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내부의 기류가 심상찮다. 이명박 정부 시절 친박 대 친이로 갈려 전쟁을 치렀던 후유증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가깝게는 국회선진화법을 둘러싼 논란으로 이러한 상황을 짚어볼 수 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쉽게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과 관련한 새누리당 의원들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새누리당 내부의 계파 질서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확인 가능하다.

국회선진화법 개정 여론을 둘러싼 신경전

소위 쇄신파로 분류되는 새누리당 남경필 의원은 7일 트위터를 통해 “국회선진화법을 제대로 시도해보지도 않고 개정을 말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이는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 유기준 최고위원 등이 국회선진화법의 개정을 말하는 데에 대한 반발로 읽혀졌다.

과거 친이계로 분류되던 심재철 새누리당 최고위원의 발언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심재철 최고위원은 “국회선진화법은 두고두고 국회를 식물로 만드는 법”이라며 “황우여 원내대표가 진두지휘 한 것이니 만큼 결자해지해야 한다”고 발언했는데, 이는 대표적인 친박계 인사들의 국회선진화법 개정 여론에 동의하면서도 애초에 그 책임이 친박계에 있음을 강조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 새누리당 내 비주류의 주요 인사로 꼽히고 있는 남경필, 심재철, 정몽준, 이재오 의원. ⓒ뉴스1

국회선진화법은 2012년 5월 도입됐다. 2010년 12월 4대강 관련 법안과 새해 예산안 날치기 처리 직후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새누리당은 2012년 4월 총선에서 국회선진화법 도입을 공약으로 제시했는데, 당시에도 친이계 등 당 내 비주류들은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다.

하지만 박근혜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 “총선 전에 여야가 합의했고 국민에게 약속드린 것이다. 선진화법은 꼭 처리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국회선진화법은 본회의에 상정됐고 표결을 통해 통과됐다. 친박계 의원들은 대개 찬성표를 던졌고 친이계 의원들은 반대표를 던지거나 기권했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하면 국회선진화법을 둘러싼 새누리당 의원들의 발언 곳곳에 ‘암수’가 숨겨져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의식했는지 친박계로 분류되는 김재원 의원은 “국회선진화법을 고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국회선진화법을 고치려면 국회선진화법이 만든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회선진화법 개정의 대의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이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새 정부 인사문제에 있어서도 비판 거듭해

이런 신경전은 박근혜 정부 들어 간헐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사청문 문제에 대해서도 계파 별 입장차에 따른 발언들이 나왔다. 대표적인 친이계 인사로 꼽혀왔던 이재오 의원은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당시 후보자에 대해 “특정경비라고 해도 공금을 사금고화해서는 안 된다”며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또 이재오 의원은 이후 박근혜 당시 당선인과 인수위가 지명한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국민의 신뢰를 잃고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며 “기회가 와도 잘못이 있으면 스스로 그만두는 것이 바른 일”이라고 발언해 박근혜 정부 인사에 대한 지속적인 비판을 거듭했다.

장관 후보자 인사에 대해서는 국회 부의장을 지낸 정의화 의원도 "당사자들은 억울할 수 있지만 스스로 용퇴해 박근혜 정부가 순항하도록 도와야 한다"며 전관예우 등의 문제가 제기된 장관 후보자들에 직격탄을 날린 바 있다. 정의화 의원은 PK지역의 대표적인 친이계 인사로 분류됐었다.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에서 이제 비주류가 된 친이계의 목소리를 대변해온 심재철 의원도 “고구마 줄기도 아니고 자고 나면 문제 사안이 줄줄 나온다”며 문제가 된 장관 후보자들의 자진사퇴를 촉구한 바 있다.

정부조직법개정안 처리 둘러싸고도 파열음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 논란에서도 양대 파벌의 신경전은 계속됐다. 당 내 주류인 친박계 의원들이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의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노력을 상대적으로 많이 한 반면 비주류 인사들은 당의 리더십 부재와 박근혜 대통령의 잘못된 처신에 문제제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 새누리당 내부의 집안싸움에 대해 보도한 6일자 조선일보 기사.

7선 국회의원으로 비주류의 한 축을 구성하는 것으로 알려진 정몽준 의원은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가 난항을 겪자 “당 지도부가 야당만 설득할 게 아니라 대통령도 설득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마찬가지로 비주류로 분류되는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당으로서는 할 일이 아무것도 없어 답답하고 무기력하다”라며 “당이 자율권도 있어야 하는데 대통령의 의지가 워낙 확고해 협상의 여지가 없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통해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의 의지를 보인 것에 대해 김용태 의원은 “대통령이 격앙된 모습으로 국민들에게 직접 호소하며 야당을 밀어붙이는 방식은 아쉽다”며 “야당과의 관계 설정을 이렇게 하면 앞으로 5년을 어떻게 보낼지 걱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비주류로 분류되는 조해진 새누리당 의원도 “앞으로 벌어질 모든 쟁점을 매사에 이런 식으로 풀어 갈 수는 없다”며 “이제는 통치가 가능한 시대는 갔고 정치만 가능한 시대”라고 발언했다. 이러한 발언들은 대통령에 대한 일방적인 비난에 가까운 것이다.

5월 원내대표 선거가 터닝포인트

이와 관련해 5월 새누리당 원내대표 선거에서 주류와 비주류가 ‘진검승부’를 펼칠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도 나온 상황이다. 조선일보는 2일자 보도를 통해 “친박진영에서 ‘대통령을 위해 레일을 깔 사람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면서 다수의 친박 중진들이 원내대표 선거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조선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주류 친박계에서는 4선의 이주영 의원, 서병수 사무총장, 3선의 최경환 의원 등이 원내대표로 거론되고 있다. 비주류 측에서는 5선인 남경필 의원의 재도전이 예상된다. 앞서 언급된 비주류들의 신경전이 후보자 난립 등과 얽혀 원내대표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 5월 새누리당 원내대표 선거 전망을 보도한 2일자 조선일보 기사.

물론 비주류 측이 원내대표 고지를 점령하는 데에는 실패할 것이라는 관측이 더 우세한 상황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현재 새누리당 의원 다수가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 시절 공천받은 인사인데다가 비주류 측을 아우르는 명확한 조직적 구심점이 없다는 점은 이러한 관측을 뒷받침한다.

현재 비주류 측의 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이재오 의원이 이끄는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과 남경필 의원이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경제민주화실천모임’ 정도인데 두 조직 모두 한계가 명확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새누리당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두 모임에 대해 “개헌추진모임의 경우 여·야 의원이 모두 포함돼있는데 여당 인사들의 당 내 기반은 줄어들어 적극적으로 행보하는 데 한계가 있고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은 소장파 내지는 쇄신파 모임으로 비춰지지만 친박계에 우호적인 인사들도 포함돼 있다”며 향후 비주류 측 조직적 구심으로는 큰 역할을 하지 못할 거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비주류 측이 이대로 무기력하게 있을 수는 없기 때문에 계속 이어지는 정치적 이벤트를 통해 당내 기반을 넓혀가려는 시도를 계속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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