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제윤 금융위원장 후보자가 ‘정책금융체계 재편’에 대한 의지를 수차례 밝히면서 미묘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18일 진행된 금융위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신제윤 후보자는 “미래를 창조하는 금융을 위해서 높은 수준의 리스크가 수반된다”며 “정책금융체계를 전반적으로 검토하고, 정책금융의 선도적, 선별적 지원 역할을 강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간 언론 등을 통해 보도된 신제윤 후보자의 정책금융체계 재편에 대한 의지를 다시 한 번 밝힌 것이다.

▲ 역대 금융위원장 가운데 첫 인사청문회에 나선 신제윤 금융위원장 후보자가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답변 자료를 살피고 있다. ⓒ뉴스1

이는 김석동 전임 금융위원장이 퇴임 시 남겨진 과제로 ‘우리금융 민영화’와 ‘정책금융체계 재편’을 꼽은 것의 연장선상에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취임 당시부터 여러 기관으로 난립돼있는 정책금융 분야를 재편하기 위해 정책금융공사를 순수 지주회사로 놓고 산하에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 등을 묶는 방식을 고민했으나 결과적으로 실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선 기관에서는 벌써부터 이를 놓고 일정 정도의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정책금융체계 개편이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각 기관의 이해관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정책금융공사의 경우 정책금융체계 개편으로 인해 대규모 공채를 실시하게 될 것이라는 소문이 취업준비생들 사이에 돌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가장 논란이 뜨거운 부분은 산업은행 민영화와 관련된 부분이다. 특히 신제윤 후보자가 잔여 임기가 남은 경우라도 새 정부와 철학을 같이 하지 않는 금융기관장의 경우 교체를 건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혀 분위기는 더욱 미묘해지고 있다.

‘산업은행 민영화’의 결론에 이르기까지

한국산업은행의 전신은 1906년 설립된 농공은행을 1918년 합병한 조산식산은행으로 알려져 있다. 1954년 4월에 한국산업은행법에 의해 설립된 특수법인이다. 애초에는 ‘국책에 순응하여 국민경제의 안전과 산업부흥의 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중요산업자금을 융자관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특히 개발연대에는 중화학 공업 육성 등을 위한 자금 융통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시대가 변화하면서 한국산업은행의 역할도 변모해야 한다는 구상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산업은행의 위상을 국책은행에서 상당히 벗어나는 것으로 하여 시장에서 정책금융과 유사한 역할을 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런 구상의 전제가 제출된 것은 참여정부 시기다. 2003년 12월 노무현 당시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정과제회의에서 ‘동북아 금융 허브 추진 전략’에 대한 로드맵이 확정됐다. 주요 내용은 신성장동력으로 금융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사모펀드 등을 육성하고 외국 금융자본을 유치하며 한국투자공사(KIC)를 설립해 국부펀드에 준하는 공격적인 자금운용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은 결과적으로 실패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이 실패의 원인을 ‘금융인프라 부족’ 등에서 찾았다. 따라서 이에 대한 해법으로 산업은행 민영화와 새로운 정책금융기관의 설립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산업은행이 담당하던 정책금융기능은 새로운 정책금융기관으로 이관하고 산업은행에는 상업금융 기능만 남겨 민영화를 해 대형투자은행으로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산은지주회사와 한국개발펀드(KDF)의 설립이 추진됐는데 한국개발펀드(KDF)는 이후에 정책금융공사로 명칭이 변경됐다.

▲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된 산업은행 민영화 계획

이 중 산업은행을 대형투자은행화 하자는 아이디어에서 메가뱅크 논란이 제기됐다. 강만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이 직접 대통령에게 ‘챔피언 뱅크’ 아이디어를 제출한 데에서 시작된 논란이다. 당시 민주당은 ‘관치금융이 부활’한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이 논의가 산업은행 민영화 논의와 섞여 산업은행 민영화 시도는 정치권의 반대로 번번이 좌절됐다. ‘우리금융 민영화’의 경우 외환위기 시기 투입된 공적자금을 회수해야 한다는 명분이 있지만 ‘산업은행 민영화’의 경우는 대형투자은행화 이외에는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산업은행의 운명은?

