리를 찾아 나선다.

이처럼 본 다큐멘터리가 그다지 새롭지 않은 소재인 피부병과 골다공증, 수면무호흡증 등 일상적인 문제의 질환을 인류의 기원과 진화라고 하는 전혀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함으로써 시청자에게 이야기의 흥미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병(病)을 앓았던 경험자의 프로그램 진행

▲ 樹木希林(1943年1月15日生)배우. (본명 : 우치다 게이코)

樹木希林(1943年1月15日生)배우. (본명 : 우치다 게이코)

<병의기원>이 기존의 프로그램들과 차별화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해당 시리즈에서 소개하는 병(病)의 질환을 앓았던 경험이 있거나 현재 병으로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프로그램의 네비게이터로써 진행을 담당한다는 점이다.

즉 고고학, 의학 혹은 과학적 지식이 풍부한 전문가의 진행이 아닌 병력(病歷)이 있거나 혹은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는 사람이 프로그램을 진행함으로써 그 질환에 대해 매우 중립적인 입장에서 바라보고 소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병력(病歷)이 있던 진행자가 시청자 입장에서와 같이 동등한 시선에서 병(病)에 관해 이야기함으로써 내용의 친근성과 사실의 진실성 그리고 병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할 수 있다. 또한 전혀 새로운 사실에 대한 정보의 습득을 통해 프로그램의 흥미로움을 배가 시킬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동안 이 같은 다큐멘터리의 경우 대부분 해당분야의 전문가 혹은 얼굴이 잘 알려진 대학교수 등이 네비게이터로 출연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기존의 상식을 뛰어넘는 기획으로 프로그램의 이야기를 더욱 풍부하게 하는 동시에 시청자를 향한 홍보수단의 가치를 한 가지 추가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우리의 경우 대부분 프로그램 홍보를 위해 배우나 가수 혹은 유명 인사를 내레이터로 활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경우는 자칫 지난 3월에 방영되었던 MBC HD다큐멘터리 <갠지스>의 개그맨 김용만 사례와 같이 “다된 밥에 코 빠뜨리는 격”의 우를 범하게 되기도 한다. (내레이션 전달력에 대한 시청자의 지적 등의 문제로 MBC는 지난 4월6일과 5월 3일 성우 류다무현씨 내레이션으로 재제작 후 <갠지스>의 재방송을 실시했다)

방송편성의 유연성과 내용의 보편적 시각 글로벌 시장 겨냥한 기획구성

<병의 기원(病の起源)>은 모두 6편으로 기획되었다. 이미 지난 4월에 방영된 수면무호흡증과 뼈와 피부병을 다룬 두 편에 이어 3편 요통, 4편 당뇨병, 5편 난독증, 6편 유방암 등이 시간을 두고 방영될 예정이다. (2008.6.17일 현재 방영일 미지정)

기획은 모두 6부작 시리즈지만 제작여건과 방송편성 등 다양한 NHK의 방송국 내외적 요인에 따라 우선 2편을 제작 방영하고 이후 다음 편을 방영하는 유연한 편성정책은 해당 프로그램 제작진에게는 매우 중요한 배려가 아닐 수 없다.

NHK스페셜의 경우 <병의 기원(病の起源)> 이전에도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최종 완성된 이후에 일시에 방영되는 것이 아닌 제작일정에 따른 시리즈의 우선 혹은 딜레이 편성, 산발적 혹은 일정한 주기의 시간을 두고 이어서 방송되는 형태를 자주 보여줬다.

현재에도 <NHK스페셜>에서 방영중인 다큐멘터리 시리즈만 보더라도 <병의 기원>이외에도 8부작으로 기획제작방영 예정인 “沸騰都市”는 지난 5월 18일 1편 방영 이후 5월 19일 2편, 6월 22일 3편(예정), 6월 29일에 4편이 방송예정이며 이후 시리즈는 방영 일정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이다.

또한 지난 2007년 4월 <激流中?>이란 타이틀로 시작된 “중국의 오늘”을 조명하는 시리즈는 지난 6월 15일에 12번째 프로그램이 방송되었으며 8월 베이징 올림픽까지 지속적으로 관련 프로그램이 기획제작 될 예정이다.

이처럼 NHK스페셜의 유연한 시리즈편성 정책이야말로 다큐멘터리 제작진들에게 있어서 충분한 취재와 제작시간을 제공함은 물론 완성도 높은 양질의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는 기반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우리의 방송국들도 고민해 볼 수 있는 사례라고 하겠다.

일부에서는 시리즈 내용의 연속성을 문제 삼아 혹은 시청률을 계산하고 연속방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으나 다큐멘터리는 일반 드라마나 가십성 정보프로그램과는 달리 그 기간이 길어도 무방하다. 따라서 제작환경에 따라 다큐멘터리 시리즈편성은 유연하게 조절될 수도 있어야 한다.

