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야당대표 시절 발언’을 상기하길 촉구했다. 동아일보는 11일 ‘대한민국 뉴 프레지던십’이라는 제호의 기획을 통해 ‘역지사지 리더십’에 대해 논하며 박근혜 대통령이 야당 대표이던 시절 당시 참여정부에 했던 문제제기들을 되돌아볼 것을 권했다.

▲ 민주통합당 박기춘 원내대표가 11일 오전 서울 영등포당사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동아일보에 보도된 "'힘센쪽이 양보해야 한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한나라당 대표 시절 발언을 소개하며 정부조직법 협상과 관련한 청와대와 여당의 양보를 촉구하고 있다. ⓒ뉴스1

박근혜 대통령은 참여정부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 대표시절 카리스마적 지도력을 뽐내며 대정부투쟁의 선두에 섰다. 사립학교법 무효화를 주장하며 3개월간 장외투쟁을 벌여 사립학교법 재개정을 이끌어 낸 것은 유명한 사례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시절, 현재 야당 입장과 유사

인사 문제에 있어서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강경한 입장을 표현한 일이 많았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김혁규 전 경남지사를 국무총리에 기용하려 하자 “양보는 힘 있는 쪽에서 하는 것”이라며 제동을 걸기도 했다. 유시민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지명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국무위원 청문회의 입법 취지를 존중하지 않고 무시하는 데 문제가 있다”며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정부조직법 개정과 관련해서도 참여정부가 방위사업청 신설을 핵심으로 하는 개정안을 제출하자 “제2의 창군에 버금가는 대역사인데도 여권이 충분한 분석이나 의견 수렴 없이 밀어붙이고 있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이런 사례들은 현재 정부조직법을 둘러싼 정국과 비슷한 갈등의 양상을 보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동아일보의 지적은 당시와 현재의 정국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을 상기해 앞뒤로 막혀있는 현재의 정치적 난관을 풀어보라는 충고로 해석된다.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의 권한, 역할 등을 두고 여·야가 극한대치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 보는게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에게 '역지사지 리더십'을 주문한 동아일보의 11일자 기사.

또. 동아일보는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시절 내세운 공약들을 되짚으며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선장없는 야당’을 압박하면 강경파가 힘을 받기 마련이라며 야당과 파트너십을 강화할 것을 주문했는데, 이 역시도 비슷한 맥락에서 내놓는 충고다.

대통령과 야당 대표라는 상반된 입장

정국이 변할 때마다,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바뀔 때마다 정치인들이 말과 행동을 달리 하는 것은 특이한 일이 아니다. 아니, 이런 것들은 오히려 일반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왜 이런 상황이 정치권에서 흔하게 일어나는가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말바꾸기’ 때문에 정치권에 일반적 냉소를 보내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은 이러한 의문을 더욱 강하게 제기한다.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시사평론가는 “야당 대표는 국민과 이익집단을 대표해서 정부정책에 문제를 제기해 해 사태를 바로잡으려 하는 반면 대통령은 국가를 통치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설정해야 한다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국가를 통치하는 것과 국민과 이익집단을 대변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행위라는 것이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이 야권과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 '국가적 통치'의 문제인지, '방송장악'의 문제인지는 더 따져볼 필요가 있겠으나 원론적인 측면에서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후 첫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취임 8일째인 이날 대국민담화를 통해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조속한 개정 필요성을 강조하고 야당의 협조와 국민의 이해를 거듭 요청했다. ⓒ뉴스1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박근혜 대통령의 서로 다른 입장은 이런 곤란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내세운 논리는 “야당의 입장을 반영하고 함께 논의해달라”는 것이었는데 오늘 날 박근혜 대통령이 주장하는 것은 “정부가 국가를 제대로 통치할 수 있도록 협력해달라”는 것이다. 여·야의 대결이 아니라 박근혜와 박근혜를 대결시킬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지금 상황에 한정한다면 대통령과 야당 대표 모두에게 정권 초기가 중요하다는 점도 이러한 대립이 심화되고 있는 한 이유로 평가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정치권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정권 초기는 대통령의 힘이 가장 센 때”라면서 “대통령이 힘을 이용해 밀어 붙이니 야당도 가만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야당 대표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대통령의 힘을 견제하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는 시도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각자의 사정이 있다’는 항변이다.

의회민주주의의 딜레마

물론 이러한 말 바꾸기를 윤리적으로 비난만 할 수는 없다는 주장도 있다. 의회민주주의에서는 정치인이 국민과 이익집단을 대변하면서도 동시에 국가의 통치에 대해 고려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게 되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정치인은 국민과 정부 사이를 연결하는 존재”라며 나름의 고충을 토로했다. 국민과 이익집단의 의사와 국가적 통치의 문제가 서로 일치할 때도 있지만 많은 경우 양자가 일치하지 않는 사례가 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사이를 조율하고 최적의 결과를 낼 수 있도록 고민하는 것이 정치인이 해야 할 일인데, 이것이 성공적으로 평가받게 되는 일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의회민주주의는 시끄러운 것이 당연하다는 관점도 있다. 하원의장을 지내기도 한 영국의 한 정치인은 “반대파에 대한 예의가 겉치레여서는 안 된다”라면서 “시끄럽지도, 논쟁적이지도 않은 의회는 진정한 의회라고 부를 가치가 없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의회민주주의에는 서로 다른 입장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만으로도 의사당이 시끄러워지지만 이러한 소란은 서로 동의할 수 있는 결과를 찾는 과정의 일부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따라서 ‘박근혜’라는 동일한 정치인이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게 된 ‘박근혜 대표’와 ‘박근혜 대통령’의 불일치도 정치인이 가지는 어떤 숙명일 수 있는 지점이 분명 존재한다. 문제는 이 불일치가 결국 생산적인 과정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인데, 동아일보의 ‘역지사지 리더십’ 기획은 다소 부족한 점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점에서 긍정적일 수 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남은 기회를 통해 보다 근본적인 수준에서 의회민주주의의 명암을 평가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