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범죄처벌법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SNS 등의 공간에서는 ‘과다 노출’이 특히 화제가 됐다. 유신이 부활했다는 식의 반응도 많았지만 ‘오해’라는 반론도 만만찮았다. 경찰은 “이전의 법에서는 즉결심판을 받아야 했지만 새로운 법에서는 범칙금 납부만 하면 돼 처벌 절차가 간소화 된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프레시안은 이러한 내용을 근거로 한 기사를 쓰기도 했다.

▲ 경범죄처벌법 시행안 개정에 대해 보도한 프레시안의 11일자 기사.

경범죄처벌법 시행령 개정 때문에 미니스커트와 장발 단속이 부활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경범죄처벌법에 모호한 부분이 많지만 상당 부분은 사회적 기준에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경범죄처벌법의 ‘남용 금지’ 조항은 경범죄처벌법이 과거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방지책이다. 미니스커트는 입던 대로 계속 입으셔도 된다.

물론 이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경범죄처벌법은 없어도 되는 법’이라는 주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경범죄처벌법은 일제 강점기 시행되던 ‘경찰범처벌규칙’을 거의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또, 경범죄처벌법에서 규정하는 상당 부분은 법의 다른 조항으로도 처벌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바바리맨’의 경우는 경범죄처벌법의 과다노출이 아니라 공연음란죄나 아동복지법 위반 등으로 처벌한 사례가 있다. 이런 주장에 따르면 경범죄처벌법의 통고대상을 기존 21개에서 45개로 확대하기로 한 것은 문제가 있다.

▲ 박근혜 대통령이 11일 오후 청와대에서 새 정부 장관들이 참석하는 첫 국무회의에 참석하여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뉴스1

새로운 시행령은 새로 개정된 경범죄처벌법에 근거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기존 경범죄처벌법은 54개 범죄행위 중 21개 행위에 대해 특례로 범칙금을 부과하도록 돼있는데 작년 개정돼 올해 3월 22일 부터 시행되는 경범죄처벌법은 45개 범죄행위 전부에 대해 범칙금 부과가 가능하도록 돼있기 때문이다. 기존 경범죄처벌법에서는 특별히 범칙금 부과로 처벌하게 되어 있는 행위가 아닌 것에 대해서는 즉결심판에 넘겨져 판결을 통해 1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과료의 형을 받도록 되어 있었다. 즉, 과거에는 판사의 판결을 받을만한 범죄행위도 이제는 범칙금 부과로 ‘간편하게(?)’ 때울 수 있다는 것이 경찰 측의 설명인 셈이다.

이게 좋은 얘길까? 꼭 그렇지는 않다. 1994년 소위 ‘배꼽티 단속 사건’이 시사하는 바를 다시 돌아보자. 배꼽티 단속 사건이란 1994년 경찰은 배꼽티를 착용한 한 여성을 경범죄처벌법으로 단속해 즉심에 회부했으나 광주지법의 판사가 무죄 판결을 내린 사건을 말한다. 이 판례로 인해 경찰의 단속 기준이 바뀌었다. 1996년 경찰은 ‘과다노출 경범죄 처벌 집중단속’을 통해 지나친 노출이나 애정행각 등을 집중단속 했지만 배꼽티와 미니스커트는 ‘성범죄를 유발할 수 있다’는 지도장을 발부하고 즉심에는 회부하지 않기로 했다. 이처럼 사법부의 판단이 경찰권 남용에 제동을 건 사례가 있는 것을 상기해보면 ‘규제가 완화된 것이다’ 라는 경찰의 주장이 전부 옳은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달을 수 있다.

입법은 국회가 했고 이에 따라 시행령을 개정한 것뿐인데 왜 경찰을 비난하느냐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 역시 다시 생각해볼만한 지점이 존재한다. 경범죄처벌법은 2012년 3월 국회에서 의결됐는데 이는 2009년부터 논의된 경범죄처벌법 개정 필요의 여러 부분을 반영하고 다듬어 하나의 안으로 전부개정을 시도한 것이다. 이때 대표 발의한 한나라당 이인기 당시 행안위원장은 경찰 출신으로 경찰의 이해관계를 상당히 잘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이인기 전 한나라당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자이던 시절 선거캠프에서 직근총괄본부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사진은 박근혜 당시 후보자에게 임명장을 받는 이인기 전 의원. ⓒ뉴스1

그 외에도 경범죄처벌법과 관련해 경찰 측의 의견이 언론 등을 통해 계속 피력됐던 정황이 있다. 2009년 초에는 경찰의 불심검문에 불응할 경우 경범죄로 처벌할 수 있게 한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이 당시 이러한 의견을 반영한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안 역시 이인기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발의 했다. 경찰 측은 직무집행법 개정이 안 되면 경범죄처벌법 개정을 통해서라도 불심검문 불응에 대한 처벌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불심검문은 경찰이 영장 없이 개인의 신상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으로 논란의 대상이 돼왔다. 시민은 불심검문을 거부할 수 있는데, 실제 현장에서 경찰들이 다양한 방법을 통해 불심검문을 강제해 논란이 된 사례도 많았다. 때문에 불심검문 불응에 대한 처벌은 유야무야 없던 일이 돼버렸다.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경찰의 단속권 강화에 대한 의지다.

