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금융그룹이 박근혜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을 축하하는 대대적인 일간지 광고를 내 화제다. 하나금융그룹은 22일자 주요 일간지들의 3면~5면 사이에 일제히 신문 지면의 1/4 정도의 면적을 차지하는 광고를 냈다. 광고의 내용은 ‘18대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한다며 ‘하나금융그룹도 노력 하겠다’는 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 하나금융그룹의 광고가 게재된 일간지 지면. 시계방향으로 1) 동아일보 3면, 2) 한겨레 5면, 3) 한국일보 5면, 4) 중앙일보 5면

은행지주회사도 기업이니만큼 신문에 광고를 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문제는 내용이다. 보통 기업이 신문에 광고를 낼 때는 자사의 장점을 홍보할 수 있는 이미지 광고를 많이 낸다. 하지만 하나금융그룹의 광고는 그런 내용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이 시점에 굳이 18대 대통령 취임을 축하하는 광고를 게재하였냐는 의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MB를 버리고 박근혜로?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 기회에 정치적인 포지션을 명확히 하려는 것으로 생각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국내의 소위 6대 금융지주회사(KB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산은금융지주, NH농협금융지주) 수장의 대부분이 이전 정권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 대표적인 'MB맨' 출신 금융지주 회장으로 꼽히는 강만수 산은지주 회장. ⓒ뉴스1
이명박 정부에서 이들 금융지주회사 수장들은 ‘낙하산 논란’ 이 제기돼 왔다. 이 중 신한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를 제외한 나머지 지주회사 수장들은 여전히 이명박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어윤대(KB금융지주), 이팔성(우리금융지주), 강만수(산은금융지주) 회장 등이 대표적인 예다. 신한금융지주의 경우 라응찬 전 회장이 소위 ‘남산 3억 원’사건으로 불리는 신한사태 이후 사퇴의 뜻을 밝혔고 하나금융지주의 경우 김승유 전 회장이 ‘론스타 사건’으로 잘 알려진 외환은행 인수전에서 가까스로 외환은행을 인수한 이후 사퇴의사를 밝혔으나 이 둘 역시 대표적인 MB맨 금융인사로 불린다.

현재 신한금융지주 한동우 회장과 하나금융지주 김정태 회장은 정치권과는 거리가 먼 인사라는 평이 있으나 공교롭게도 김정태 회장과 김종준 하나은행장이 각각 성균관대 행정학과와 경제학과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끌기도 했다. 새 정부에서 ‘성균관대’ 출신 인맥들이 부상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영향을 받을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하나금융지주의 공격적인 광고 게재가 예사로운 일이 아닌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이명박 정부와 가까운 관계라는 이미지를 벗고 새 정부와 보조를 맞추겠다는 정치적인 제스처의 일부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외환은행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하나금융지주

특히 앞서 언급한 외환은행 문제가 하나금융지주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현안으로 꼽힌다는 사실 또한 눈 여겨 보아야 할 부분이다. 지난달 28일 하나금융지주 이사회는 잔여지분 40%를 확보해 외환은행을 완전 자회사로 편입하는 내용을 담은 ‘주식의 포괄적 계약서 체결 승인’을 의결했는데, 이를 두고 외환은행 노조가 ‘합의 위반’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 김기철 외환은행 노조위원장(왼쪽)이 14일 오전 서울 중구 금융위원회를 방문, 하나금융지주의 주식교환 중단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하고 있다. ⓒ뉴스1

외환은행 노조가 주장하는 ‘합의’란 지난해 2월 17일 김석동 당시 금융위원장이 배석한 상황에서 양자가 ‘5년간 외환은행측의 독립적인 경영을 보장한다’는 것에 합의한 것을 말한다. 이 합의 이후 하나금융지주와 외환은행측은 여러 부분에서 지속적인 갈등을 벌여왔다. IT(정보통신시스템)통합, 신용카드사업 부문 합병, 하나은행-외환은행 해외 법인 통합 등의 문제를 놓고 양 측은 격렬하게 대립해왔다.

하나금융지주 측은 지난달 28일 결정에 대해 ‘자회사 지분을 지주사가 100% 보유하는 것이 보편적’이라며 ‘계열사 간 협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내린 결정’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나 외환은행 측은 하나금융지주 측이 외환은행 지분을 100% 확보한 경우 언제든지 합병 절차가 진행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아직도 영향력 행사하는 김승유 전 회장

이러한 상황에 대해 금융노조 외환은행지부 관계자는 “2·17 합의는 금융당국까지 배석한 자리에서 이루어 진 것”이라며 “하나금융지주 측의 결정은 금융당국의 제재를 받을 수도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난 14일 금융노조 외환은행지부는 금융위원회에 이 사안에 대한 감독권 행사를 촉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 자리에서 외환은행지부는 ‘금융감독권을 엄중히 행사해 위법한 강제 주식교환을 중단하게 해달라’면서 ‘하나금융지주의 행위는 금융지주사의 공적 역할과 헌법상 경제민주화에 역행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공개매수 없는 강제적 주식교환, 가격 등 불리한 조건, 주주대표소송 등 위법행위 시정기능 상실 등으로 소액주주의 권익이 침해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김승유 회장이 형식적으로는 사퇴하였지만 여전히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라고 주장했다. 외환은행 인수를 진두지휘한 당사자가 김승유 전 회장이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소위 2·17 합의를 깨고 하나금융지주에 외환은행을 완전히 통합하려는 계획 또한 김승유 전 회장과 관계가 없지 않다는 의혹을 제기할 수 있는 것이다.

▲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과 김진성 교장이 15일 오후 서울 진관동 하나고등학교에서 열린 '제1회 졸업식'에 참석해 학생들에게 졸업장을 수여 및 축하하고 있다. ⓒ뉴스1

이런 상황을 고려해보면 하나금융지주의 대규모 일간지 광고 게재는 새 정부에 호의적인 신호를 보내 금융당국의 개입 등을 최소화해보려는 움직임 아니냐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하나금융그룹의 광고 좌측 하단에는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이름이 병기돼있다. 이 역시 소위 2·17 합의의 결과인 것이겠으나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하나금융지주 측은 "광고 게재는 6대 금융지주회사가 다 진행하는 의례적인 것"이라며 자사의 슬로건인 '건강한 금융'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명을 내놓았으나 김승유 회장의 최근 행보 등의 정황 때문에 이러한 해명이 얼마나 설득력을 얻는 것인지는 의문시 된다.

김승유 전 회장은 미소금융중앙재단 이사장도 맡고 있었으나 최근 금융위원회에 사표를 제출했다. 대표적인 MB맨으로 불리는 자신이 스스로 직책을 내려놓음으로써 새 정부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행보라는 평가다. 물론 그의 이러한 결단이 어떤 의도에서 이루어진 것인지를 예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금융당국이 외환은행 사태에 얼마나 개입할 수 있을지 앞으로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점만은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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