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일 국회 정론관에서 안철수 전 원장의 서울 노원병 재보선 출마 결심을 알리는 무소속 송호창 의원의 모습. ⓒ뉴스1

다시 안철수다. 대선 투표 당일 그는 ‘도망치듯’ 한국을 떠났다. 이에 대해선 후일의 취재결과 친노세력의 안철수에 대한 불만과 반감이 많았고 이를 익히 안 그가 몸을 피했다는 증언이 있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친노는 문재인 당선을 확신했다. 그리고 그들은 패배했다.

대선 당시 민주당 문재인 후보에 대한 찬조연설로 주가를 올린 윤여준 전 장관이 최근 강연회에서 한 말을 인용하면, “2002년 대선이 노무현의 승리라기 보다는 이회창의 패배였듯, 2012년 대선은 박근혜의 승리라기 보다는 문재인의 패배”였다. 박근혜는 어정쩡한 승리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와 ‘가업’을 계승했다. 십년 전 노무현을 찍었던 50대는 미심쩍어 하면서 박근혜를 찍었다. 그리고 그들도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혀를 끌끌 찬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은 무얼 하고 있는가. 비노라는 자들은 대선 패배를 빌미로 친노를 싹쓸이하겠다고 나선다. 정당 내 정파갈등이야 있을 수 있고 바람직할 수도 있으나 그들이 ‘민주당이 문재인의 선거를 열심히 뛰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전혀 설명하지 않고 있단 것이 문제다. 애꿎은 문재인을 의원직 사퇴시켜서 얻을 수 있는게 대체 무엇인가?

한편 친노라는 자들은 친노를 욕하는 것이 싫다며 이번 선거의 패배에 대한 책임을 전혀 지지 않으려고 한다. 친노들조차도 열심히 뛰지 않은 선거라는 현실을 무시하려고 한다. 문재인 후보는 대선과정에서 참여정부보다도 훨씬 좌클릭을 했는데, 바로 그랬기 때문에 선거에서 패배를 했다는 흰소리들이 들려온다. 외곽에서는 조기숙, 내부에서는 안희정 같은 주자들이 하는 생각이다. 이에 대한 제대로 된 반론이 없는 걸 보면 이게 친노의 복심인가 싶은 생각도 들 지경이다.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한 민주당의 입장은 또 무언가. 방송의 공공성을 지키겠다는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도 못했고, 협상을 통해 제대로 된 반대급부를 얻어내지도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께서 ‘강공’을 하시면 한발 물러서 제안을 받는 대신 이거저거를 찔러보다가 보수언론의 조소나 듣는다. 투쟁을 하겠다는 건지 협상을 하겠다는 건지 내부 조율도 안 된 것처럼 보인다.

오죽하면 민주노동당에서 민주당으로 넘어간 당직자나 보좌관들이 “2000년대 중반 민주노동당의 정파갈등을 보는 것 같다. 근데 민주노동당이 이념에 따라 십여개 정파가 있었다면 민주당은 의원 하나하나가 다 독립된 정파다”라고 하겠는가?

다시 안철수 전 원장의 지난 대선에서의 행보를 복기하면, 별로 보여준 것이 없다. ‘호남의 사위’나 ‘엑티브 X 걷어낸다’와 같은 문구는 메시지팀의 유능함을 증명했으되, 다른 분야는 하나도 볼게 없었다. <안철수의 생각>에서 제시되었던 복지정책과 새로운 기업생태계 구축은 어디론가 떠나보냈고, 국회의원 정수 축소 따위의 포퓰리즘적 정책이나 남발했다. ‘새정치’를 말했으되 그게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말해, 비전도 없고 정책도 없었다. 결국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한국 시민들의 모순적 열망의 집적체인 ‘안철수 열풍’을 하나도 대변하지 못했다.

심지어 내각제가 아닌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 후보들에게 요구되는 ‘야수성’마저 부족했다. 불리하더라도 경선은 하고 민주당과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물러섰어야 정치적 미래를 기약할 수 있었는데, 자신에게 몸을 기탁한 캠프 사람들에게 어떠한 선택지도 남겨두지 않고 홀로 떠났다. 그것은 낭만적일 수는 있을지 몰라도 정치적인 행위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철수의 공간이 열렸다. 누구 책임일까? 당연히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그리고 그들의 ‘삽질’에도 ‘줏어먹기’조차 하지 못하는 민주당, 그 두 모자란 세력들 사이에서도 혁신하지 못하고 신뢰를 주지 못하는 제 진보정치 세력의 책임이다.

