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전 교수가 4월 재보선에서 ‘서울 노원구 병’에 출마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상황은 점점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모양새다. 해당 선거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가 의원직을 상실한 진보정의당 노회찬 전 의원이 안철수 전 교수의 출마 계획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에서도 엇갈린 의견을 내비치는 등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 송호창 무소속 의원이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안철수 전 서울대교수가 미국 체류를 마치고 10일경 귀국 예정이다"고 말하고, "안 교수가 4월24일 서울 노원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기로 했다"고 밝히고 있다. ⓒ뉴스1

안철수 전 교수 측은 노원 병에 출마하기로 한 것을 두고 일부 관계자들은 “정치적 상징성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평했다. 노회찬 전 의원이 통신비밀보호법의 독소조항을 통해 의원직을 상실했으므로 ‘새 정치’를 기치로 박근혜 정부와 각을 세우기에 적합한 지역구라는 것이다. 또 안철수 전 교수의 지지층이 많은 ‘수도권’이라는 점도 안철수 전 교수의 결정에 주요한 근거가 됐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지방에 출마할 경우 아무래도 조직에서 열세인 안철수 전 교수에게 불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보정의당 반발하고 민주통합당은 입장 정리 못 해

하지만 ‘서울 노원구 병’에 대한 ‘정치적 우선권’(?)을 갖고 있는 진보정의당 등 진보진영은 안철수 전 교수의 결정에 비판적인 입장이다. 진보정의당 이정미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정치복귀를 하신다는 것은 환영한다”면서 “정치복귀의 첫 번째 선택지가 노원 병 이라는 것에 대해, 그리고 일방적인 출마선언에 대해 진보정의당은 매우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회찬 전 대표가 과거 몸을 담았던 진보신당도 “정계복귀라는 목적 외에는 어떤 명분도 없는 결정”이라며 안철수 전 교수 측을 비판했다.

▲ '안기부 X파일' 중 이른바 '떡값 검사'의 실명을 공개해, 유죄가 확정돼 의원직을 상실한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가 지난 달 20일 오후 자신의 사면촉구 서명운동이 펼쳐진 서울 명동거리에 나와 서 있다. ⓒ뉴스1

민주통합당 측은 어정쩡한 입장이다. 민주통합당 김현 대변인은 “안 전 교수는 야권단일화와 대선을 함께 치른 분으로 대선 후 정치를 계속한다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켰다고 본다”는 짧은 논평을 내놓았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일부 비대위원의 경우 안철수 전 교수의 출마 결단에 비판적 입장을 내놓고 있으며 또 일부 비대위원의 경우 당 쇄신 작업에 외부로부터의 충격이 가해진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현 대변인의 논평은 당 내의 이러한 상반된 기류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통합당의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의원 측은 “환영하고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번 재보선에서 야권이 힘을 합해 좋은 결과를 얻었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입장은 언뜻 보기에는 이전 대통령 선거에서 경쟁 관계였던 안철수 전 교수에 대한 예우를 갖춘 것으로 보이지만 ‘야권이 힘을 합해라’는 부분은 야권단일화를 통한 선거 전략을 강조한 것으로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정치평론가는 “안철수 전 교수가 출마를 강행할 경우 야권단일화는 불가능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야권단일화는 안철수 전 교수 또는 민주통합당 후보가 출마하지 않거나 사퇴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안철수 전 교수의 입장에서는 민주통합당으로부터 입당 압력 등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신당 창당 등의 정치적 전망을 갖고 움직이는 것인데 이를 포기하는 순간 민주통합당에 백기투항을 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통합당의 입장에서도 쉽게 포기하기가 어렵다. 안철수 전 교수가 신당 창당에 나서면 제1야당의 지위가 위협받게 될 수 있다는 전망 또한 존재하기 때문이다.

누구도 물러설 수 없는 상황

한겨레와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지난 2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현재 정당 지지율이 새누리당 49.5%, 민주통합당 21.8%로 나타난 데 반해 안철수 전 교수가 신당을 창당하는 경우는 새누리당 40.1%, 안철수 신당 29.4%, 민주통합당 11.6%의 지지율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이 결과는 안철수 전 교수가 신당을 창당할 경우 민주통합당 측에 큰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안철수 전 교수가 신당을 창당할 경우 민주통합당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한 한겨레 4일자 기사.

정치권 소식에 밝은 한 관계자는 “민주당 주류의 입장에서도, 안철수 측의 입장에서도, 진보정의당 입장에서도 물러서는 게 어려운 상황이 됐다”는 평을 내놓았다. 안철수 전 교수가 차라리 부산 영도에 나가는 게 나았을 것이라는 주장은 이런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다. 진보정의당과 민주통합당 일부 비대위원들이 이런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다른 목소리도 존재한다. 안철수 전 교수 입장에서는 일종의 ‘승부’일 수 있다는 것이다. 부산 영도에 나가서 어정쩡한 정국을 이어가느니 노원 병에 나가서 정계개편을 더욱 강하게 추동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어차피 정계개편 시나리오는 예상됐던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어차피 올 것이 조금 더 빨리 온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이 충분히 대비하지 못한 데다 진보진영 역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상황으로 혼란은 증폭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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