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취임사에는 늘 새 정부의 국정 철학과 핵심 정책 등이 녹아있기 마련이다. 대통령이 공식적인 업무를 시작하면서 최초로 내놓는 대국민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취임사를 통해 앞으로 정부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예상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곤 했다. 김영삼 대통령의 경우 ‘신한국 건설’과 ‘부패척결 등 사회개혁’을, 김대중 대통령은 ‘국민통합’과 ‘경제개혁 및 정경유착 근절’을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동북아 시대’와 ‘특권과 반칙 없는 사회’를 말했으며 이명박 대통령은 ‘실용주의에 입각한 시장경제’와 ‘선진화’를 말했다. 이처럼 취임사에는 그 정권의 성격을 관통하는 주요한 키워드가 드러나 있기 마련이다.

25일 공개된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사도 이러한 시각에서 분석해보아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박근혜 시대가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게 될 지를 판단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열린 18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국민대표 33인과 함께 입장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뉴스1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사는 크게 3가지 키워드로 표현되는 정책을 강조하고 있다. 그 3가지 키워드는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인데, 이는 우리를 둘러싼 두 가지 위기에서 도출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두 가지 위기란 글로벌 경제위기와 북한의 핵무장 위협이다.

'경제부흥'

경제부흥과 관련해서는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가 핵심 과제로 제시됐다. 창조경제는 과학기술과 IT산업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성장동력으로서 미래창조과학부를 통해 정책이 집행될 것임을 명확히 했다. 취임사에 특정 부처의 성격을 거론한 것은 이례적인 것이다.

경제민주화와 관련하여서는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과 불공정행위 근절을 통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부당한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이는 5대 국정목표에 경제민주화가 빠진 것에 대비되는 것으로, 그간의 비판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창조경제에 대한 장황한 설명에 비해 경제민주화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 부분은 상대적으로 짧고 내용도 분명치 않아 향후 박근혜 정부가 경제민주화를 어떤 수준에서 추진할 것인지 가늠해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국민행복'

국민행복과 관련하여서는 복지정책과 교육정책, 치안강화 등의 메시지가 담겨졌다. 복지정책과 관련해서는 ‘국민 맞춤형 새로운 복지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국민들이 근심 없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는데, 이는 대선후보 시절 강조한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교육정책의 경우 천편일률적 경쟁을 지양하고 학벌 위주에서 능력 위주의 사회를 만들며 어릴 때부터 모든 학생들이 잠재력을 찾는 방향의 정책을 시행하겠다는 메시지가 드러난다. 일제고사 등 기존의 경쟁을 통해 능력을 계발하는 식의 교육 정책에 변화가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부분이다.

치안강화의 경우 공정한 법치주의를 말하는 것은 기존에 지속적으로 던지던 메시지에서 벗어나지 않으나 ‘사회적 약자에게 정의로운 법’ 등을 언급한 것은 기존 보수정부에서 던지던 메시지와는 상당히 다른 뉘앙스가 있기 때문에 의외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국민맞춤형 복지정책은 결국 국민들이 근심 없이 각자의 일에 종사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는 점을 밝혀 그간 꾸준히 그 필요성이 제기됐던 ‘보편적 복지’의 측면 보다는 ‘생산적 복지’, ‘선별적 복지’에 가까운 구상일 수 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문화융성' 및 외교정책

문화융성과 관련한 부분은 현재의 한류문화 등의 긍정적인 측면을 평가하며 다양한 장르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첨단기술을 융합한 콘텐츠를 개발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현재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문화산업의 처지에서 이러한 메시지는 반가운 것일 수 있으나 따로 큰 부분을 할애할 만큼 자세한 내용이 드러나 있지는 않아 새 정부의 문화정책에 있어 일정한 한계를 보여줬다고도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에 대북정책과 외교정책 등과 관련한 메시지가 포함됐는데, 이는 북한 핵실험 등 엄중한 국제적 상황을 배경으로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대북정책과 관련해서는 확실한 억지력을 바탕으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는데, 이는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병기한 것으로 보인다.

▲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열린 18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뉴스1
또한 외교정책과 관련해서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및 아시아, 대양주 국가와 신뢰관계를 쌓아가겠다는 뜻을 밝혔는데 이는 전통적으로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보수적 정부의 메시지와는 약간 결이 다를 수 있는 것이어서 향후 외교정책의 향방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방향은 비교적 명확하나 철학은 불분명해

마지막으로 한국의 전통적 개념인 계, 품앗이 등을 거론하며 ‘콩 한 쪽도 나눠먹는 풍습’과 ‘까치밥을 남겨놓는 풍습’ 등을 예로 들며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모델을 우리가 개척해나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좋은 의미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특이한 메시지라는 점을 평가하지 않을 수 없겠다.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사는 전체적인 방향은 명확하다고 평가할 수 있으나 향후 정책에 대한 철학은 불분명한 지점이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정부 정책의 철학이 어느 한 쪽으로만 치우쳐져 있는 것이 꼭 바람직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국정운영이라는 것은 늘 ‘실용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새로운 정부가 첫 발을 내딛는 마당에 좀 분명한 철학을 일관성 있는 메시지로 던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러한 아쉬움이 차후에 좋은 결과를 내는 데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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