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2008년)까지 이 나라엔 웬 언론사가 그리 많았던가. 전두환·허문도는 그런 대한민국 언론판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타임머신 타고 언론 통폐합 직후, 그러니까 1980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겠지? 전국 신문·방송 다 합쳐봐야 열 손가락 몇 번 쥐었다 폈다 하면 셀 수 있었던 그 시절에도 언론이 너무 많다고 여겼으니 작년엔 오죽했을까. 이 자들은 다시 쿠데타를 꿈꿨을지도 몰라. 다시 쿠데타를 일으킨다면 역시 언론 통폐합부터 하려들겠지. 사실, 언론들, 국가 발전에 하등 도움이 안 되는 것들이 설쳐대기는 삼강오륜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 같으니, 나부터도 그 심정 백번 이해하고도 남지. 하지만 난 군홧발과 달라. 최시종도 말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단순무식한 건 결코 작업화가 할 짓이 아닙니다, 각하!”

언론사가 많다는 건 역으로 몇 개 언론사쯤은 티 안 나게 손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 물론 핵심은 KBS와 MBC의 주인 찾아주기. 그러나 명색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면서도 대한민국에서 주인이 제몫 주장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야. 이완용 송병준의 자손들이 조상 땅 찾으려고 벌이는 송사 투쟁이 얼마나 눈물겨운지만 봐도 알 수 있잖아. 처음부터 노른자위 땅에 불을 지폈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되기 십상이지. 그래서 나, MB는 물타기용으로 미리 몇 군데 기관에 낙하산을 떨어뜨렸던 거야. 스카이라이프, YTN, 아리랑TV, 그리고 방송사의 돈줄을 쥐고 있는 방송광고공사. 다들 대선 때 내 특보를 했던 치들을 마름으로 앉혔는데, 더러 반발도 했지만 대체로 군소리 없더군. 하여튼 머슴들이란.

▲ 고엽제전우회 회원 200여 명이 지난 13일 KBS 본사 앞에서 '정연주 사장을 끌어내라'고 외치고 있다. ⓒ곽상아
하지만 그토록 치밀하게 계산을 하고 사전준비를 했는데도, KBS와 MBC 주인 찾아주기는 쉽지 않았어. (아, 그 순간을 생각하니 갑자기 술 한 잔이 생각나네. 이봐, 아가씨. 여기, 위스키 한 잔! 뭐? 아가씨가 아니라 기자라고? 여기자가 아가씨가 아니면, 아줌만가? 어, 왜 눈에 쌍심지 돋우고 그래? 내가 마사지 걸이라고 부르기를 했어? 아니면 정몽준, 정두언, 최연희처럼 만지기를 했어? 왜 다들 날 쳐다봐? 이봐, 대변인!(대변…, 언제 불러도 어감이 안 좋단 말야.) 프레스 프랜들리 어떻게 된 거야? 친구끼리 이렇게 나와도 되는 거야? 일단 오늘 1호기 안에서 있었던 일, 엠바고부터 걸어.)

KBS나 MBC나, 마름·머슴 할 것 없이 한 성깔 하더라고. 하지만 내겐 역시 최시종이 있잖아. “각하! <주유소 습격사건>도 안 보셨습니까? (어, 그거 내가 BBK 사업할 때라 워낙 바빠서….) 우선 한 놈만 쥐어 패십시오.” 옳거니! KBS 사장은 감사원 특별감사에 검찰 조사까지 받아 이미 곤죽이 됐으니, 그놈부터 팰 일이었다. 더구나 “마름이 곳간 비게 했다”고, 일부 머슴들이 “사장 물러가라”며 들고 일어나지 않았는가 말야. 이쯤 되면 애국자들이 움직여야 되는데…. 내 나라 남의 나라 가리지 않고 목숨 걸고 지켰던, 나라에서 돌봐주기는커녕 내팽겨쳐 놔도 때만 되면 거리로 나와 한손에 태극기 다른 한손에 성조기 들고 거듭 애국하는 그 원로분들 말야.

애국자들도 KBS·MBC 주인 찾아주기가 얼마나 중요한 애국인줄 잘 알더군. 누가 보면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했을 거야. 그분들, 아주 결정적인 애국사건 때만 들고 나오는 가스통까지 차에 매달고, 고지 탈환 백병전을 치르듯 노구를 이끌고 KBS로 쳐들어갔지. 무슨 스페셜인가 하는 다큐멘터리가 방송되던 시간이었는데, 급기야 방송이 중단되고 ‘동물의 왕국’ 사자 교미 장면으로 긴급 땜빵이 됐지. 그때 알았어. 그분들은 이미 2000년에도 한겨레신문사에 쳐들어가 쑥대밭을 만든 장본인, 불패의 베테랑들이라는 것. 게다가 그분들은 일을 하고나서 따로 뭘 바라지도 않았어. 국가기간방송에 쳐들어가면 법으로 엄한 처벌을 받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을 감행했고, 마침내 몇 명은 자랑스럽게 감옥에 갔지. 애국자는 진짜 애국자인데, 그분들의 애국심을 계속 고취시키려면 잘 대해줘선 안 돼. 자신들이 누구 때문에, 왜 고통받는지도 모르는 채 계속 고통받도록 해야 해. 그게 그분들을 끝까지 애국할 수 있도록 국가가 돕는 일이야.

국가기간방송이 공격을 받았으니 나라가 얼마나 시끄러웠겠어. 벌집 쑤셔놓은 듯했지. 애국자분들에게 호되게 당한 적이 있는 한겨레는 언론탄압이라고 길길이 날뛰고, 철없는 일부가 동조하고 나서더군. 하지만 이런 ‘국난’ 때마다 분연히 나서는 종교인들이 있으니, 이분들 덕에 대한민국이 그나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아니겠어? 어쨌든 시장 할 때 서울시를 봉헌한 건 정말 잘한 일 같아. 애국적 종교인들이 KBS 앞에서 대대적인 기도회를 연 것도, 서울시를 봉헌한 데에 대한 은혜 갚음과 국가기간방송도 곧 봉헌할 거라는 기대감과, 내 임기 내에 마침내 대한민국마저 봉헌할 거라는 굳센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거야. 그들은 기도하고 또 기도했어. “KBS가 왼쪽 뺨을 맞았으니 오른쪽 뺨을 내밀도록 해 주소서”, “누가 어떻게 실정법을 어겼든, KBS의 원죄보다 클 수는 없나이다”, “주인을 섬기지 않고 사탄을 섬기는 저 길잃은 어린양, KBS를 구원하소서”…. 종교인들의 기도소리가 3박4일을 끊이지 않고 여의도에 메아리쳤지.

To be continued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