정기남 안철수 전 대선후보 캠프 비서실부실장은 7일 "한심한 정치상황이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의 정치적 결단을 끌어냈다"고 밝혔다. 정 부실장은 YTN 라디오 '김갑수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취임 초부터 장관도 제대로 임명 못하는 등 박근혜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국정운영의 난맥상, 127석을 가진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의 무기력한 모습 등의 정치상황이 재보선 출마라는 결단을 불러온 측면이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또 그는 안철수 전 원장이 서울 노원병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안 전 교수가 선거의 유불리라는 정치적 셈법에서 출발하지 않았다"며 "새로운 정치 시작을 전국 민심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는 서울 수도권에서 (출마하는 것이) 가장 극적이고 효과적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야권 후보 단일화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는 "기계적인 야권연대, 단일화 프레임은 국민적 여망을 담아내기 어렵다고 본다. 그러나 (단일화가) 필요 없다는 건 아니다"고 밝혔다.

▲ 생각에 잠긴 노회찬 전 의원의 모습. 그런데 생각에 잠길 시기는 이전에도 얼마든지 있었다. 야권연대가 총선에서 과반을 차지하지 못한 이상 그의 의원직 박탈은 시간문제였다. 진보정의당은 이 예정된 파국에 대해 어떠한 대응을 준비했는가? 지금 상황을 보면 아무것도 준비한게 없는 것처럼 보인다. ⓒ뉴스1

결국 안철수 측은 정확한 계산을 하고 있는데, 여타 정치세력들은 헛발질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안철수가 복귀를 한다 해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그 지역구에 후보를 내네 마네 하고 있다. 그게 도대체 엄포가 되는가?

부산 영도라면 몰라도, 서울 노원병에서 안철수의 당선 여부에 야권단일화는 핵심적인 변수가 아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사퇴한 안철수 후보에 대한 열망이 수도권 사람들에게 얼마나 남아 있느냐가 사태의 핵심이다. 그래서 안철수가 서울 노원병을 고른 것인데, 거기다 대고 "부산 영도에나 가지..."라고 이죽대는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새누리당은 '이준석 카드'까지 거론하는 등 '출혈이 적은 패배'를 대비하고 있는데, 대체 민주당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안철수는 아마도 지난 대선과정 자신의 과오를 제대로 반성하지 못했을 것이고, 진보정의당과 노회찬에게 예의를 차리는 과정도 미숙했다. 그러나 그건 감정의 문제고 정치의 문제는 아니다. 안철수가 노원병에 출마한다는데 제 정치세력들이 막을 권한이 있는가? 그가 그런 생각을 하도록 만든 자신들의 과오나 뼈를 깎는 심정으로 반성할 일이다.

야권이 앞다투어 후보를 냈는데도 안철수가 승리할 경우를 생각해봤는가? 야권연대의 틀이 무너지고 ‘안철수 신당’의 창당이 가속화될 것이다. 그리고 설령 그렇게 ‘저격’해서 안철수를 떨군들 사람들이 좋아하겠는가? 대선에서 ‘은혜’를 입은 이들이 그것을 ‘원수’로 갚았다는 반응이나 나오지 않으면 다행이다. ‘기성 기득권 정치세력 vs 새정치를 꿈꾸는 우리들’이라는 안철수 팬들의 도식이나 강화해줄 뿐이다.

낙후한 정치가 다시 모호한 존재를 소환했다. 물론 안철수가 좀 더 진화하여 정치적 대안이 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민주당 일각과 진보정의당 등이 그의 선택을 비판부터 한다는 것은, 그의 재기가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기성정치권에게 얼마나 통렬한 반성을 요구하는 일인지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치를 느끼는 감각을 잃고서 어떻게 유권자를 설득하려 하는가.

▲ 대선 당일 안철수의 출국은 "end가 아닌 and"가 되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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