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해 정치권을 향한 우회적인 비판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7일 오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45회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해 글로벌 경제위기와 북핵위기 등을 언급하며 이러한 위기에도 새 정부가 일을 못하고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이는 여러 위기에 둘러싸인 상황에서 정부조직법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국회와 야당의 책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이후에도 계속해서 협상을 벌였으나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발목잡기’ 프레임 강화시키는 청와대

이런 상황에서 야당이 박근혜 대통령과 새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여론 또한 증폭되고 있다. 야당이 자기 고집을 피워 정부조직법개정안 통과에 협력하지 않아 여러 위기에도 새 정부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도 이러한 상황을 돌파할 의지는 없어 보인다는 여론 또한 있다. 몇몇 언론은 비상시국이라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 가능한 장관도 공석으로 남겨두고 있는 상황을 비판했다. 대통령과 청와대는 “국정공백의 최소화를 통해 매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열어 국정상황을 치밀하게 점검하겠다”고 밝혔는데, 국회에서 청문회 보고서가 채택된 후보자도 장관으로 임명하지 않고 있으면서 내각이 점검해야 할 일을 수석비서관회의가 대신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 비상시국이라며 장관도 임명하지 않는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한 한겨레 7일자 보도.

실제 유정복, 윤병세, 서남수 등 후보자 8명은 박근혜 대통령이 결심만 하면 장관으로 임명될 수 있는 상태다. 이에 대해 청와대 김행 대변인은 “한 분만 임명장을 준다는 것은 모양새가 썩 아름답지 않다”며 모든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과한 후 일괄 임명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으나 아직 정식으로 임명되지 않은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 후보자가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구미 염소 누출 사고현장을 둘러보러 가는 등 장관으로서의 업무를 이미 진행하고 있다는 정황도 보도됐다. 앞뒤가 맞지 않는 행태다.

즉, 박근혜 대통령은 정부조직법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아 새 정부가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현안에 대응할 수 있는 체계는 갖춰져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일단 8명의 후보자들을 장관으로 임명한 후 나머지는 이전 정부의 장관들로 구성된 국무회의에서 급한 안건들을 처리할 수 있는데도 새 정부 출범 이후 국무회의는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새누리당 내에서도 대통령 정치력에 의문

이전 정부의 장관들이 국무회의에 참여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명분이 약하다. 이명박 정부와 참여정부의 전례가 있는데다 국정상황을 점검하겠다고 소집한 수석비서관 회의도 전 정부 직제에 따라 임명하여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지나친 얘기일 수 있지만 대통령이 일부러 그러는 것 아니냐는 뒷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야당의 발목잡기’라는 프레임을 강화해서 정부조직법개정안을 원안대로 통과시키기 위한 방편 중 하나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사실 정부조직법개정안에 대한 대통령의 태도는 여당인 새누리당 내에서도 문제가 돼 왔다.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은 6일 트위터를 통해 “파트너에게 굴종을 강요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라며 “정치는 오기로 하는 것이 아니니 지도자의 목소리가 작아야 국민이 불안하지 않다”고 말했는데 이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을 직접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 이재오 의원의 트위터 발언을 보도한 7일 동아일보 기사.

새누리당 조해진 의원도 7일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청와대가 여야가 알아서 통과시켜 달라, 이렇게만 요구하는 것으로는 대통령의 공약사항, 또는 법안이 이행되기가 어려운 구조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해 가지고는 현안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면서 “야당의 동의를 얻기 위해서는 당도 노력하지만 청와대와 정부도 같이 노력을 해야 된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담화 등을 통해 사태를 해결하려고 하기 보다는 여당에 재량권을 주고 협상할 수 있게 했어야 했다는 얘기다.

새누리당이 청와대와 야당이 끼어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는 한탄도 나온다. 매일경제의 보도에 따르면 6일 새누리당 고위 관계자는 “자꾸 말 바꾸기 하는 민주당도 문제지만 청와대 쪽에도 섭섭하긴 마찬가지”라며 “협상력을 이야기하기 전에 권한을 조금이라도 주고 몰아붙여라”고 말했다.

▲ 정부조직법개정안 협상과 관련하여 새누리당 내부의 불만을 보도한 매일경제의 7일자 기사.

통치력 강화 위해서라도 비판 받아들여야

6일 민주통합당 전략홍보본부장인 민병두 의원은 “박근혜 당선인의 생각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정부의 사유화, 거수기 역할만 하는 새누리당의 비서화, 청와대가 소통을 거부하는 언론의 관보화가 심각한 비극”이라면서 “국회가 할 일은 국회에 주고 정당이 할 일은 정당에 주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야당의 발목잡기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야당의 이러한 비판을 받아들이는 결단이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에 필요한 상황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한 시사평론가는 박근혜 대통령과 새 정부에 대해 “임기 초에 가장 힘이 세니까 밀어붙여 보려고 하는 것”이라면서 “하지만 밀어 붙인 것이 실패하면 더 큰 상처로 돌아오기 마련”이라고 주장했다. 임기 초의 실패가 국정운영동력이라는 측면에서는 그만큼의 큰 상처로 남을 수 있다는 얘기다.

안 될 것을 그저 밀어붙이기 보다는 협상과 대화를 통해서 합의안을 만들고 ‘좋은 그림’으로 결말을 내는 게 이후 통치력 강화를 위해서라도 필요한 상황이라는 비판을 박근혜 대통령이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여·야가 장기를 두는 데 청와대가 장기판을 뒤엎은 격”이라는 야당의 비판을 깊게 새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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