(비슷한 사례로 KBS에서 지난 2007년 6부작 <차마고도>의 9월 본 방송이전인 3월 11일에 미리보기로 <차마고도 5000km를 가다> 방영했었다. 그러나 이는 박종우 감독이 제작한 <차마고도 1000일의 기록, 캄>의 SBS 방영에 대한 대응편성으로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야만 했던 사례일 뿐이다. 하기 관련기사 참고)

● 관련기사 <한겨레신문 2007.03.08>

KBS·SBS, ‘차마고도’ 다큐 동시방영
“우리가 먼저 기획” “김빼기냐” 주장…일부 화면은 제작사-방송사 ‘원조’ 논란

실크로드보다 200여년 앞선 문명 교역로 ‘차마고도’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두고 <한국방송>과 <에스비에스>가 갈등을 겪고 있다. 에스비에스가 지난 6일 <차마고도 1000일의 기록, 캄>(일요일 오후 11시5분) 2부작을 11일과 18일에 방송하겠다고 밝히자 올 하반기 방송을 목표로 6부작 <천상의 길, 차마고도>를 준비중이던 한국방송(1TV)이 7일 ‘맛보기’ 프로그램인 <차마고도 5000km를 가다>를 같은날인 11일 오후 8시에 긴급 편성하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차마고도는 중국 서남부 운남·사천에서 티벳을 넘어 네팔, 인도까지 이어지는 5000여km에 이르는 길로, 기원전 시기에 소금과 차 따위를 말에 실어 나르던 이동로다.

두 방송사 모두 “우리가 먼저 기획” 양쪽이 상반된 주장을 펴면서 ‘우연한 겹치기’로 볼 수 있었던 문제가 불거졌다. 한국방송 이도경 피디는 “에스비에스가 방영하는 다큐의 제작사인 낙미디어는 2005년 1월 방송된 한국방송 <티벳 소금계곡의 마지막 마방>을 제작한 곳으로, 이번에 당시 방송 화면을 일부 사용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에스비에스가 일부 지역만 조명한 다큐를 차마고도란 제목으로 내보내는 것은 한국방송이 방송사상 첫 유럽지역 선판매라는 성과를 얻으며 ‘2006년 대기획’으로 야심차게 준비한 프로젝트에 대해 김을 빼겠다는 게 아니겠느냐”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에스비에스 서유정 피디는 “누가 먼저 기획했는지는 살펴보면 알 일로 이번 사태는 다큐를 만든 박종우 감독과 한국방송의 문제”라고 말했다.

뿌리깊은 갈등 어디까지 갈까 <티벳 소금계곡…>과 에스비에스에서 방영하는 <차마고도 1000일…>을 만든 박종우 감독(당시 낙미디어 소속)은 “한국방송에서 방영한 <티벳 소금계곡…>의 저작권은 낙미디어가 갖고 있어 문제가 없으며, 차마고도는 2004년부터 관심을 갖고 <한국방송>보다 먼저 촬영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국방송이 기획과 방송 예정일을 자꾸 바꾸면서 다큐 제작일정에 차질을 빚었는데 에스비에스가 <차마고도 1000일…>의 방영을 결정해 사양할 이유가 없었다는 주장이다. 박 감독은 또 “차후에 독립 제작사가 거대 방송사에 밀려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사실을 밝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티벳 소금계곡…> 제작과 한국방송의 차마고도 기획에 모두 참여한 대진대 중국학과 홍희 교수는 에스비에스와 제작사 낙미디어 앞으로 공동저작물이었던 <티벳 소금계곡…>의 동의없는 사용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낸 상태다. 차마고도 다큐 의 동시 방영 논란이 방송사 간의 감정다툼으로 끝날지 방송사-제작사간 ‘원조’기획 논란으로 이어질지 주목을 끌고 있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병의 기원>이 주목받는 다큐멘터리인 이유 중 마지막은 바로 '내용과 소재의 보편성'이라는 점이다. 물론 프로그램의 네비게이터가 일본인 배우라고 하는 측면에서 본다면 일부분 국제경쟁력을 가지기 어렵다고 판단할 수도 있겠으나 이 부분은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해당 질환의 경험이 있거나 고민하고 있는 특정한 인물이기 때문에 해외 시청자들에게 큰 장애는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우리도 그들과 같은 질환을 고민하고 있는 상황에서 단지 일본인이 진행자라고 해서 큰 문제가 될 이유는 없다. 중요한 것은 다큐멘터리 <병의 기원>의 제작진들이 많은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고자하는 주제와 이야기 그리고 목적이 단순히 일본인이 아닌 세계인이 관심을 가질 수 있으며 궁금해 하고 있는 '보편적 사실'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지난해 KBS HD 다큐멘터리 <차마고도>와 관련한 많은 홍보성 보도와 뉴스를 접했다. 그 많은 뉴스의 대부분 내용은 ① 세계최초 HD제작 ② 해외선판매 ③ *** 작품상 수상 ④ 전 루트 세계최초 촬영 ⑤ 프랑스 등 유럽수출 ⑥ 콘텐츠 경쟁력 등등이다.

분명 전후사정이야 어찌됐든 KBS의 <차마고도>는 한국인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는 시선을 제공했으며 그 콘텐츠는 해외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하고 안주해야 할까? 아니다. 답은 명확하다. 새로운 눈과 시각을 가진 콘텐츠기획 인력을 양성하고 한류 드라마라고 하는 장르의 한계를 뛰어넘어 글로벌 시장을 두드릴 수 있는 다큐멘터리 영상콘텐츠를 기획 개발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NHK <병의 기원>을 통해 알아본 필자의 몇 가지 사례를 바탕으로 국내 제작자들의 열린 인식과 방송편성담당자들의 유연한 편성정책 그리고 새로운 사고를 위해 자유롭게 상상 할 수 있는 국내 영상 제작환경의 조성이 필요하다.

카메라의 "ON"버튼만 누르면 "그림"이 되고 "이야기"가 되는 <인도><네팔><몽골><부탄><스리랑카><베트남><중국><탈북자> 이야기를 뛰어넘는 세계인들이 보편적으로 시청 할 수 있는 진짜 다큐멘터리의 기획과 제작에 더 많은 영상 제작자들의 고민과 행동이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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