따라서 신제윤 후보자의 ‘정책금융체계 재편’ 구상에는 필연적으로 산업은행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산업은행의 민영화를 중지시키고 다시 정책금융기관화 할지, 아니면 민영화를 추진하고 나머지 정책금융기관들에 대한 통폐합을 진행할 지에 따라 전체적인 그림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신제윤 후보자의 발언들만 놓고 보면 아직 명확한 상은 그려지지 않는다. 일부 언론 보도에서 신제윤 후보자가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내 중장기보험사업, 정책금융공사 내 해외프로젝트 파이낸싱(PF) 기능을 한 데 묶어 대형 국책은행을 탄생시키는 소위 ‘대형수출신용기관’(ECA)형태를 고려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보도가 나오고 있으나, 이럴 경우 산업은행이 어떤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인지 여부가 분명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 강만수 산은지주 회장. 외환위기 당시 재정경제부 차관이었으나 책임을 지고 물러나 10년 간 사실상 야인생활을 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냈다. ⓒ뉴스1
다만 18일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가 금융위원회에 내부 컨설팅 결과를 보고했다는 보도는 이후 상황을 단편적으로 추측할 수 있게 한다. 산업은행 측은 정부가 대주주를 유지한다는 전제 하에 기업공개(IPO)를 통한 시장형 정책금융기관으로 자리 잡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책금융공사의 경우 산업은행의 민영화를 전제로 순수정책금융기관으로 차별화 하겠다는 내용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핵심 내용만 놓고 보면 이명박 정부가 구상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은 역할 배분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만, 당분간 산업은행이 정부가 대주주 자격을 유지하는 ‘기업은행 모델’로 갈 것인지 완전 민영화를 할 것인지에 대한 이견이 존재하는 상황이나 2014년 5월까지 산업은행이 지분 매각을 1차 시행할 가능성이 점차 희박해지고 있기 때문에 산업은행의 시장형 정책금융기관화를 전제한 협의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신제윤 후보자의 발언은 여전히 신중하다. 17일 신제윤 후보자가 국회 정무위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질의에 대한 서면 답변에는 “우리금융 매각은 빠를수록 좋지만 산업은행의 경우 조속한 민영화가 필요하다는 견해와 정책금융기관으로서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피력한 것이다.

강만수를 어찌 할 것인가?

이는 물론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의 이견을 고려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강만수 산은지주회장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와도 연관되어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강만수 산은지주회장은 소위 ‘모피아의 대부’로 불린다. 강만수 회장은 행시 8회 출신으로 현업에 종사하는 소위 모피아 출신 인사 중에서는 최고참으로 알려졌다. 신제윤 후보자는 행시 24회로 관료의 논리로 보면 그야말로 ‘까마득한’ 후배다. 재무부 출신 경제 관료를 의미하는 모피아 사회에서는 위계질서가 강력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차기 금융위원장을 맡을 신제윤 후보자가 강만수 회장을 쉽게 상대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문제는 강만수 회장이 존재하는 한 산업은행을 정부 뜻대로 처리하기가 어려우며 동시에 산업은행을 대상으로 무엇을 하더라도 정치적 논란에 시달릴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강만수 회장이 존재하는 한 정책금융체제 개편에 대한 구상도 그 필요성은 인정되나 현실적으로 쉽게 이루어지기 힘들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 감사원이 산업은행에 대한 지적을 보도한 한국일보 15일자 기사.

이러한 기류를 반영한 것인지 최근 감사원이 산업은행의 ‘다이렉트 예금’ 상품에 대해 금리를 과다하게 책정했다는 지적을 한 것에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강만수 회장 측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다이렉트 상품은 역마진이 아니다”라며 “감사원 논리대로라면 재형저축도 (역마진이기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한다”는 반박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끝까지 책임지는 게 공직자의 자세”라며 자진사퇴를 고려하고 있지는 않고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나는 국책 금융기관장으로서 인사권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함부로 행동할 수 없다”고도 첨언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금융위원장이 교체 건의를 하는 경우 어쩔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하에서 강만수 회장의 운명이 어찌될지 새삼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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