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 기흥사업장에서 근무하다 '다발성 경화증' 판정을 받은 이소정 씨에 대한 산재 재심이 기각됐다.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아래 산재 재심위·위원장 조병기)는 22일 재심사 결정문에서 "청구인(이소정 씨)의 질병은 업무상 질병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원처분기관의 요양불승인 처분이 위법·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 22일 통보된 산재 재심사 결정문

산재 재심위는 "다발성경화증의 원인과 발병기전이 현재까지 명확하게 밝혀진 결과가 없으며 유기용제 노출로 인한 발병가능성을 강하게 인정할 만한 일관된 연구결과가 부족하다"며 "피재자가 유기용제에 어느 기간 동안, 어느 정도 노출되었는지에 대한 충분한 자료가 없기 때문에 재심사 청구를 기각한다"고 말했다.

이 씨는 2003년 2월,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사업장에 입사를 해 '카피 라인 공정'(반도체 생산에서 배선공정에 사용되는 물질을 기존의 알루미늄에서 구리로 대체하는 공정) 오퍼레이터로 만 2년 동안 근무하다가 2005년 2월 대학진학을 위해 퇴사했다.(인터뷰 링크)

2007년 8월 경 본격적으로 희귀병인 '다발성 경화증'의 증상이 나타났고 2008년 7월 다발성 경화증 확진을 받았다. 또 다른 다발성 경화증 환자인 삼성 LCD 공정의 김미선 씨도 노동부 산재 재심사위원회에 재심 청구를 했으나 같은 날 기각 통보를 받았다.

이 씨는 26일 <미디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사용자가 아닌 노동자에게 입증 책임을 전적으로 묻는 것은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할 것이며 소송에서는 제대로 된 판결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아래 반올림)도 25일 성명을 통해 "우리는 치료와 생존을 위해 산재보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피해노동자에게 '명백한 과학적 의학적 증거를 요구하며' 산재 불승인 결정을 한 노동부를 강력히 규탄한다"며 기각 판정에 대해 비판했다.

반올림은 "산재 재심위가 상당인과관계의 법리를 무시하고 의학적·자연과학적 인과관계만을 고집하고 있다"며 "피해 노동자의 진술을 귀담아 듣지 않으면서 판정근거가 없다고 말하는 산재 재심사위원회의 판단을 신뢰할 수 없다"고 밝혔다.

▲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 이소정 씨 ⓒ반올림 제공

반올림은 "상병의 원인을 알 수 없으니 산재로 인정할 수 없다는 산재 재심사위원회의 판단은 대단히 무책임한 모습"이라며 "그동안 근로복지공단이 내부처리 지침에 따라 매우 협소하게 산재를 인정한 것을 비판해왔는데 재심사위원회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반올림은 "이소정 씨의 경우, 언제 강직(마비와 통증을 수반한 경련)이 발생할지 몰라 매일 24시간 병원에 입원해 있어야 하며 하반신 마비까지 병이 진행되어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다"며 "이 씨와 같은 다발성경화증 피해자들은 누구보다 산재보험급여(요양급여, 간병비, 휴업급여 등)가 절실히 필요하나 근로복지공단에 이어 노동부 재심사위원회 마저도 아픈노동자의 치료권과 생존권을 외면했다"고 밝혔다.

반올림은 "두 피해노동자 모두 과로·스트레스에 노출됐고 유기용제에 계속적 노출 및 교대근무를 하였기 때문에 연구결과를 근거로 업무와의 관련성을 충분히 추단해볼 수 있다"며 "작업환경이 질병발생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되고 다른 원인이 명백히 그 질병을 발생시켰다는 반증이 없는 한 산재로 인정하는 것이 산재인정의 법리"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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