새로 개정된 경범죄처벌법에는 특이한 조항이 있다. 대부분의 범죄행위는 1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과료형이지만 ‘술에 취한 채로 관공서에서 몹시 거친 말과 행동으로 주정하거나 시끄럽게 한 사람’은 ‘6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으로 처벌하게 돼있다. 소위 ‘주폭’에 대한 조항이다. 새로운 시행령은 이에 대한 범칙금을 정하지 않고 있다. 즉, 주폭은 통고대상이 아니며 즉결심판 대상인 것이다. 왜 하필이면 60만 원일까? 개정안 논의 당시 일부 시민단체들은 형사소송법 제70조 3항에서 5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과료에 해당하는 사건의 경우 현행범으로 구속을 할 수 없도록 정한 조항을 피해가려는 것 아니냐며 반발했다. 즉, 일반적으로 경범죄의 경우 현행범으로 구속할 수 없지만 주폭에 대해서만은 구속을 하기 위해 마련한 조항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역시 경찰의 단속권 강화라는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이 조항은 새로 개정된 경범죄처벌법에 그대로 들어갔다.

단지 경범죄처벌법을 두고 ‘싱가포르 판타지’ 등을 논하는 게 과도하지 않냐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싱가포르의 예는 경찰 쪽에서 먼저 든 것이다. 2012년 6월 김용판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공권력 강화가 아니라 법질서 확립”이라면서 “싱가포르가 유지되는 이유는 강력한 법 집행 때문”이라고 발언했다. 주폭 척결에 대한 의지가 어찌나 높았던지 김용판 청장은 ‘주폭’이란 단어를 특허청에 상표등록(등록번호 40090705400000)까지 했다.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막겠다는 다소 납득이 어려운 이유다.

새로운 경범죄처벌법과 그 시행령 덕분에 경찰이 더욱 공격적으로 경범죄 단속을 할 수 있게 됐다는 견해도 있다. 이전에는 일부 범죄행위에 대해서만 범칙금을 부과할 수 있고 나머지는 즉결심판에 넘기도록 돼 있었으나 ‘배꼽티 사건’에서 보듯 사법부에서 경찰의 판단과 다른 판결을 할 경우 관련 조항에 대한 경찰의 단속권이 무력화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확실하지 않은 것에 대해 경찰이 섣불리 단속을 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측면이 있었다. 물론 새로운 경범죄처벌법에 따르더라도 통고처분서 수신을 거부하면 즉결심판에 회부된다. 하지만 경찰의 단속권이라는 측면에서 개정된 경범죄처벌법과 시행령이 훨씬 경찰의 입장을 강화시킨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 조현오 전 경찰청장. 2012년 말에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사자(死者)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경찰 내부의 ‘실적주의’가 새로운 경범죄처벌법 때문에 날개를 달 게 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을 수 있다. 2011년 조현오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의 ‘실적주의’를 비판했다 파면당했던 채수창 전 서울강북경찰서장의 경우를 돌아보자. 2011년 7월 서울 양천 경찰서 소속 경찰관 5명이 절도·마약 소지 혐의 등으로 조사를 받던 피의자 6명에게 이른 바 ‘날개꺾기’ 등의 가혹 행위를 한 혐의가 적용돼 구속 기소되자 채수창 당시 서울강북경찰서장이 “조현오 서울지방경찰청장의 실적주의가 지나친 범인 검거 실적 경쟁으로 변질돼 양천서 고문의혹 사건의 원인을 제공했다”며 공개적으로 조현오 당시 서울청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채수창 당시 서장은 이후 파면을 당했으나 소송을 통해 복직을 했고 현재는 전남지방경찰청 경비교통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이러한 사례가 존재하므로 경찰의 실적주의와 개정된 경범죄처벌법과의 ‘시너지 효과’(?)에 대해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설명해도 많은 사람들은 ‘경찰이 일을 열심히 하는 게 무슨 문제냐?’, ‘주폭은 유치장에 처넣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라고 반응할 것이다. 따라서 일부 진보적 인사들이 ‘싱가포르 판타지’를 지적하는 게 불합리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국민의 다수가 싱가포르와 같은 강력한 치안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며 정부가 이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려 하는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유실될 수많은 약자들의 인권을 다시 돌아보자는 정도의 목소리도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미니스커트가 문제가 아니라 경찰이 문제다. 이런 지적을 합리적으로 받아들이고 고민하는 문화가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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